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하고 맵싸한 닭고기 육수
등록 : 2001-05-08 00:00 수정 :
초계탕은 평안도 지방의 고유한 토속음식이다. 만드는 방법이 냉면이나 막국수에 비하면 다소 수월한 편이어서 특히 일반 서민들이 가정에서 손쉽게 즐겼던 음식이다. 육수용 닭 한 마리와 잘 익은 동치밋국만 있으면 온 가족이 잔치를 벌일 수 있는 별미국수다.
닭을 통채로 삶아 육수를 뽑고 잘 익은 동치밋국물을 알맞게 섞고 식초와 겨자를 넉넉히 풀어 기본 탕국을 만든다. 알싸한 동치밋국과 부드러운 닭국물의 조화가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식초와 겨자의 새콤하고 맵싸한 맛이 탕맛을 더한다. 이름이 초계탕인 것도 평안도 사람들이 겨자를 ‘계자’라 부르기 때문에 식초와 계자에서 한자씩 따온 것이라고 한다. 초계탕이 가장 제맛나는 계절은 동치밋국 맛이 절정을 이루는 동절기를 꼽는다. 그래서 평안도 사람들은 한겨울에 얼음이 서걱거리는 초계탕에 국수를 말아먹는 것에 대해 애틋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냉장고의 발달로 사계절 음식이 되기는 했지만 상차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큼직한 그릇에 탕국물을 넉넉히 담고, 육수를 뽑아낸 닭살을 잘게 뜯어 김치와 오이, 양배추 등을 채친 것과 함께 얹고 얼음을 띄운다. 닭고기와 야채류를 탕국에 골고루 섞어 각자 앞 그릇에 떠내 따로 삶아놓은 메밀국수사리를 말아먹는다. 차고 자극적인 탕국에 구수한 메밀국수와 고소하게 씹히는 닭고기맛이 푸짐하게 어우러져 풍미를 이루게 된다. 살을 발라낼 수 없는 날개부위는 따로 접시에 담아내는데, 당연히 어르신네 몫이고 먹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아이들이 닭날개를 먹으면 바람을 피운다”며 금기시했다고도 한다.
또한 국수사리는 탕국이 끝날 때까지 계속 삶아내 여럿이 나눠먹는 것이 초계탕의 고유한 멋이다. 지금도 대부분 초계탕집들이 사리를 추가하는 값은 받지 않는다.
초계탕이 전문음식점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파주군 법원리의 ‘법원리초계탕집’이고, 그 원조할머니가 김막순(69)씨다. 김씨는 1983년 법원리초계탕집(031-958-5250)을 처음으로 열어 5년여간 터를 닦아 작은아들 김성수(46)씨 부부에게 넘겨주고, 다른 자녀들에게도 한곳씩 터를 마련해주려는 마음으로 멀찌감치 떨어진 여주군 상품리에 새 가계를 열어 큰아들 김갑수(48)씨 부부와 함께 11년째를 맞고 있다. 바로 평양막국수초계탕(031-886-7709)이다. 또 2년 전에는 양평군에 막내딸 김인숙(38)씨에게 대동강막국수초계탕집(031-773-8666)을 열어주었다.
22살 때 포천군 영종면에서 평양냉면집을 연 것을 시작으로 40년 넘게 메밀국수와 함께 살아온 김씨의 손맛이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초계탕은 닭 1마리분을 야채샐러드, 메밀부침, 비빔사리 등을 곁들여 4인기준 4만원. 막국수 5천원.
나도 주방장/ 초계탕 닭날개를 버린다고요?
닭고기 중 날개와 목살은 먹기는 까다롭지만 맛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특히 초계탕에서는 닭날갯살과 목껍질, 닭다리에 붙은 힘살이 맛을 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초계탕이 준비되는 동안 접시에 예쁘게 고여 나오는데, 간장접시에 식초와 겨자를 알맞게 풀어 찍어먹거나 동치밋국을 곁들여 먹는 맛은 뜻밖의 별미라 할 수 있다. 닭날개와 닭목, 닭다리는 특수 지방과 영양소들이 농축되어 있는 맛있는 부위여서 닭을 사올 때도 그냥 버리지 말고 잘 다듬어 냉동실에 보관해놓으면 육수를 내거나 조리용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가정에서 초계탕을 만들 때는 닭을 찬물에 잠시 담가 손으로 주물러가며 핏물을 충분히 우려내고 물을 충분히 잡아 통채로 푹 삶는다. 닭을 건져낸 국물은 노란 기름층을 말끔히 걷어낸 뒤 식혀 잘 익힌 동치밋국물과 1 대 1 정도로 섞어 냉장한다.
그리고 삶은 닭은 거죽이 꾸득꾸득 마를 정도로 식혀, 살을 말끔히 벗겨 잘게 뜯어 간을 약간 해 무쳐놓고, 양배추와 배, 동치미무, 양파 등 야채류를 곱게 채쳐 함께 얹고 얼음을 넉넉히 띄운다. 국수는 식품점에서 판매하는 막국수생면사리를 이용하면 가장 무난하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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