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단독공연 소극장 무대에서 뿜어올린 음악에 대한 열정…‘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의 다음 공부는 창을 록으로 소화하는 것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단면도는 건물을 세로로 끊어 내부를 보여주는 도면이다. 여기에 가구와 사람을 그려넣어 공간의 기능을 드러낸다. 싱크대와 식탁은 ‘부엌’을 말해준다. 출퇴근 길에 서울 북창동을 지나치며 밤 12시의 지하 단면도를 머릿속으로 종종 그려본다. 테이블과 소파와 남녀들. 풀빵처럼 찍어낸 룸살롱의 룸들이 길게 이어진다. 차라리 대학로의 단면도가 건전하다. 대마초나 연애사의 소문에 통칭 ‘문화인’들은 범인 취급을 못 받지만 그들이 옷을 벗고 울고 웃는 공연장은 난잡한 북창동보다 건강해 보인다.
8월15일 대학로 질러홀의 단면도 안에는 밴드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과 50여 명의 관객이 있었다. 마지막 단독공연을 한 지 3년 만의 무대이다. 너무 작은 소극장에서 왠지 작아진 전인권이 여간해선 작아지지 않는 그의 열정을 보여주고자 마련한 소극장 장기 공연이다.
기자들에게 시달림 당하고 노래 만들어 소극장은 적은 인원의 관객을 같은 배에 태운다. 소수에게만 노래한다는 사실에 괜히 황송해지는 것도 소극장의 묘미다. 연령과 성별이 정리 안 되는 팬들 앞에서 막이 올랐다. 서너 곡을 부른 뒤 전인권이 인사를 했고, 그는 고 이은주와의 관계에 본인보다 더 집착하는 기자들을 만나고 공연 3일 전에 만들었다는 <나는 찌그러지지 않는다>를 불렀다. 공연 중 한 관객이 호명됐다. “지인이 계시네요. 오늘 오셨네요. ‘한여름날 그늘 밑에 맴도네’ 그 노래(<헛사랑>) 만드신 분이에요. 지금은 조각을 하시는 교수님이시죠. 옛날에 굉장한 음악을 하셔서 제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분입니다. 덕분에 나도 아티스트가 되어야지 생각하고 화성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무대 위로 이일호씨가 올라와 말을 받았다. “아마 내가 전인권보다 조금 연상일 거예요. 한 5, 6년? 총각 때 최성원, 이광조, 나동민, 강인원 등과 자주 어울렸는데 딴 사람들은 명석했다면 이이는 좀 아집이 강했죠. 그런데 지독하게 공부해서 소리도 트이고, 다른 사람들이 감미롭게 노래할 때 거칠게 나갔죠. 요즘은 4, 5년 간격으로 보나. 콘서트에 와서 괜히 눈물 찔끔찔끔 흘리고 가고. 내 마음속에서 ‘우리 록계의 별이다’ 하는 사람이 신중현 선생하고 전인권이에요. 요즘 좀 그렇더라고. 분발했으면 좋겠고.” 전인권이 손 벌리면 “돈 쓸 데가 없었는데 잘됐다, 빌려가라”고 능청맞게 손을 잡아준다는 그가 <그냥>이란 자작곡을 무반주로 불렀다.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에 전인권이 희망사항을 얘기한다. “큰형님, 작은형님이 이왕 노래하는 것 세계를 향해 노래하라고 하셨습니다. 목소리 키워서 내년에 뉴욕에 북 하나 들고 가렵니다. 다시 만드는 창이죠. 대중성 있고 맥도널드처럼 규격화된. 창이나 한복은 섹시합니다. 환상적으로 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의 청에 한 소절 뽑더니 “연습 부족으로 잘 안 된다…”며 부끄러워하던 그는 “저를 이성으로 생각하세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날리기도 했다. “옛날 같으면 담배 한 대 피우고 왔을 텐데 앙코르 소리가 크지 않아서 바로 나왔다”는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은 <그대 걱정 하지 말아요> <행진> <돌고돌고돌고>로 앙코르 무대를 마감했다. 아이들은 앉아 있고, 부모는 폴짝이고 있었다.
최근 불거진 전인권의 고 이은주 언급 논란은 인터넷 매체와 콘서트 기획사의 공동 작품이다. 콘서트 관련 보도자료에 언론이 반응이 없는 가운데, 일부 기자들이 전인권이 ‘그것’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를 하기 시작했다. 기획사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한다. 7월27일 이메일을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전인권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 질러홀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전인권씨가 기자회견을 하신다고 해서 알려드립니다. 이제까지 세간의 궁금증을 샀던 이은주와 관련된 이야기도 솔직하게 하고, 콘서트를 시작으로 이제까지의 전인권에서 새롭게 변화한 전인권의 앞으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신다고 합니다. 장소: ○○○ 시간: ○○○ 문의: ○○○ 질러 엔터테인먼트 홍보 담당.” 덕분에 회견 전날 ‘이은주 관련 폭탄 발언할까’라는 기사가 나왔다. 전인권은 회견 당일 질문 공세에 당황했지만 굳이 피하지 않았고, 인터넷은 달궈졌다. “우리 잘못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공연 홍보를 위해 이용했다는 말은 억울합니다. 상업적으로 고인을 이용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매표에도 좋지 않죠.” 홍보 담당자가 말한다. 전인권은 “첫 보도자료를 낼 때 직접 다 검토했는데 이은주라는 세 글자는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왜 자꾸 얘기하려고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인터넷 매체의 얄팍한 가공 기사에 네티즌들은 흥분한다.
