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나블루스>와 <호로비츠를 위하여>가 관객을 홀리는 이유 … 음악 안 ‘사람 이야기’에 감동하고 ‘생짜 연주’에 흥분하다
나는 지난 10년간 내가 본 공포영화를 모두 알고 있다. <링> <여고괴담1> 등 딱 네 편이다. 온몸으로 공포를 견디다 지쳐버리곤 해서 자연스레 꺼리게 됐다. 반면 한 친구는 이 장르를 쪼개 흡혈귀 영화를 섭렵하더니 관련 서적도 썼다.
다른 친구는 로맨틱 코미디 광이다 못해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를 만든 전문 제작사 ‘워킹타이틀’ 같은 곳에서 일할 날을 꿈꾸고, 어떤 이는 배우 벤 스틸러가 나오는 소심남 코미디 영화는 무조건 챙겨본다. 취미란에 단순히 ‘영화감상’이라 적는 게 ‘취미 없음’보다 더 무취미적으로 보이는 요즘, 사람들은 저마다의 취향을 사랑하고 자랑한다.
쿠바의 현실과 라흐마니노프를 알고 그렇다면 나는? <스파이더맨> <트레인스포팅> <롤라 런>처럼 나르고 달리는 ‘속도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의 초대손님 ‘음악 영화’에 쉽게 흥분하고 감동한다. 세상의 영화들이 치정과 살인을 담기에 바빠 음악 영화의 순번이 잘 오진 않지만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안 가리고 작은 영화관과 영화제에 들르는 수고스러움을 감내한다면 매년 몇 편 챙길 수 있다. 최근엔 무거운 엉덩이를 채찍질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하바나 블루스>를, 한 극장에서는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관람했다. <하바나 블루스>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쿠바 하바나에서 영화를 공부한 베니토 잠브라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스페인 음악계에 진출하고 싶은 젊은 음악인 루이와 티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작사의 터무니없는 계약조건에 갈등하는 루이네 밴드와 가난이 지겨워 목숨을 걸고 미국행 보트에 몸을 실은 루이의 아내에게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노인들이 보여준 여유와 달관은 찾기 힘들다. 열대야는 관료주의로 흐물흐물해졌고, 젊은이들은 탈출을 원한다. 비록 슬픔과 화해가 신파로 채색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나 쿠바식 인디음악이 어떤 록과 일렉트로닉과 힙합을 보여주는지 궁금하다면 올 8월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만나길 바란다. 음악 영화는 스피커와 다른 방식으로 음악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음악인들의 인생과 이를 둘러싼 사회상이 전개되면서 음악은 시대 공간 속으로 편입된다.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주름살 새겨진 음악으로 우리의 고단한 일상을 그려냈다면, 영국 탄광촌 브라스밴드를 다룬 영화 <브래스드 오프>는 잃어버리는 것을 앞에 두고 어떻게 저항하고 희망을 찾을지를 가르쳐준다. 영화 <하바나 블루스>는 동경 어린 여행지로 각인된 쿠바의 오늘을 음악으로 말한다. 카세트테이프에서 MP3로 기술은 변했지만, 음악 안의 ‘사람 이야기’는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음악 영화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음악으로 관객을 호릴 때다. 변두리 피아노 학원 강사와 부모 없는 가난한 아이가 모자처럼 관계를 맺는 과정을 그린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착한 영화’에 대한 삐딱한 두려움을 가진 이에겐 위험한 영화다. 뻔한 화해를 버텨낼 강심장을 탑재하고 혹시나 싶어 견딘 108분. 대어는 후반부에서 낚였다. 성인이 된 주인공이 선보이는 연주 장면에서 30분에 달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8분가량 편집돼 흘러나온다. 이 순간 클래식 초보자는 성인 역으로 특별출연한 피아니스트 김정원과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를 발견했다. 반면 피아니스트 신동이라는 아역배우 신의재의 진가가 발휘되지 못했다. 음악 영화는 음악에 집중할 때 빛날 수 있거늘.
