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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월척 붕어는 살맛도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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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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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여가지의 찬이 가지런히 오른 ‘한강붕어찜’의 상차림.
팔당호 호반이 그림처럼 내다보이는 경기도 광주시 분원마을은 조선 왕실에서 관리하던 사기가마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구워낸 백자사기는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르던 것으로 가마에 딸린 일손들이 100여호의 큰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옛 가마터였다는 분원초등학교 마당 한쪽으로 이름난 도공과 불을 지피던 화공들의 송덕비 20여기가 죽 늘어서, 내력있는 마을임을 실감케 해준다.

실제 마을과 전답들은 팔당호에 물이 차면서 70년대 중반 모두 물 속에 잠겼다. 이때 대부분 외지로 떠나고 남은 50여가구 주민들이 초등학교 주변으로 이주해 새로 마을을 형성하며 농사 대신 생업으로 시작한 것이 매운탕집이었다고 한다. 80년대 초반에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강변집이 월척붕어를 찜냄비에 요리한 ‘붕어찜’을 선보인 것이 일간지에 소개되어 손님들이 크게 몰리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고 매운탕집마다 붕어찜을 주메뉴로 내세워 이제 분원마을은 분원사기보다는 붕어찜마을로 통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한강붕어찜’(031-767-9011)의 함광수(62)씨도 이 무렵인 1986년 매운탕집 간판을 붕어찜으로 바꿔 달고 햇수로 15년째를 맞고 있다. 사기가마의 경비를 관장하는 서기직을 지낸 5대조 할아버지 때부터 마을에 터를 닦아온 토박이 분원사람이기도 한 함씨의 매운탕집은 살림집을 그대로 식당으로 사용해 마을 안의 대형 붕어찜집들에 비하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음식도 이웃에 사는 찬모가 한 사람 있을 뿐, 함씨와 부인 이정자(59)씨 내외가 직접 만들어 내고 주말은 광주읍에 사는 아들 내외가 찾아와 일손을 거든다.

사진/ 분원마을의 터주대감을 자부하는 함씨 부부.
20∼30집을 헤아리는 붕어찜집들이 대략 같은 무렵에 시작해 제각기 원조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이 한두 차례 바뀌었거나 지나치게 대형화한 다른 집들에 비해, 15∼16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모습 그대로 차분하고 정갈한 상차림을 꾸준히 이어온 ‘한강붕어찜’을 원조집으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함씨 부부의 음식에 대한 꺾이지 않는 고집은 유명하다. 붕어찜에 사용하는 붕어는 꼭 참붕어야 하고, 붕어찜 1인분은 월척이 넘는 크기의 붕어 1마리 분량이어야 한다. 또 인원수대로 지어내는 솥밥과 함께 직접 갈무리한 밑반찬들은 가짓수를 제대로 갖춰 언제나 10여가지가 넘는다. 손님들에겐 언제나 친절해서 가족이 함께 주인과 말을 건네며 오붓하게 붕어찜맛을 볼 수 있다.

조리법은 말끔히 다듬은 큼직한 붕어를 인원수대로 찜냄비에 안치고, 고추장과 된장을 푼 양념장에 고추와 마늘, 생강을 다져 넣고 들깻가루, 검정콩 등을 얹어 찜을 하듯 한바탕 끓인 뒤, 뚜껑을 열어놓고 양념국물을 계속 끼얹어가며 자박자박 하도록 졸인다. 억세고 굵은 가시는 익은 뒤에도 딱딱하지만 가시 사이에 간이 푹 밴 살점들을 조심스럽게 발라내 먹으면 붕어찜 특유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냄비 밑바닥에 눌어붙은 감자와 짭짤하게 졸여진 무를 누룽지숭늉에 얹어 먹는 맛 또한 별미다. 붕어찜 1인분(1마리 기준)1만5천원.


나도 주방장/무장아찌

2년 묵힌 무의 감칠맛

추어탕이나 매운탕 등 기름진 탕국에는 역시 씁쓸할 정도로 간이 푹 밴 무장아찌가 제격이다. 특히 ‘한강붕어찜’의 무짠지는 조금 색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

1년에 800∼1천개를 담그는 무장아찌는 가을에 제철무를 소금에 절여 큼직한 항아리에 넣고 땅에 묻는데, 만 2년을 묵혀야 흙을 걷어내고 뚜껑을 연다. 익을 대로 익어 짜지만 감칠맛이 있어 매일 상에 올려도 물리지 않는다고 한다.

알맞은 크기로 썰어 맑은 물에 잠시 헹궈 소금간을 적당히 씻어낸 뒤, 찬물을 부어 식초를 몇 방울 떨구면 사계절 언제나 상에 올려도 무난하다. 무를 절일 때에는 고추씨를 자루에 넣어 무와 함께 넣는다. 가늘게 채쳐 물기를 짠 뒤, 고춧가루를 약간 뿌리고 식초와 참기름을 몇 방울 넣어 무치면 훌륭한 무장아찌가 된다. 또한 큼직큼직하게 썰어 물기를 말린 뒤 고추장이나 된장독에 박아놓아도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채를 치든, 큼직하게 썰든, 찌개나 구이류를 먹을 때 입가심으로 더없이 좋은 찬이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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