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통기타 속 너바나의 흔적

[서정민의 뮤직박스 올드& ] 이지형 2집 <스펙트럼>

728
등록 : 2008-09-24 16:20 수정 : 2008-09-25 18:44

크게 작게

이지형 2집 〈스펙트럼〉
그때 난 어려서 잘 몰랐지만, 비틀스 존 레넌이 난데없는 총격으로 죽었을 때 팬들은 이런 기분이었을까? 너바나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전해들었을 때 나는 100t짜리 해머로 뒤통수를 후려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자살이라니. 너바나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Smells Like Teen Spirit)을 무한대로 돌려 들으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내 쓰라린 가슴을 위무했다. 그때 이지형도 분명 비슷한 심정이었으리라 확신한다. 너바나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고등학교 2학년 때 오로지 너바나만을 추구하는 밴드 위퍼를 결성한 그다. 그는 점차 ‘홍대 앞 커트 코베인’이 되어갔다.

이지형 2집 <스펙트럼>이 나왔다. 그는 2006년 솔로 데뷔 때 위퍼 시절의 강렬한 ‘너바나표’ 사운드 대신 부드러운 모던록을 선택했다. 이듬해엔 통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나지막이 읊조린 소품집을 발표했다. 커트 코베인의 외피를 벗고 음악적 변화의 길을 한발 한발 내디뎌온 셈인데, 이번 앨범에서도 이런 흐름을 이어나간다. 부드럽고 경쾌한 모던록과 잔잔한 포크 사운드를 기반으로 특유의 유려한 멜로디를 펼쳐낸다.

개인적으로 반가운 건 간간이 등장하는, 디스토션을 걸어 지글거리는 기타 사운드다. 강렬한 후렴구가 인상적인 <유성>, 자전적 이야기를 노래한 <메탈포크쥬니어의 여름>, 내 맘대로 백미로 꼽는 <내 맘이 아픈 건>에 특히 끌리는 이유다. 너바나의 흔적이다. 그도 나도 음악적 뿌리를 잊지 못했나 보다.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서정민의 뮤직박스 올드&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