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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 ‘물텀벙이’의 쫄깃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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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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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성진아구의 별미인 아귀찜.
인천에서는 아귀를 ‘물텀벙이’라 부른다. 옛날 제값을 받지 못할 때 그물에 걸리면 떼어내 바닷물에 내던졌는데, 덩치가 크고 몸무게가 묵직해 `텀벙'하는 소리가 유난스러워 그렇게 불렀다. 이름만큼이나 생긴 모습도 흉물스럽지만 맛은 그렇지 않다. 살이 연하고 가시가 화학섬유처럼 부드러워 어른, 아이 누구나 먹을 만하고, 특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젤라틴 성분의 쫄깃한 질감이 기막힌 맛을 내주는 건강식품이다.

아무튼 생긴 모습만으로 하찮게 여김을 받았던 물텀벙이는 이제 인천을 상징하는 확실한 명물로 꼽히고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성진아구’(032-831-1771)의 우금년(66)씨와 남편 전병찬(66)씨다.

우씨와 전씨는 한국전쟁 때 강원도 금화에서 인천으로 피난을 와 금화식당을 경영하던 시절 부부가 됐다. 이 부부는 함께 장을 보러 연안부두로 나가면, 그냥 버릴 정도로 흔한 물텀벙이와 단돈 몇 백원 하는 물텀벙이국을 볼 때마다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음식솜씨가 뛰어났던 두 사람이 양념과 간이 제대로 된 물텀벙이국을 직접 끓여 해장국으로 메뉴에 올렸더니 입소문이 삽시간에 인천지역에 퍼지면서 다른 음식을 낼 겨를이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금화식당은 물텀벙이집으로 통하게 됐고, 탕과 함께 찜까지 개발해 본격적인 물텀벙이집으로 간판을 내건 것이 1974년, 머지않아 30년을 맞게 된다. 주변에는 그동안 7∼8곳의 물텀벙이집들이 들어서 인천을 상징하는 용현동 물텀벙이 거리로 탈바꿈했다.

사진/용현동 물텀벙이촌의 원조인 우금년씨.
주방에는 10∼20년씩 몸담아온 조리사와 찬모들이 10여명에 이르고, 이들이 엮어내는 탕과 찜맛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별미로 하루 종일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몇해 전 인천시 용현동에 있는 ‘성진물텀벙이’는 시동생이 맡고 며느리와 함께 송도에 새 가게를 연 것이 ‘성진아구’다. 서해낙조가 절경을 이루는 전망과 함께 300석이 넘는 쾌적한 분위기가 물텀벙이 원조집으로 손색없는 모습이다.

음식맛의 기본을 가장 신선한 물텀벙이와 최상품의 양념류에 두고 있다는 우씨는 재료구입을 할 때 언제나 현금으로 지불하고 값을 깎지 않는 이로 알려져 있다. 조리사들에게도 원칙을 철저히 가르치고 한번 눈에 들면 이런저런 간섭을 하지 않고 믿고 맡긴다. 우씨 부부는 음식맛으로 고객의 불만을 사는 일이 좀처럼 없을뿐더러, 30년 가깝게 고객과 언성을 높혀본 적이 없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


음식가격도 30년간 두 차례 올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저렴하다. 2∼3인분에 2만원인 지금의 탕과 찜값은 12년 전의 값 그대로인데, 그렇다고 고기나 양념을 줄여본 적이 없다는 것이 대물림을 준비하고 있는 큰며느리 민유선(34)씨의 이야기다. 송도는 청량산 등산로와 인천상륙기념관, 송도유원지 놀이랜드, 다양한 편의시설과 카페 등 볼거리가 많아 가족이나 연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고, 주말산행지로도 무난하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나도 주방장/ 아귀손질법


톡 쏘는 양념, 부드러운 속살

아귀는 생긴 모습만큼이나 다른 생선에 비해 손질하는 시간이 몇배는 더 든다.

배를 가르기 전, 굵은 소금과 솔로 문지르며 점액을 말끔히 씻어내고, 배를 갈라 밥주머니와 간 등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려내고 나면 다시 부위별로 토막을 내 맑은 물에 담가 주물러가며 하얀 살이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씻어낸다. 워낙 담백한 생선이지만 깨끗이 씻을수록 양념발을 잘 받고 뒷맛이 깔끔하기 때문이다.

탕을 끓일 때도 육수를 진하게 뽑지 않는다. 대신 콩나물과 미나리, 미더덕 등을 넉넉히 넣어 자연스럽게 우러난 국물에 고추와 마늘 등 다진양념으로 맛을 돋운다. 다만 찜을 할 때는 불조절과 함께 콩나물과 양념을 넣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노하우다. 기본은 아귀를 먼저 안쳐 기본간을 해가며 알맞게 익었다 싶을 때, 콩나물과 미나리 등을 얹고 뚜껑을 잠시 덮었다가 뚜껑을 열고 양념을 얹어 함께 비벼 한번 더 볶듯이 익혀내는 것이다. 이때 너무 익히지 않고 아작아작한 콩나물의 질감과 양념맛을 신선하게 살려내는 요령만 터득하면 가정에서도 조리가 가능하다.

톡 쏘는 듯한 신선한 양념맛과 아작아작 씹히는 콩나물의 질감이 부드럽게 감치는 아구살맛과 어우러질 때 최상의 별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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