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반지르르한 이천쌀의 매력
등록 : 2001-03-20 00:00 수정 :
예로부터 경기도 이천쌀은 진상미로 손꼽혀왔다. 맛이 유별난 이천쌀은 대부분 나지막한 야산자락으로 가려진 천수답에서 나는 것으로, 골마다 맑은 물줄기가 솟아 크게 가뭄을 타지 않으면서 오염될 염려도 없다고 한다. 밥을 지어놓으면 기름이 반지르르 돌며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맛으로 명성이 높다.
이천쌀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것을 선별해 이천물로 제맛나게 쌀밥을 지은 집이 바로 넋고개 아래 자리잡은 ‘이천쌀밥집’이다. 1990년 봄, 이 마을 출신인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가 생각해낸 소박한 모습의 이천쌀밥집은 독특한 밥맛과 부부의 정성이 담긴 깔끔한 상차림으로 입소문이 이어졌고, 10년이 지난 요즘은 이천지역에만 수십곳을 헤아릴 만큼 붐을 이루고 있다.
고미정(031-634-4812)은 이천쌀밥집의 원조격인 여주인이 새로운 상차림을 선보이고 있는 한정식집이다. 이천쌀밥집을 5년여간 경영해오는 동안 고객의 취향과 제안을 받아들여 좀더 쾌적한 분위기와 격식을 갖춘 한정식 상차림으로 다시 5년째를 맞고 있다.
여주인 고미정(41)씨의 이름을 옥호로 내걸었고, 남편인 천세영(45)씨는 전국의 유명한 음식고장들을 계절에 맞춰 찾아가 밑반찬과 식자재들을 모아다 상차림을 뒷받침한다.
한정식에 별미로 오르는 홍어요리는 ‘진짜’ 홍어로 만들기 위해 대청도와 흑산도 연안을 오가며 홍어잡이를 하는 배(만복호)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또 봄(4월)부터 초여름까지는 하동 섬진강의 명물인 영등참게를 들여와 참게장을 담가 쌀밥에 곁들이고,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백령도 옹진수협에서 공급받는 불게로 게장을 담가 상에 올려 최상의 밥맛을 이끌어내고 있다.
해산물뿐 아니라 산채와 푸성귀도 오대산과 홍천지방에 수집상들을 정해놓고 제철나물들을 모아다 사계절 상에 올린다. 1인분 1만원의 참게장정식과 불게장정식은 보들보들한 흰쌀밥에 게장을 얹은 맛이 절묘하기 이를 데 없고, 따끈한 숭늉과 곰삭힌 젓갈맛도 형언하기 어려운 별미다. 특히 예약한 손님에 한해 내는 1인 3만원의 한정식은 시중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별미이다. 신선로와 구절판을 갖춰 30여 가지의 찬이 오른다. 직접 대청도 연안에서 잡아온 토종 홍어찜과 삼합을 제대로 갖춰내고, 제철에 수집해온 젓갈류와 산채류들을 골고루 곁들여 이천쌀밥과 조화를 이룬다.
주말은 고객의 90% 이상이 서울과 경인지역에서 찾는 가족단위 손님들이고, 주중은 이천과 여주쪽 골프장을 찾는 골프장 회원들이다.
크게 겉치레가 없이 단아한 새 한옥기와집은 14개의 크고 작은 방들로 이뤄져, 인원 수에 따라 한 방에서 조용히 식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소박한 초가집의 이천쌀밥집은 1인분 8천원인 정식이 주메뉴인데, 그동안 주방을 도와온 집안 올케가 맡아 맛이 크게 바뀐 것이 없다.
나도 주방장/ 홍어찜과 삼합 톡 쏘는 홍어에 막걸리까지 고미정의 진미로 꼽히는 홍어찜은 옛날 홍어가 흔하던 시절, 전라도 지방에서 주부들이 만들던 홍어찜이나 삼합과 흡사하다. 신선하고 순수한 토종 홍어를 포장지에 덮어 알맞게 삭혀놓고 깔끔하게 손질해 찜을 해내거나 제육과 보쌈김치를 곁들여 막걸리 대신 찹쌀 약주와 함께 내놓는다. 몇달씩 냉장해온 수입산 홍어에 비해 한결 부드럽고 감치는 맛이 제격이다. 톡 쏘는 맛이 군침을 돌게 하고, 여기에 다시 새우젓을 몇점 얹거나 보쌈양념을 얹은 삼겹살을 곁들이고 시원한 막걸리로 마감하는 삼합의 절묘한 맛이 한상 가득한 찬들을 무색게 만든다.
*만드는 법: 홍어찜은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어놓고 즐길 수 있다. 적절한 양의 홍어를 구입해 빈 항아리 속에 누런 포장지를 몇겹 깔고 홍어를 놓은 뒤 다시 포장지를 덮어 시원한 베란다에 두면 된다. 4∼5일쯤 지나 뚜껑을 열어 톡 쏘듯 싸한 냄새를 내뿜을 때 꺼내 마른 수건으로 점액을 말끔하게 닦아 냉장고에 저장해놓고 필요한 때마다 알맞게 다듬어 양념장을 얹어 찜을 하면 훌륭한 홍어찜이 된다. 닦아낼 때 물을 묻히면 변질해서 못 먹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홍어는 썩힐수록 제맛이 난다”는 옛말처럼 두고두고 먹어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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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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