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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 찬바람 탓이다

[서정민의 뮤직박스 올드 & 뉴] 김동률 3집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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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1 14:51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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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3집 <귀향>
선선한 바람이 반갑다. 그리워하던 옛 연인과 재회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뛴다. 가을이라도 타는 건가? 아니, 솔직해지자. 가을에 대한 애착은 고상한 감상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더위에 약한 내가 가을을 갈구하는 건 순전히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의 발로다. 지구온난화를 실감하게 만든 이번 늦더위가 조금만 더 지속됐다면,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여름엔 댄스, 가을엔 발라드.’ 가요계의 오랜 황금률이다. 난 코웃음을 쳤다. 그런 단순하고 통속적인 공식은 인정할 수 없다고. 그러던 내가 바뀌었다. 엊그제 김동률의 <다시 사랑할까 말할까>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다.

사실 김동률 3집 <귀향>(2001)이 막 나왔을 땐 이 곡에 별로 끌리지 않았다. 스윙재즈 피아노에 “아리랑 아라리요”를 흥얼거린 <구애가>, 카니발 이후 이적과 다시 호흡을 맞춘 <우리가 쏜 화살은 어디로 갔을까>, 포근함의 결정체인 <자장가>를 듣고 재즈와 국악을 기가 막히게 접목한 천재적 감각에 감탄했다.

하지만 엊그제는 이상하게도 노랫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잘 있었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괜한 우려였는지 서먹한 내가 되려 어색했을까. 어제 나의 전활 받고서 밤새 한숨도 못 자 엉망이라며 수줍게 웃는 얼굴 어쩌면 이렇게도 그대로일까. 그땐 우리 너무 어렸었다며 지난 얘기들로 웃음짓다가 아직 혼자라는 너의 그 말에 불쑥 나도 몰래 가슴이 시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아, 찬바람 탓이다.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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