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만의 진국물, 쫀득한 떡살
등록 : 2001-05-15 00:00 수정 :
사진/ 40년 넘게 조랭이떡국을 끓여온 김영희 할머니와 며느리 문현진씨.
개성하면 고려의 옛 도읍지로 인삼과 뛰어난 음식문화를 떠올리게 된다. “서울여인들은 아침상을 물리면 거울 앞으로 가고 개성여인들은 다시 부엌으로 향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개성사람들의 음식사랑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개성집(02-923-6779)은 서울 용두시장에서 안암동으로 빠지는 샛길에서 38년째를 맞고 있는 개성조랭이떡국집이다. 8·15해방과 함께 월남한 개성토박이 김영희(75) 할머니가 주인이다.
간판을 내걸고 정식으로 영업하기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가면 40년이 넘는다는 조랭이떡국 원조집이다. 일주일에 두 차례씩 쌀가루를 시루에 쪄 손으로 빚어낸 가래떡을 다시 새알처럼 잘라내, 장도칼처럼 생긴 대나무칼로 가운데를 문질러 앵두알이 두개씩 맞붙어 있는 모양으로 조랭이떡을 다시 빚는다. 갈비와 양지살을 삶아 기름을 말끔히 걷어낸 육수를 팔팔 끊이다가 빚어놓은 조랭이떡을 넣고 한 소끔 끓인 뒤 계란 노른자를 풀고, 양지 삶은 것을 찢어 파와 함께 얹고 볶은 깨를 약간 뿌려 낸다.
사진/ 개성여인들의 한이 담겼다는 조랭이떡국.
찬도 김치와 밑반찬 한두 가지면 무난하고, 오이소박이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단순해보이는 음식이지만 음식에 담긴 사연과 맛이 일반 떡국과는 한결 다르다. 우선 조랭이를 만들 때 대나무칼로 모질게 문지르는 과정에서 쫄깃한 질감과 독특한 모양을 형성하게 되는데, 옛 고려 여인들은 조랭이를 문지를 때마다 이성계의 목을 연상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조랭이떡국을 삼갔고, 유난히 쫄깃한 떡알은 아이들이 먹다 남겨도 풀어지지 않아 국물만 따라내고 맑은 물에 헹궈놓으면 다시 끓여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고소하게 감치는 진국물에 쫀득한 떡알을 씹는 맛이 각별하고, 시원하고 아작아작 생기 가득한 오이소박이는 한번 맛을 보면 개성 사람이 아니더라도 즐겨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조랭이떡국말고도 개성편수와 개성순대, 도가니무침, 양곰탕 등,개성 여인의 고유한 솜씨가 담긴 음식들이 고루 갖추어 있어 단골손님들만으로도 언제나 문전성시다. 칠순이 훨씬 넘었지만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음식 하나하나를 챙겨내는 김씨의 모습에 개성 여인의 기상이 역역하다. 또한 대부분 20년 넘게 몸담고 있다는 50∼60대의 찬모들이 익숙하게 엮어내는 손에 밴 음식맛은 이래저래 개성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깔끔하고 깊은 맛이 배어난다. 지금도 주말이면 고향음식이 그리운 개성 사람들이 먼 곳에서 찾아오고, 26년째 시어머니를 돕고 있다는 며느리 문현진(50)씨로 손맛이 이어지고 있다.
나도주방장/ 개성오이소박이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의 ‘육질’ 개성집의 오이소박이김치는 개성음식을 상징하는 조랑이떡국만큼이나 유명하다.
유난스럽게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소박이와 시원하게 감치는 김칫국물은 다른 곳에서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맛이다.
하지만 주인 김씨 할머니는 만드는 방법이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값이 다소 비싸더라도 살이 단단한 오이소박이용 오이를 준비하는 일이고, 다음은 정성이라고 한다. 소금물에 절일 때 소금물을 짜지 않으면서도 간이 충분히 배게 절이고, 속을 채워 항아리에 안친 뒤 오이가 잠기도록 국물을 넉넉히 붓고 익히는 과정에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된다.
오이를 되도록 빨리 익혀, 알맞게 익었다 싶을 때 김치냉장고의 온도를 얼음이 잡히기 직전까지 낮춰 재빨리 저장한다. 오이의 아삭아삭하는 질감이 익는 과정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익혀낸 오이소박이는 가장 맛있을 때 먹어야 한다. 조랭이떡국과 오이소박이김치가 어우러지는 각별한 맛은 ‘음식궁합’이란 이야기를 실감하게 한다. 조랭이떡국 6천원, 오이소박이김치(1그릇) 2천원.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