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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딸아이의 얼굴

[서정민의 뮤직박스 올드 & 뉴] 스티비 원더 <이슨트 시 러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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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8 13:31 수정 : 2009-03-1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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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 원더 <이슨트 시 러블리?>
아내의 신음이 유난히 길고 높았다. 아내 손을 움켜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응애~ 응애~!” 아기 울음소리에 귀가 번뜩 뜨였다.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봤다. 2009년 3월5일 새벽 2시20분, 딸아이가 태어났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치밀었다. 눈두덩이 뜨거워지고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아내 허리께 세운 가림막 탓에 아기는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이슨트 시 러블리(그녀가 사랑스럽지 않나요)?” 1976년 첫딸 아이샤가 태어났을 때, 스티비 원더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기 때 시력을 잃은 그는 딸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딸아이의 얼굴을 그리며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곡이 <송스 인 더 키 오브 라이프>(1976) 앨범에 실린 <이슨트 시 러블리?>다. 들머리에 삽입된 아기 울음소리는 아이샤로부터 따왔다.

시간이 제법 흐른 뒤였다. “선생님, 결심했습니다.” “시신경이 너무 파괴돼 개안수술이 성공하더라도 15분밖에 볼 수 없어요.” “그래도 좋습니다. 수술해주세요.” “지금까지 미루고 안 해온 어려운 수술을 왜 갑자기…?” “아이가 보고 싶어요. 딸아이 얼굴을 15분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수술은 실패로 끝났다.

스티비 원더는 끝내 아이샤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노래는 온 세상을 아이의 얼굴로 수놓았다. 요즘 난 매일 딸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며 흥얼거린다. “이슨트 시 러블리?”

서정민 한겨레 대중문화팀 blog.hani.co.kr/westmin

*‘서정민의 뮤직박스 올드&뉴’는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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