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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장인정신으로 빚은 질박한 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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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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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계봉진막국수.
경기도 여주군 천서리마을은 전국에 손꼽히는 막국수촌이다. 20호 가까운 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에 막국숫집이 무려 10여곳. 마을의 대부분이 막국숫집이고 주말이면 어느 집이나 자리가 비좁을 정도로 고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이들이 뿌리고 가는 수익도 만만치 않아 여주군 내 신륵사와 영릉에 버금가는 3대 관광자원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이 마을의 원조집이 바로 강계봉진막국수집(031-882-8300)이다. 창업주인 강진형(80) 할아버지의 고향이 평안북도 강계고, 대를 이을 장남의 이름이 봉진(31)씨이다. 상호를 자신의 고향과 장남의 이름에서 따온 데에서 강씨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강씨는 14살 때 강원도 홍천으로 이주해 살다가 1970년대 초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뒤 집에서 사용하던 손국수틀로 막국수를 눌러 나루를 건너는 손님들에게 팔았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이면 몰려드는 차량들을 모두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에 놀란 마을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막국숫집을 열었고 지금도 해를 거듭할수록 국숫집이 늘어 전국 제일의 막국수촌을 자랑한다. 대부분의 집들이 봉진막국수의 질박하면서도 구수한 막국수 맛에 기초를 두고 있고 그 내력도 줄잡아 30년을 헤아린다. 이같은 성공에 대해 강씨는 “모방할 수 없는 원조집의 긍지와 정성”이라고 말한다.

사진/2대 가업을 잇는 원조집 가족.
메밀은 지금도 강씨의 제2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에서 재배해오고, 뜨거운 물에 익반죽을 해 즉석에서 눌러내는데, 이 작업은 대를 이을 강씨의 두 아들이 맡는다. 면을 뽑을 때 즉석에서 메밀의 양을 조절해 연로한 노인들에게는 연하고 부드러운 국숫발을, 젊은이들에게는 좀더 쫄깃한 국숫발을 자유자재로 뽑아낸다.

육수는 아직 건강한 모습의 강씨 내외가 맡아 한우 양지살을 삶아낸 담백한 국물에 동치밋국을 가미해 손님상에 낸다. 양지살은 신선한 한우고기만을 쓰고 동치미는 2일 간격으로 담가 여름은 4∼5일, 겨울은 7∼8일 정도 푹 익혀 제맛이 날 때 국물을 떠내 섞는다. 따라서 동치미국물이 제맛나는 한겨울과 봄철이 1년 중 막국수맛이 가장 제맛나는 절기라고 한다.

담백한 평안도 막국수와 양념이 듬뿍 얹힌 얼얼한 강원도 막국수, 거기에 함흥냉면의 따끈한 온육수까지 곁들여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진 맛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30년 동안 막국수를 만들어내는 하나하나의 과정이 한결같이 가족들의 고된 손길에서 빚어지는 만큼 80고령임에도 잠시 마음놓고 편히 누워본 적이 별로 없다. 고집스럽게 살아온 자신의 나날들이 전생의 업보를 벗는 과정이었다고 할 만큼 장인의 경지를 가고 있다. 요즘도 종종 단골손님들을 맞이하는 꿈을 꾸다 잠을 깬다는 그의 얼굴빛은 80노구가 아닌 어린아이처럼 진솔하고 해맑다.


나도 주방장/ 막국숫집 온육수

온수라구요? ‘온육수’입니다!

강계봉진막국수집의 또다른 명물은 ‘온육수’다. 강씨가 막국숫집을 운영하며 가장 안타까운 점이 “내력을 잘 모르고 찾아간 고객들이 일반 온수로 알고 아무렇게나 따라놓고 남기고 가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정성과 노하우가 담긴 진국이다.

이처럼 봉진막국수의 상징적인 맛으로 여기는 온육수는 강씨의 부인 유씨의 30년 정성을 담아내는 것으로, 소꼬리와 사골, 양지를 함께 2∼3차례 삶아 처음 우러난 것은 따라 버리고, 뽀얗게 맑은 진국만을 푹 고아낸 것인데, 소금간을 하고 양념을 후춧가루만 약간 넣을 뿐 일체 다른 것을 섞지 않은 순수한 육수국물이다. 끓여서 오랫동안 불 위에 올려놓아도 담백하고 개운한 맛이 변질해버리기 때문에, 하루 몇 차례씩 삶아내느라 온육수솥의 불은 24시간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가정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끓여 육수나 온육수로 즐겨도 좋은 건강식이다. 주의할 점은 3가지를 안치고 불을 조절해가며 1∼2회 끓여 처음 삶은 국물은 과감히 따라 버리고, 핏물이나 지방이 거의 빠져나왔다 싶을 때 새 물을 보충해 3∼4시간 푹 고아 뽀얗게 맑은 진국만을 뽑아내는 것이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고, 몇 차례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중고교 시절부터 주방일을 거들어온 강씨의 두 아들 봉진, 봉순씨 모두가 조리사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2대의 가업을 잇는 가족들의 단합된 마음이 담긴 막국수와 육수맛은 한번쯤 음미해볼 만하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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