음악을 보석처럼 닦아낸 영화로 지난해 개봉한 <레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미 어워즈에서 13번 수상한 스타 흑인 뮤지션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시각장애인인 그가 어떤 식으로 거대해져갔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녹음실의 백코러스들이 말썽을 일으키자 그들을 내보내고 혼자 여덟 트랙을 녹음해버리는 장면이나, 레퍼토리가 바닥나 곤란해진 밴드 앞에서 “일단 내가 칠 테니까 대충 맞춰봐”라고 소리치며 생짜 즉흥 연주를 선보이는 장면은 음악적 쾌감을 선사한다. 영화 <라밤바>를 연출한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2004년 레이 찰스가 죽기 전까지 그와 교감을 나누며 영화를 준비했고, 레이 찰스는 수록곡들을 직접 녹음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친 주연배우 제이미 폭스의 립싱크 연기에 레이 찰스의 친구인 음악인 퀸시 존스는 “내 친구랑 똑같다”며 감탄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가 아쉬운 이유다.
레이 찰스의 <레이>도 뺄 수 없지
‘애정’이라는 풍요로운 감정을 지닌 감독들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음악의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알게 된다. 다큐멘터리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을 보며 옛 블루스맨에게서 소박하고 담백한 노동요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던 건 블루스를 아끼던 빔 벤더스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헤드윅>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영화 자막으로 철학적이고 인정 어린 노랫말을 읽어가며 관객은 감독과 배우에게로 연결된 연대의식의 실체를 느낀다. ‘음악은 우리의 영혼을 두드린다’는 명제를 대신 구현해주는 감독들이 고맙다.
솔과 블루스로 정상에 선 순간 컨트리를 시작했던 레이 찰스의 음악적 진보를 미국인이 영화로 기억하듯, 다양한 실험과 끝없는 공연 일정으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조용필 같은 이도 언젠가 영화로 기록되면 좋겠다. 영화강국 한국이 언제 괜찮은 음악 영화 한 편 만들어낼까. 카메라를 들썩이는 어지러움이 세련된 영상미로 간주되고, 음악에 집중하지 않아야 음악이 인기를 얻는 현실에선 춤자랑 곁들인 아이돌 스타를 염두에 둔 기획서가 제작사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진짜 좋은 걸 만들 줄 모르나.

영화 <하바나 블루스>에 등장하는 젊은 음악인 우리는 쿠바의 고민과 꿈을 보여준다.
쿠바의 현실과 라흐마니노프를 알고 그렇다면 나는? <스파이더맨> <트레인스포팅> <롤라 런>처럼 나르고 달리는 ‘속도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의 초대손님 ‘음악 영화’에 쉽게 흥분하고 감동한다. 세상의 영화들이 치정과 살인을 담기에 바빠 음악 영화의 순번이 잘 오진 않지만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안 가리고 작은 영화관과 영화제에 들르는 수고스러움을 감내한다면 매년 몇 편 챙길 수 있다. 최근엔 무거운 엉덩이를 채찍질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하바나 블루스>를, 한 극장에서는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관람했다. <하바나 블루스>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쿠바 하바나에서 영화를 공부한 베니토 잠브라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스페인 음악계에 진출하고 싶은 젊은 음악인 루이와 티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작사의 터무니없는 계약조건에 갈등하는 루이네 밴드와 가난이 지겨워 목숨을 걸고 미국행 보트에 몸을 실은 루이의 아내에게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노인들이 보여준 여유와 달관은 찾기 힘들다. 열대야는 관료주의로 흐물흐물해졌고, 젊은이들은 탈출을 원한다. 비록 슬픔과 화해가 신파로 채색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나 쿠바식 인디음악이 어떤 록과 일렉트로닉과 힙합을 보여주는지 궁금하다면 올 8월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만나길 바란다. 음악 영화는 스피커와 다른 방식으로 음악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음악인들의 인생과 이를 둘러싼 사회상이 전개되면서 음악은 시대 공간 속으로 편입된다.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주름살 새겨진 음악으로 우리의 고단한 일상을 그려냈다면, 영국 탄광촌 브라스밴드를 다룬 영화 <브래스드 오프>는 잃어버리는 것을 앞에 두고 어떻게 저항하고 희망을 찾을지를 가르쳐준다. 영화 <하바나 블루스>는 동경 어린 여행지로 각인된 쿠바의 오늘을 음악으로 말한다. 카세트테이프에서 MP3로 기술은 변했지만, 음악 안의 ‘사람 이야기’는 달라진 게 없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가 준 선물은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발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