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머리국밥, 4대를 이어온 담백함
등록 : 2001-05-29 00:00 수정 :
오산시내에서 웬만큼 내력있는 음식점 주인들에게 할머니집 이야기로 말을 트면 마치 고향집 소식을 나누기라도 하듯 쉽게 친해질 수 있다. 그만큼 오산할머니집은 오산시내에 이름나 있고, 특히 음식점 주인들은 자신들의 원조집처럼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한마디로 이곳 음식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일제말 일본인이 경영하던 요정을 넘겨받아 소머리국밥집을 연 것이 한 집안의 며느리 4대로 이어지며 오산장터에 유일무이한 장터국밥집으로 터를 다진 계기가 됐다. 처음 문을 연 이일봉 할머니와 대를 이은 며느리 조명분 할머니는 이미 작고했고, 3대인 손자며느리 송옥순(73) 할머니마저 칠순을 넘었다. 지금은 증손자 며느리 박명희(42)씨가 4대째 대물림 준비를 하고 있어, 오산할머니집의 역사는 통틀어 60년의 세월을 헤아린다.
음식은 예나 지금이나 단 2가지, 소머리국밥과 수육이 전부다. 주방의 가마솥도 여러 번 바뀌어, 지금은 4대인 박씨가 들어서면서 새로 들여놓은 무쇠솥 2개가 여전히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고 있다.
한솥은 한우사골과 소머리, 잡뼈를 섞어넣고 푹 고아 진국을 뽑아내는 곰솥이고, 또 한솥은 탕국이 설설 끓고 있는 국솥이다. 머리와 뼈를 곤 국물을 국솥에 옮겨 기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양지와 지라 등 수육에 얹을 것을 삶아내 자연스럽게 국맛을 돋운다.
사진/ 40년을 이어왔다는 3대 송옥순 할머니와 4대를 잇는 박명희씨.
탕맛의 기본은 소머리와 소뼈에서 결정되는 만큼, 개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눈에 드는 황소머리와 사골뼈가 아니면 들여놓은 적이 없다. 특히 2대 주인이었던 조씨 할머니는 음식뿐만 아니라 매사에 철저하기로 소문나 고객들의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농담과 재담에 능했고 욕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조씨 할머니는 ‘욕쟁이할머니’로 통했는데, 욕을 해도 손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고 잘못을 깨우쳐, 일부러 욕을 청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엄한 조씨 할머니 덕택에 수십년씩 뼈를 대어오는 정육점 주인들은 지금도 할머니집 뼈는 어떤 것어어야 한다는 기준이 확실하게 머리에 박혀 있다.
뽀얗게 우러난 뼈국물은 한약재를 넣지 않고도 누린내가 전혀 없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늘 한결같다. 국솥에서는 일체 간을 하지 않은 채 뼛국을 그대로 내는데, 신선한 한우 뼈를 사용하는 집이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또한 일단 국솥에서 퍼낸 국물은 다음날 다시 내지 않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온다.
취향에 따라 소금간을 하고 다진양념을 풀어 맛을 돋우면, 구수하고 시원한 맛이 살아나면서 쫄깃한 머릿고기와 양지살 등이 어우러져 소머리국밥의 진수를 제대로 만끽하게 해준다. 개업 때부터 후한 인심을 이어오기 때문에 추가로 내는 공기밥이나 국수사리 값을 따로 계산하는 법이 없고, 소박한 장터국밥집의 분위기도 아무 부담없이 편안하다. 남녀노소 구분이 따로 없이 어우러져 저마다 국맛에 깊이 심취하는 모습들이 볼 만하다. 소머리국밥 5천원, 수육(1접시) 1만8천원.
나도 주방장/수육 씹을수록 고소한 그 맛!
오산할머니집의 탕맛 못지않게 자랑할 만한 것이 수육이다. 누렁 황소머리를 통째로 들여다 맑은 물로 핏물을 씻어내고 한나절 이상 솥에 안친다. 푹 삶아낸 소머리에서 걷어낸 혀밑 등을 다듬어 양지와 사태 삶은 것을 함께 곁들이면 알찬 수육접시가 꾸며진다.
불필요한 지방이 쏙 빠지도록 푹 삶은 수육은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팔팔 끓는 물에 잠시 담가 부드럽게 풀어 접시에 곱게 차려낸다. 양념장을 곁들이면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소주와도 너무나 잘 어울려 예로부터 최상의 소주안주로 손꼽혔다. 한우수육은 푹 삶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지만 수입고기는 삶을수록 냄새가 살아난다. 오산할머니집은 한우수육의 제맛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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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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