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맛은 담백, 끓일수록 얼큰
등록 : 2001-06-13 00:00 수정 :
사진/ 30년을 맞고 있는 금강섞어찌게 주인 김빈자 할머니.
우리 음식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가 바로 국과 찌개이다. 임금의 수라상에서 서민들의 소박한 밥상에 이르기까지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에게 국과 찌개가 빠지면 먹을 맛이 나지 않는 것은 타고난 체질일 듯싶다.
짜면 짠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형편과 식성에 따라 국물을 넉넉하게 잡을 수도 적게 잡을 수도 있고, 잘 끓인 찌개는 여러 차례 데워 먹어도 끓일 때마다 맛이 살아난다. 조리법이 따로 없는 것 같지만 장을 풀기에 따라 맑거나 걸쭉하게, 지역이나 가족의 취향에 따라 저마다 다른 맛을 낸다. 그래서 “음식맛은 장맛”이라거나 “음식맛은 손맛”이라는 속담도 바글바글 끓는 찌개에서 가장 명확하게 실감할 수 있다.
금강섞어찌개(02-778-6625)는 서울 명동에서 독특한 찌개요리를 주메뉴로 1970년대 초부터 30년 가깝게 명맥을 이어오는 원조찌개집이다. 오징어찌개와 섞어찌개가 유명하며, 자리가 비좁다는 고객의 원성이 높아질 때마다 조금씩 넓은 자리를 찾아 4∼5차례나 이사하는 동안 40대의 여주인은 이제 7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올해 75살인 김빈자 할머니의 맛내기는 너무도 간단명료하다. 파는 음식도 집에서 먹는 음식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첫째, 기본인 찌갯거리는 가장 신선한 것이어야 하고, 둘째는 장맛, 셋째가 물맛이라고 한다.
사진/ 광천수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끓인 금강오징어섞어찌개.
큼직한 찌개냄비에 싱싱한 배추속을 송송 썰어 깔고 두부와 국수사리, 파와 쑥갓, 마늘 다진 것을 둘러놓은 뒤, 살아 있는 듯 싱싱한 오징어와 돼지고기를 알맞게 섞어 얹어낸다. 여기에 미리 뽑아놓은 육수를 붓고 된장과 고추장을 적절히 섞고 청양고추를 다진 천연양념을 풀어 즉석에서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국물과 함께 떠내 훌훌 떠먹는데, 처음에는 싱싱하고 담백한 맛이 입맛을 이끌어내고 계속 끓일수록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우러난다. 식사는 물론 소주안주로도 제격이다. 소주안주로는 다진양념을 조금 넉넉히 넣어 얼큰하게 맛을 돋우면 더욱 일품이다. 국물이 졸면 더 부어주는데, 대형 맥반석탱크를 설치해놓고 여과한 광천수에 새우와 조개, 게, 무와 다시마 등을 넣고 삶아 우려낸 육수가 장맛을 확실하게 살려낸다.
점심은 물론 저녁시간에도 명동을 비롯한 도심뿐만 아니라 먼곳에서도 젊은 직장인들이 단체로 찾아온다. 고객의 70∼80%가 20, 30대 여성고객인 것도 특색있다. 이들의 대부분이 신혼 초에 꼭 다시 찾아와 맛을 보고 간다고 한다.
나도 주방장/ 맥반석물로 지은 검정동부콩밥
광천수와 동부콩, 그리고 이천쌀
김빈자 할머니는 음식맛을 결정하는 장맛도 물맛에서 우러난다고 믿고 30년 동안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주방 천장에 2∼3t 분량의 대형 맥반석 정수시설을 갖춰놓고 모든 음식을 맥반석으로 걸러낸 광천수로 조리해낸다.
특히 경기도 이천지역에서 저수지물로 농사지은 청정미를 선별해다 검정동부콩을 넣고 지은 거무스레한 쌀밥은 유난히 기름기가 반지르르하게 돌며 씹을수록 구수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감돈다. 찌개는 물론이고 밥도 남기고 가는 고객이 별로 없다는 것이 금강섞어찌개의 자랑이다.
고객이 음식을 남기지 않고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가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는 김빈자 할머니는 개업 때부터 한끼도 거르지 않고 동부밥을 지어 손님상에 올렸다. 앞으로도 고객이 싫다고 하지 않는 한 계속 검정동부콩을 밥에 섞어낼 것이라고 한다. 그는 가정에서도 밥을 지을 때 천연수를 사용해야 밥맛이 제대로 난다고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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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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