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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어폰 꽂고 천왕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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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17 00:00 수정 : 2008-12-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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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의 <자가당착>

▣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예전 음악이 더 좋다. 요즘 나온 꽤 괜찮은 음반들을 아무리 들어봐도, 고등학생 때 듣던 메탈리카와 대학생 때 듣던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 초기 앨범이 준 감흥엔 못 미친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좋아했던 영화나 음악을 넘어서는 작품은 절대 만날 수 없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술 한 잔 걸치고 집에 갈 때면, 늘 MP3 플레이어 속 옛날 음악 폴더를 뒤진다. 그리고 추억을 듣는다.

나루의 <자가당착>을 처음 들었을 때, 10여 년 전 그때의 감흥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간결하면서도 직설적인 기타, 투박함 속에 스며든 감수성….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 등이 개척한 한국식 모던록 사운드의 재림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누구는 “1990년대 모던록 사운드의 21세기적인 재해석”이라고 했다. 84년생 대학생이 내놓은 데뷔작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솔직담백한 노랫말에선 풋풋한 내음이 난다. “내 앞에 서 있는 그댄 하얀 우주인”(<우주인>)이라는 읊조림에는 ‘사랑받을 수 없는 이들에겐 우주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우리 저 무지개 훌쩍 넘어 그대 나와 천왕성으로”(<천왕성으로>)라는 외침에선 ‘애니메이션 주제가’스러운 순수함과 신바람이 넘실댄다. 이소연씨가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는 오늘 밤, 난 이어폰을 꽂고 천왕성으로 날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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