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향기 가득한 토끼고기
등록 : 2001-03-27 00:00 수정 :
사진/왼쪽부터 김금순, 전정례, 목옥희 할머니.
집에서 키우는 가축으로 토끼는 특히 어린이들과 깊은 인연이 있다. 농촌 출신 사람들은 어린 시절 토끼를 길러 요긴하게 돈을 써본 경험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음식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어본 적이 없다.
토끼는 번식률이 높고 고기맛도 담백해 건강식품에 속하지만 닭고기처럼 손쉽게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 흔치 않다. 설혹 길토끼고깃집이 어렵게 문을 열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닭에 비해 사육기간이 길고, 고기가 워낙 담백해 닭보다 양념을 많이 해야 제맛이 나기 때문에 이래저래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경기도 용인시 김량장동의 금촌집(031-335-3808)은 1969년 문을 열어 올해로 33년째 이어오고 있다. 내력이 오랠 뿐 아니라 용인 시내에서 고객층이 가장 두터워서 IMF는 물론 아무리 경기가 위축된 때라도 고객이 늘지도 줄지도 않고 한결같은 집으로 소문나 있다. 그만큼 음식맛과 내용이 실속있고 개성이 뚜렷하다는 이야기다. 남들은 몇년을 못 버티는 어려운 장사를 이토록 오랜 세월 이어온 비결을 주인 목옥희(73) 할머니는 한마디로 쉽게 이야기한다.
“할머니들이 하는 장사라 욕심없이 서로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하는 날까지 그냥 하는겨.” 목씨는 칠순의 할머니이지만 50∼60대의 건강한 모습이고 장사티가 전혀 없어보인다. 상을 차려주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손들 또한 모두 칠순의 할머니들이 주축을 이룬다. 일한 지 불과 5∼10년밖에 안 됐다는 막내할머니들이 60대 후반이다. 10년 넘게 냉이를 캐오는 마을 아주머니들도 이제는 대부분 60살을 넘어서고 있다.
이 집에 20년 넘게 몸담아온 김금순(77) 할머니와 18년째를 맞는 전정례(72) 할머니 등, 오랜 내력을 지닌 할머니들의 깔끔한 솜씨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냉이와 달래는 티끌 하나없이 깨끗하고, 정갈하고 꼼꼼하게 챙겨내는 상차림이 어느 한 가지 허술한 곳이 없다.
“토끼처럼 냉이와 달래, 부추, 미나리 등 푸성귀들만 먹고, 하루종일 서서 뛰어다니지만 누구 하나 크게 아파본 적이 없어.” 눈빛이 유난히 맑고 귀가 밝을뿐더러 차분한 목소리를 지닌 할머니들은 그릇이 가득 담긴 쟁반을 젊은이들처럼 척척 옮길 정도로 건강하다.
금촌집의 대표적인 메뉴는 역시 토끼탕이다. 2∼3인분으로 넉넉한 1마리를 기준해 3만5천원인 토끼탕은 뼈를 알맞게 다듬어낸 토끼고기를 참기름, 마늘, 생강, 양파 등으로 양념해 전골냄비에 안치고, 여기에 싱싱한 냉이와 달래, 부추, 깻잎 등을 수북하게 얹어 미리 뽑아놓았던 육수에 다진양념을 풀어 얼큰하게 끓인다. 고기가 익는 동안 냉이와 달래, 부추 등을 먼저 건져먹고, 추가로 낸 냉이와 달래를 덧얹어 들향기가 푹 배어든 토끼고기로 제맛을 즐길 수 있다.
토끼는 들에 살던 것이어서 들풀로 짝을 맞춰야 제맛이 난다는 목씨의 생각은 이처럼 남다른 별미를 빚어내게 됐고 33년을 이어오며 고객의 입맛을 이끌어내고 있다. 경인지역에서 몇곳 비슷한 토끼집들이 있지만 냉이와 달래를 이곳 할머니들처럼 아낌없이 담아내는 곳은 없다.
나도주방장/ 냉이생채 상큼한 냉이가 젊음을 주다
금촌집 상차림에 어김없이 곁들여지는 냉이생채는 33년의 내력을 지녔다. 한나절 동안 흐르는 물에 씻고 다듬어 소쿠리에 받쳐놓았던 싱싱한 냉이를 손님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즉석에서 무쳐낸다. 상큼한 양념맛이 향긋하고 달콤한 냉이와 어우러진다.
냉이의 습성은 여름에 꽃을 피워 씨를 떨구면, 가을에 서리가 내려 다른 풀들이 사그러진 뒤에야 싹을 터 뿌리를 내리고, 엄동에도 잎이 얼지 않고 계속 뿌리를 키워낸다. 그래서 목 할머니는 냉이야말로 인삼보다 더 강인하고 생명력이 뛰어난 식품며, 금촌집 할머니들이 건강하고 단골 고객이 혈기 왕성한 것도 모두 냉이의 덕으로 믿고 있다.
조리법은 단순하다. 우선 냉이를 한 뿌리씩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씻는다. 씻어놓은 냉이는 선선한 곳에 놓아 물기가 완전히 가시면 무친다. 참기름을 듬뿍 따라넣고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양파, 들깨가루 등을 넣고 간장을 약간만 떨어뜨려 냉이와 함께 꼭꼭 주물러 무친다. 마지막으로 상에 내기 직전에 식초를 한두 방울 떨구면 더욱 제맛이 난다. 주의할 점은 먹기 전에 미리 무쳐놓아 잎새와 뿌리가 주저앉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