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짜 약병아리의 맛!
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따듯한 봄볕에 어미닭의 호위를 받으며 모이를 줍는 노랑병아리들의 모습은 우리 농촌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바람에 날려갈 듯 여리고 앙증스럽지만 40∼50일쯤 자라면 더러는 목을 죄듯 어설픈 울음소리를 터뜨리기도 하는데, 웅추(雄 人+主)라고 불리는 수평아리들이다. 이들은 더이상 키워도 별 쓸모가 없는 약병아릿감이다. 유명 삼계탕집에서 사용하는 영계가 바로 이맘때쯤에 해당하는 웅추들이다. 아직은 영계지만 수컷인 탓에 지방이 적으면서 푹 삶아놓아도 살이 흐트러지지 않아 담백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있다. 뚝배기에 꽉 차면 40일에서 1주일쯤 넘긴 것이고, 그릇이 헐렁하면 암탉이거나 40일을 밑자란 것이라고 한다. 농촌에서 약병아리들이 줄줄이 ‘변’을 당하는 시기가 바로 5∼6월에 해당된다. 보리수확과 모내기를 마치고 더위로 탈진한 기력을 보충하기 위함이다. 이때 형편이 넉넉해 영계백숙에 수삼을 얹으면 삼계탕이 된다. 기를 보하는 자양식으로 보신탕보다 손쉽고 누구나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어 예나 지금이나 닭이 우선했고 삼계탕은 가장 인기있는 보양식이 되고 있다.
서울시 서소문 옛 법원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원조고려삼계탕(02-752-9376)은 1960년 개업해 올해 햇수로 42년째를 맞고 있다. 삼계탕 한 가지를 대중음식으로 전문화해 전국 제일의 규모를 이뤄낸 원조집으로 손꼽힌다. 주인 이상림(68)씨는 1950년대 초부터 삼계탕을 만들어왔고, 장남인 이준희(43)씨가 대를 잇고 있다.
사진/ 원조고려삼계탕의 대를 잇고 있는 이준희씨.
내력뿐 아니라 시설·규모면에서도 이만한 곳이 없을 정도다. 2002년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새로 개축했다는 5층 건물은 중간층에 메인주방을 설치해 300∼400명의 고객이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원활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했고, 옥상에는 성채의 망루처럼 한옥기와집을 올려놓아 귀빈실로 꾸며놓고 있다. 층마다 계단과 벽에는 가야시대부터 조선조에 이르는 그릇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토기와 청동기에서 청자와 백자사기에 이르는 수백개의 그릇을 진열해놓아 값진 볼거리까지 제공하고 있다
음식도 품종이 뛰어난 토종닭 ‘웅추’를 직접 농장에서 공급받아 신선함에서 더할 나위없는 육질을 자랑한다. 또한 어느 상에든 똑같은 맛을 내도록 끓는 시간과 뜸들이기를 수치로 나타내는 조리시설을 갖춰놓았다. 닭을 끓일 때 사용하는 한약재도 제철에 산지에 내려가 상등품의 가시오가피와 황기, 엄나무, 마늘 등을 넉넉히 마련해놓고 사용한다.
동서양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세련된 실내장식과 신선한 닭, 뛰어난 조리시설이 원조집의 내력있는 삼계탕맛을 뒷받침한다. 삼계탕(1그릇) 1만원, 오골계삼계탕(1그릇) 1만8천원.
나도 주방장/ 오골계삼계탕
오골계가 선사하는 진한 국물
원조고려삼계탕집에서 또 하나의 명물이 오골계삼계탕이다. 일반닭에 비해 성장이 더딘 오골계는 5∼6개월 자라야 웅추 크기로 살이 오른다고 한다.
오골계삼계탕은 가시오가피와 황기, 해동피(엄나무껍질), 마늘 등을 넣고 삶아 미리 뽑아놓은 육수에 오골계를 안치고 수삼과 대추 등을 얹어 즉석에서 푹 끓여낸다. 일반 삼계탕에 비해 손이나 입가에 국물이 묻으며 착착 달라붙을 정도로 진하다. 독특한 약효를 지녀 보양강장식으로 일반닭보다 한수 앞선다고 한다.
가정에서 오골계삼계탕을 끓일 때도 몇 가지만 챙기면 크게 어려움이 없다.
국물은 오가피와 황기, 해동피, 마늘을 알맞게 넣고 삶아 미리 뽑아놓았다가 오골계를 안치면 더욱 좋고, 일반닭에 비해 20∼30분 더 삶아야 제맛이 우러난다. 백화점이나 대형매장 식품코너에서 판매하는 진공포장된 오골계도 무난하지만 냄비에 안치기 전 찬 냉수에 잠시 담가 꼭꼭 주물러 근육을 완전히 펴준 뒤, 미리 불려놓은 찹쌀과 마늘 등을 체워넣는 것이 좋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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