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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 세기 지켜온 설렁탕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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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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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양지살과 머릿고기, 우설이 얹혀나오는 이문설농탕.
이문설농탕은 2002년 월드컵 개막과 함께 국내 최초로 개업 100주년을 맞는 음식점이다. 종로타워가 들어선 옛 화신백화점 뒤편 골목 안에 개업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한옥 2층기와집을 그대로 보전해오며 100년 전통의 설렁탕맛을 꾸준히 내고 있다.

이문설농탕집(02-733-6526)의 개업시기는 수십년씩 대이어 찾는 단골고객들의 말에 따르면 1902년설과 1905년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주인 유원석(83) 할머니와 아들 전성근(56)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902년설이 가장 신빙성 있다. 유씨의 이화여전(이화여대의 옛 명칭) 시절 스승이었던 고 이희승 박사는 제자 집이기도 한 이곳에서 학회회원들과 모임을 가질 때마다, 좌중의 의견을 모아 정확한 개업 연대를 일러주곤 했다는 것이다. 또한 몇해 전 107살로 작고한 함모씨는 77년간 단골인 최장수 고객으로 1902년 당시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이문설농탕집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고 한다. 유씨 가족들은 그저 그러려니 생각만 하고 이같은 내용들을 육성녹음이나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사진/ 100년 설농탕집의 4대째 주인자리를 잇고 있는 전성근씨.
아무튼 이문설농탕집은 한 장소에서 주인이 3대로 이어지며 한 이름으로 꼭같은 음식맛을 1세기 동안 이어오는 국내 유일의 집일 뿐만 아니라, 서울의 음식점허가번호 1호인 원조집이다. 지금도 80∼90대 고객들은 60∼70년씩 이어오는 손님들이 있고, 40∼50년씩 이어온다는 중노년층 단골고객들이 주를 이룬다.

그저 홍씨로만 전해오는 처음 주인이 50년 가깝게 이어온 것을 양씨 성의 2대 주인이 잠시 하다가 지금의 유씨 모자가 물려받은 것이 1961년이었다고 한다. 주인뿐 아니라 주방의 조리사들도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10∼20년씩 꾸준히 자리를 지켜주기 때문에 음식맛도 크게 변한 것이 없다. 4대 주인격인 전씨는 중학교 2학년부터 “이문집 자녀”라고 불리며 지금껏 입에 익혀온 설농탕맛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건물이 개발제한에 묶여 손댈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할 만큼 고지식하다.

200그릇은 넉넉히 될 대형 무쇠솥에 한우사골을 푹 고아, 기름을 말끔하게 걷어내고 양지살과 머릿고기, 우설 등을 고루 얹어내는 설농탕은 뽀얗게 우러난 뼈국물과 잔잔하게 떠오르는 맑은 기름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밤에 절여놓았다가 아침에 양념에 무쳐낸다는 배추겉절이와 충분히 익혀낸 빨간 깍두기맛도 언제나 한결같은 맛으로 수십년씩 찾는 고객들을 반긴다. 설농탕 5천원, 특설농탕 5500원.


나도 주방장/이문집 서울깍두기

새콤매콤한 전통의 깍두기

사진/ 이문집 서울깍두기.
옛 서울사람들은 설렁탕을 설농탕이라 고집한다. 서울의 대표적인 설농탕집이 바로 이문설농탕이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설렁탕이 유래를 ‘선농단’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의 상징인 쇠머리와 사골, 도가니와 양지살을 큼직한 무쇠솥에 넣고 밤새 고아낸 진국물을 뚝배기에 떠내 다진양념을 풀고 파를 알맞게 얹은 뒤 따끈한 쌀밥을 말아 훌훌 떠먹는 맛은 언제나 변함없는 한국적인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해준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새콤매콤하게 익혀내는 빨간 깍두기다. 옛날 서울깍두기에 비하면 고춧가루 쓰는 법이 조금은 달라졌지만 그래도 서울깍두기 본래의 맛을 1세기 동안 지녀온 이문집 깍두기는 3일 간격으로 담가 충분히 익힌 뒤 냉장해놓고 2일간 손님상에 낸다고 한다.

첫날보다는 다음날 것이 조금 더 새콤하게 숙성되어 고객들이 좋아하는데, 깍두기는 짜지 않은 정도로 충분히 절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고춧가루를 되도록 곱게 빻은 것을 쓰고 새우젓국을 알맞게 넣는 것이 익은 뒤에도 보기 좋고 깔끔한 맛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토종 고춧가루 한 가지면 족했던 것이 요즘은 색깔을 곱게 내는 고춧가루와 톡 쏘는 청양고춧가루를 약간 섞어 치장을 해 고객들의 입맛에 맞추고 있다고 한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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