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에 한방의 지혜가…
등록 : 2001-02-28 00:00 수정 :
자유로와 행주대교를 오가며 대부분 무심코 스쳐지나가던 행주산성은 영종도 신공항으로 나가는 방화대교가 완공되면서 좀더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임진왜란 때 유명한 행주대첩의 사적지인 산성은 포장길로 올라 한강 하류의 강풍경을 감상하는 전망대처럼 단장됐고, 눈아래 펼쳐지는 경치는 한강 유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빼어나다.
행주산성은 이곳에 본을 둔 성(姓)씨만도 행주 기(箕)씨와 행주 은(殷)씨 행주 김씨와 행주 이씨 등 4∼5개 성씨에 이른다. 지금도 행주내동은 주민 80% 이상이 덕수장씨고 외동은 이씨들 집성촌으로 대부분 5∼6대를 이어오고 있어 경기도 사투리와 풍습이 여전하다.
강가로 나앉은 행주외동에 몰려 있는 민물장어집들은 대충 꼽아도 50여곳을 헤아린다고 하는데, 한강유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규모의 장어촌이 드물다. 일미정(031-974-3636) 장어구이집은 이 마을의 실질적인 원조집으로 꼽힌다.
이 집은 1965년 간판을 내걸어 올해로 37년째를 맞고 있다. 내력이 오래됐을 뿐 아니라 시설과 상차림이 가장 뛰어난 집으로도 유명하다. 1983년 인척간에 대물림을 해 주인이 한번 바뀌면서 시설과 상차림을 개선해 원조집의 명성을 한 차원 높여놓았다.
주인 이병완(57)씨 부부는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어둑한 한옥을 밝고 산뜻한 별장처럼 단장했고 큼직한 통유리로 바깥 경관을 살려내 세련된 레스토랑처럼 가꿔놓았다. 음식을 먹기 전 으레 한판 벌이던 고스톱 판도 과감하게 걷어내고, 현대적인 감각의 전문음식점으로 20년 가깝게 터를 닦아 이제는 서울과 경인지역의 손꼽히는 장어구이집으로 튼튼히 자리잡게 됐다. 메뉴도 그냥 장어구이가 아닌 ‘장어구이정식’으로 바꿔, 찬을 골고루 곁들인 고급 접대상차림이 명성을 얻었다. 공항에 도착하는 바이어들과 외빈을 모신 차량들이 곧바로 이곳으로 찾아든다고 한다.
이씨는 한방에도 밝아 자신이 직접 처방한 한방 장어소스를 발라 장어구이를 구워낸다. 주방에서 10년이 넘게 구이를 맡고 있는 주방장이 정확한 솜씨로 구운 뒤, 따끈하게 달궈진 철판에 1인분씩 얹어내는 장어구이는 덜 익거나 타는 법이 없고 그 맛 또한 확실하다.
진간장은 색깔을 낼 때 조금 사용할 뿐이고, 당귀와 황기, 천초, 전궁, 백작약, 목향, 곽향, 감초, 숙지황, 계피육 등 9가지의 약재와 4∼5가지의 양념류를 넣고 만든 장어소스가 스며든 구이맛은 담백하면서도 고소하고 은은한 여운을 안겨준다. 식사 전후에 내놓는 한방장어죽도 맛이 부드럽고 영양가가 뛰어나 환자들의 회복식으로 유명하다.
고객 중에는 수십년씩 이어오는 70∼80대 단골손님들을 비롯해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많고, 최근에는 젊은 연인들까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새로운 고객층이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가격은 장어정식 2인분(3마리 기준) 5만원이다.
나도 주방장/ 장어죽 죽먹고 힘냅시다!
부드럽고 은은한 맛의 장어죽은 식사 전 수프처럼 먹어도 좋고, 식사 뒤 후식으로도 좋다. 특히 병후 쇠진한 몸을 추스르는 데 효과가 뛰어난 영양식으로 손꼽힌다.
일미정 한방장어죽은 일반 장어집들에서 끓여내는 맛과는 조금 다르다. 같은 한방제이지만 기운을 돋우거나 소화력을 촉진하는 것들을 알맞게 가려넣었고 그렇다고 한약냄새로 맛을 해치지도 않으면서 담백하고 고소하다.
약간의 천초와 백작약, 소화와 정장 작용을 하는 목향과 곽향, 황기 등과 함께 마늘, 생강 등을 적절하게 조제해 넣고 장어(또는 장어머리와 뼈)를 푹 삶아 장어육수를 만든다. 뽀얀 국물은 전혀 비리지 않고 담백한 맛이 나며, 여기에 찹쌀을 불려 빻은 가루를 넣고 미움을 쑤듯 손으로 저어가며 익혀낸다. 기호에 따라 들깨가루를 약간 갈아넣거나 당근과 시금치 등 야채를 잘게 썰어 넣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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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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