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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햇밀의 향기, 햇닭의 구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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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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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닭뼈 육수에 삶아 닭고기무침을 얹어내는 명동칼국수.
칼국수하면 썰렁하게 몸이 움츠러드는 날에 떠올리는 음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는 요즘 같은 여름철에 밀, 보리를 수확해놓고 햇곡식으로 벌일 때 먹는 여름 음식이다.

향긋한 햇밀가루를 손반죽해 국수를 밀고, 아침이슬에 젖은 파란 애호박을 채쳐 얹고, 구수한 햇감자를 송송 썰어넣은 손칼국수는 보릿고개를 넘기느라 힘겨웠던 농가에는 환상적인 계절의 별미가 아닐 수 없다. 칼국수에다 햇닭 수평아리를 삶아 육수를 내고 살은 양념에 무쳐 한줌씩 고명으로 얹으면, 그 부그럽고 구수하게 감치는 맛이 환상적이다. 그래서 유두절에 유두면을 한 그릇 잘 먹으면 여름철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서울의 원조칼국수집으로 꼽히는 명동교자(02-776-5348)는 충북 내륙인 영동지방의 토속적인 칼국수맛을 대중음식으로 전문화해 크게 성공을 거둔 집이다.

1965년 을지로 입구 삼각동 하동관골목에서 장수장이란 이름으로 칼국수집을 열었는데, 고객의 호응이 너무 좋아, 69년 명동으로 자리를 옮기며 명동칼국수로 상호를 바꾼 것이 명동칼국수의 시초였다고 한다. 그러나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 우후죽순격으로 명동칼국수 간판들이 나붙어 고객을 현혹했고, 심지어 같은 이름의 체인점까지 생겼다. 그래서 상호를 지금의 명동교자(구명동칼국수)로 다시 바꾸었다고 한다.

사진/ 2대 경영주 박휘준씨.
올해부터 경영진도 창업주인 박연하(68)씨에 이어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둘째아들 박휘준(34)씨로 대물림하며 36년째를 맞고 있다. 처음 명동칼국수자리를 더이상 넓힐 수 없어 100m쯤 떨어진 곳에 점포를 하나 더 열어 두곳을 직영하고 있고 체인점은 한곳도 없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칼국수맛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밀가루는 아무것도 섞지 않고 약간 묽게 반죽해 치대기를 여러 번 반복한 뒤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밀가루냄새를 저절로 가라앉히는 것이 중요한 노하우다. 명동교자의 또다른 특징은 아무리 바빠도 꼭 손으로 썰어 삶아낸다는 것이다.


육수는 뼈만 발라낸 닭을 은은한 불로 푹 고아 낸 것으로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색있고, 육수를 만드는 데 사용한 닭고기는 양념에 볶아 고명으로 얹는다. 모든 과정이 이미 알려져 있지만 누구도 쉽게 흉내낼 수 없다고 한다.

부드럽고 쫄깃한 면발과 담백한 국물은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여기에 매콤하게 입맛을 당기는 배추겉절이김치 한 가지만 더하면 누구든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고객도 대부분 10∼20년씩 이어오는 단골손님들이다. 요즘에는 신세대 청소년들까지 찾아와서 두곳 모두 언제나 자리가 비좁다.

나도 주방장/ 배추겉절이김치

김치 먹기 위해 칼국수를 시킨다?

사진/ 명동칼국수의 명물인 배추겉절이김치.
명동칼국수의 또다른 맛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배추겉절이김치에 있다.

속잎을 직접 씹어보고 맛을 확인해야 들여온다는 고랭지에서 재배한 통배추와 해풍을 쐬며 자란 전라도 해안지방의 달고 매운 고춧가루, 날로 먹어도 속이 쓰리지 않고 향긋한 당도 높은 의성·고흥마늘 등 3가지 재료 사용을 철칙으로 지켜오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고객은 칼국수보다 더 맛있는 것으로 김치를 평가한다.

새벽에 배추가 들어오면 알맞게 절였다가 오후에 찹쌀풀과 함께 양념에 비벼 하룻밤 숙성시킨다. 배추와 양념의 생맛이 알맞게 가라앉고 그러면서도 톡 쏘는 매운맛은 살아 있어 침이 저절로 솟게 만든다. 오랜 고객은 간이 알맞고 맵지만 속이 쓰리지 않아, 한없이 먹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20, 30대 여성고객은 임신초기 입덧을 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고, 먼 곳에서 일부러 사람을 보내 김치를 슬며시 싸들고 가기도 한다. 칼국수와 만두, 비빔국수, 여름철에만 내는 콩국수 등이 모두 5천원이고, 추가로 내는 김치는 값을 더 받지 않는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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