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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추어탕이 아니라 추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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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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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6가지의 진미가 녹아든 곰보추탕.
추탕(鰍蕩)은 추어탕의 서울말이다. 예로부터 서울사람들은 추어탕을 추탕이라 부르며 독자적인 맛의 맥락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곰보추탕(02-928-5435)은 서울시 대광고등학교 뒤편을 흐르는 용두천변에 자리잡고 있다. 1930년대 초 문을 열어 개업 70년을 맞고 있는 서울추탕의 원조집이다.

이제는 대부분 타계했거나 노령에 접어든 토박이 서울사람들이 종로에서 청량리행 전차를 타고 신설동이나 용두동역에 내려 5∼10분씩 걸어가 얼큰한 추탕맛을 즐기고 오던 곳이다. 지금은 하수천이 되었지만 용두천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미꾸라지를 잡던 시절의 이야기다.

1998년 옛집을 개조해 새집처럼 단장하고 내부도 납작한 한옥을 밝고 반듯하게 손질해 놓아 한결 깔끔해졌다. 하지만 주인과 음식맛은 옛 그대로여서 전혀 낯설지 않다.

사진/곰보추탕집 주인 조명숙씨.
글자 한자 차이지만 추탕은 추어탕에 비해 맛과 끓이는 방법이 확연히 다르다. 남도풍의 추어탕은 삶은 미꾸라지를 채에 걸러 걸죽한 국물에 된장을 풀거나 소금 간을 한 뒤, 무시레기나 배추우거지를 넣고 끓여 슴슴할 담백하고 구수한 국물맛이 특색을 이룬다. 취향에 따라 다진양념을 풀거나 산추가루를 얹어 먹는다.

추탕은 미꾸라지의 선택부터 다르다. 남도에서는 숙회용으로 쓰는 자잘한 미꾸라지를 골라 깨끗이 씻어 통째로 넣고 끓인다. 국물도 양지 삶은 육수나 사골국에 곱창 삶은 것을 섞어넣기도 한다. 간도 된장 대신 고추장과 소금으로 하고 고추가루를 풀어 뻘겋게 고추기름이 떠오르도록 끓여 마치 육개장을 연상케 한다. 얼큰하면서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국물맛이 특징이다. 매운맛이 유행했던 70년대에는 추탕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온몸이 땀투성이가 될 정도로 얼큰하고 시원해야 제맛이라고 칭찬을 받았다.

곰보추탕에는 양지 삶은 국물에 양지살을 뜯어넣고, 늙은호박, 대파, 마늘, 생강, 버섯, 토란줄기, 두부와 유부, 계란 등 16가지가 들어간다. 은은한 불에 하루종일 올려놓고 푹 뜸을 들여가며 뚝배기에 떠주는 걸죽한 진국은 미꾸라지 비린내가 전혀 없다. 육개장처럼 얼큰하면서 진한 국물과 함께 떠먹는 미꾸라지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그 진수라 할 수 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양지살은 넣을 때 기름을 말끔하게 다듬어 국물에 뻘겋게 기름이 덮이거나 하지 않고, 지나치게 맵지 않게 끓인다는 것이다.


창업주인 정부봉(작고)씨의 얼굴 때문에 상호가 따로 없이 곰보집으로 불려오던 것이 그대로 옥호가 됐고, 며느리 조명숙(61)씨가 대물림하여 올해로 35년째를 맞고 있다.

나도 주방장/ 무짠지
얼음 송송, 무 둥둥

‘곰보추탕’의 무짠지는 70년을 한결같이 상에 오른 상징적인 찬이다. 얼음을 몇알 띄운 개운한 무짠지맛에 서울토박이들은 누구든 향수에 젖어든다.

무짠지 담그는 법은 의외로 손쉽다. 둥근 가을 무를 사람이 들어앉을 만큼 큼직한 독에 가득 채워넣고 소금을 한 푸대쯤 넉넉히 퍼부은 뒤, 무가 완전히 잠기도록 물을 붓고 홍고추를 몇개 띄워 선선한 곳에 놓아두면 된다.

초겨울에 함께 담근 일반 동치미는 양력 설에 제맛나게 먹을 수 있지만, 짠지는 봄이 지나야 독을 연다고 할 정도로 익는 과정이 더디다. 그래서 가을에 새 짠지를 담글 때까지 두고두고 먹는다.

익은 무짠지는 채치듯 썰어 고추가루에 버무리면 장아찌처럼 상큼하게 상에 올릴 수 있고, 알맞게 썰어 찬물에 헹궈, 시원한 냉수를 붓고 얼음을 한두알 띄우면 개운하고 시원한 무짠지가 된다. 실파나 풋고추를 송송 썰어 얹고 고운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면 더 제맛이 난다. 특히 얼큰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입 안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데는 그만이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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