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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홍상수가 노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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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24 00:00 수정 : 2008-10-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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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의 <반성의 시간>

▣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홍상수 영화는 호오가 극명히 갈리는 편이다. 극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게 무슨 영화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도 있다. 난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쪽이다. 아니, 좋아한다는 말에는 능동적인 의미가 들어 있을 테니, 그냥 끌린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지독하게도 리얼한 홍상수식 영상과 전개, 어울리지 않게 간간이 튀어나오는 유머가 나는 싫지 않다. 왜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백현진의 첫 솔로앨범 <반성의 시간>을 처음 들었을 때, 참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창법이야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시절부터 익히 접한 터. 솔직히 그땐 불편함이 앞섰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가만, 이 느낌, 왠지 익숙한걸? 얼마 뒤 누군가의 음반평에서 그 익숙함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홍상수 영화’였다.

“돼지 기름이 흰 소매에 튀고, 젓가락 한 벌이 낙하를 할 때, 니가 부끄럽게 고백한 말들, 내가 사려 깊게 대답한 말들이, …막창 2인분에 맥주 13병, 고기 냄새가 우릴 감싸고, 형광등은 우릴 밝게 비추고, 기름에 얼룩진 시간은 네시 반,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 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학수고대했던 날>) 소박한 피아노 반주 위로 읊조리는 백현진의 알코올기 섞인 목소리에 어느덧 위무받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부터는 백현진을 ‘좋아하기’로 했다. 왜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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