“밴드음악은 터치 없는 연애다"
공연장은 태풍의 핵처럼 평온했다. 공연 뒤 대기실에서 만난 전인권은 “지쳐도 좋다. 관객이 있다는 자체가 기쁘다”라고 말했다. 9월께 5집을 내고 창을 탐구할 예정이다. “창이 많이 트로트화됐는데 일본 엔카의 영향이 크고, 군대식이라 공격적인 느낌을 줘요. 창을 록으로 소화하면 재즈나 블루스와 맞닿는 지점이 나올 거예요.” 설악산을 매일 4시간 동안 올라가 소리를 연습했던 게 수년 전 일이다.
그는 밴드음악을 ‘터치 없는 연애’라고 정의했다. “서로 사랑하고 같이 석양을 보는 사이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같이 석양을 보는 여행은 어렵고, 전인권 클럽 앞에서 서너 명이 동전 따먹기 했던 그런 기억이 있네요. 일요일마다 인왕산 3시간 코스를 오르고 아침밥을 먹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기타 정현철, 키보드 전선민, 베이스 김홍, 민재현 등이 지기들이다.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은 안 싸우니까 가끔은 싸우기도 합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앞으로 클럽과 공연장을 다닐 예정이고, 평화적으로 멋있게, 가끔은 반항하는 모습도 보여주겠습니다.”
3년간의 방황을 끝내고 무대로 돌아온 전인권. 그의 밴드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은 곧 5집을 발매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사진/ 한겨레 임종진 기자)
기자들에게 시달림 당하고 노래 만들어 소극장은 적은 인원의 관객을 같은 배에 태운다. 소수에게만 노래한다는 사실에 괜히 황송해지는 것도 소극장의 묘미다. 연령과 성별이 정리 안 되는 팬들 앞에서 막이 올랐다. 서너 곡을 부른 뒤 전인권이 인사를 했고, 그는 고 이은주와의 관계에 본인보다 더 집착하는 기자들을 만나고 공연 3일 전에 만들었다는 <나는 찌그러지지 않는다>를 불렀다. 공연 중 한 관객이 호명됐다. “지인이 계시네요. 오늘 오셨네요. ‘한여름날 그늘 밑에 맴도네’ 그 노래(<헛사랑>) 만드신 분이에요. 지금은 조각을 하시는 교수님이시죠. 옛날에 굉장한 음악을 하셔서 제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분입니다. 덕분에 나도 아티스트가 되어야지 생각하고 화성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무대 위로 이일호씨가 올라와 말을 받았다. “아마 내가 전인권보다 조금 연상일 거예요. 한 5, 6년? 총각 때 최성원, 이광조, 나동민, 강인원 등과 자주 어울렸는데 딴 사람들은 명석했다면 이이는 좀 아집이 강했죠. 그런데 지독하게 공부해서 소리도 트이고, 다른 사람들이 감미롭게 노래할 때 거칠게 나갔죠. 요즘은 4, 5년 간격으로 보나. 콘서트에 와서 괜히 눈물 찔끔찔끔 흘리고 가고. 내 마음속에서 ‘우리 록계의 별이다’ 하는 사람이 신중현 선생하고 전인권이에요. 요즘 좀 그렇더라고. 분발했으면 좋겠고.” 전인권이 손 벌리면 “돈 쓸 데가 없었는데 잘됐다, 빌려가라”고 능청맞게 손을 잡아준다는 그가 <그냥>이란 자작곡을 무반주로 불렀다.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에 전인권이 희망사항을 얘기한다. “큰형님, 작은형님이 이왕 노래하는 것 세계를 향해 노래하라고 하셨습니다. 목소리 키워서 내년에 뉴욕에 북 하나 들고 가렵니다. 다시 만드는 창이죠. 대중성 있고 맥도널드처럼 규격화된. 창이나 한복은 섹시합니다. 환상적으로 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의 청에 한 소절 뽑더니 “연습 부족으로 잘 안 된다…”며 부끄러워하던 그는 “저를 이성으로 생각하세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날리기도 했다. “옛날 같으면 담배 한 대 피우고 왔을 텐데 앙코르 소리가 크지 않아서 바로 나왔다”는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은 <그대 걱정 하지 말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