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현장의 음악적 조력자, 방송 세션밴드 ‘이태선 밴드’…‘옥슨80’ 시절부터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걸어온 직업음악인의 길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5월3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신관공개홀 <개그콘서트> 리허설 현장. 진행표에 맞춰 각 팀이 무대 앞에서 대기한다. 객석 한쪽에선 옥동자 정종철이 방송국 견학차 들른 동자승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좀 떨어진 자리에선 새 코너 ‘L.O.V.E’를 무대에서 맞춰보고 허전했던 강유미, 유세윤 콤비가 아이디어 윤색에 몰두하고 있다. 이렇게 어수선한 현장에서 말없이 군불을 때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주무대 옆 보조무대에 자리잡은 ‘이태선 밴드’다. 오후 5시30분께 마지막 코너 ‘봉숭아학당 2006’의 리허설이 끝난 뒤 코너들을 잇는 짧은 연주곡들을 한꺼번에 모아 15분간 연습을 한다. 1999년 9월 첫 방송부터 7년째 하는 일이다. 어디서나 필요한 음악인이 된다는 것
이태선 밴드의 고향은 방송국이다. 1990년 이병진, 송은이를 데뷔시킨 한국방송 <청춘스케치>의 기획 단계에서 담당PD의 권유로 이태선(46)의 이름을 단 밴드가 조직됐다. 그는 1988년부터 KBS관현악단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밴드는 1995년 케이블 방송의 개국과 함께 사표를 내고 활동 범위를 넓힌다. <가요톱10> <열린음악회> <서세원 쇼> 등 각종 음악 프로그램과 토크쇼를 거친 이 밴드는 한 시절 주당 대여섯 프로그램을 소화하기도 했지만 최근 라이브가 감소하면서 고정출연이 줄어들었다.
방송생활을 15년간 했지만 최근처럼 이름이 알려진 때는 없다.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위력이다. 그러나 그전까지 이들의 존재를 궁금해하던 이들이 소수였던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종갓집 아궁이 앞에 앉아 있는 막내며느리의 이름 석자가 드러나지 않듯, 따로 음반을 내고 콘서트를 열지 않는 이들의 이름이 기사에 나올 일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주인공이 조명을 잘 받고 손님들이 즐거워하도록 돕는 음악적 조력자 ‘세션맨’들이다. <개그콘서트>의 세션밴드엔 이태선 외에 이수진(기타), 이필원(베이스) 정영아(키보드), 이유희(키보드), 은성태(드럼)가 있다.
세션맨, 혹은 세션 플레이어는 스튜디오 녹음이나 공연 무대에서 악기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이들을 말한다. 가수 이승철이 음반을 내고 콘서트를 열 때 동원되는 연주자들이 세션맨이다. 연주 기량과 음악적 지식이 동시에 요구된다. 1960년대 영국밴드 킨크스(the Kinks)는 노래했다. “그에게 돈을 준 건 생각하라는 게 아니지, 그냥 하라는대로 연주하면 될 뿐. 세션맨, 세션맨, 세션맨. 매일 다른 스튜디오에서 연주하지.“(He's not paid to think, just play/ A session man/ A session man/ A session man/ Playing at a different studio every day) 세션맨에게서 개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은 ‘서운하다’기보단 ‘당연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들도 스튜디오와 공연장 밖에선 다르다. 이태선 밴드의 구성원도 개별 활동을 한다. 모바일 음악 콘텐츠 제작회사를 경영하고, 대학에서 음악 수업을 진행하고, 다른 가수들의 음반을 제작하는 등 이태선도 여러 개의 명함을 가졌다. 영화 <퇴마록>의 O.S.T나 드라마 음악 <가을동화 에피소드2>는 개인 작업의 성과물이다. 색깔을 내고 싶은 세션맨들은 음반을 찍고 하나의 밴드명에 ‘올인’하기도 한다. 해외에선 레드 제플린과 토토가 그랬고, 국내에선 한상원과 정원영이 참여한 밴드 ‘긱스’가 그랬다.
리허설 뒤 지하 구내 식당에서 마주한 이태선에게 수많은 이름 가운데 무엇이 당신의 정체성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음악인’으로 남으면 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구태의연하게 들려야 할 이 말이 그가 먹는 된장시래기국처럼 담백하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기타를 알고, 중학교 시절 친구이자 경쟁자인 음악인 김정욱씨를 만나 불이 붙고, 건국대학교 밴드 ‘옥슨80’의 오디션에 합격하고, 군대를 갔다오고, 84년 <가난한 연인들의 기도>가 수록된 옥슨80의 음반에 참여했다. 계속 기타를 잡았다. 후배들에게 “항상 필요한 음악인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 전에 그의 행로가 먼저 얘기한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여백을 채워왔다.
한국 경제의 급성장은 음악 산업에도 기형적 변화를 가져왔다. “한 장르의 달인이 되면 수입이 줄고, 대학원에 실용음악학과가 개설됐지만 연주 무대는 줄었죠. MP3 무료 다운로드가 번창되는 동안 다른 부분이 함께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대중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문화를 향유하길 주문한다. “대중문화는 대중이 끌어가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멜로디만 즐기기보단 음악 안의 모든 걸 즐겨보세요.” 교양과목 수강생들에게도 녹음 과정을 견학하고 자신의 음반을 만들어보게 한다. 경험은 이해와 애정을 생산하는 발전기다.
그는 테크닉보단 감정표현에 충실한 기타 소리를 찾는다. 그래서 추천 음반도 “기타로 마음을 표현했던” 쳇 애킨스(Chet Atkins)의 음반들이다. 이태선도 록의 대가와 재즈의 거장과 어울렸던 쳇 애킨스처럼 장르 구분 없이 동료 음악인과 협업을 하여 음반을 내고 싶지만, 아직은 눈앞의 일이 산더미같이 있고, 요즘은 가수 전영록의 리메이크 음반 작업을 하며 달고 쓴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개그콘서트> 녹화 현장은 그에게도 활력 충전소다.
“쳇 애킨스처럼 기타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엄밀히 말해 <개그콘서트>의 세션은 공연 세션이 간소화되고 변형된 형태다. 주인공은 가수 대신 개그맨이고 연주는 짧디짧은 여덟 마디들. 그러나 밀폐된 공간에 모인 방청객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군불의 역할은 이미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는 연주 장면이 삽입되는 텔레비전 방영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저녁 7시가 가까워지자 저녁식사 뒤의 담배로 대기실 복도에서 휴식을 취하던 멤버들이 슬슬 무대 오른쪽 막으로 다가간다. 방청객의 기대감이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콘서트홀에서 밴드의 연주와 함께 340회 쇼가 시작됐다. 첫 주인공은 ‘B.O.A’의 김시덕, 오지헌, 유세윤과 친구들이다.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5월3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신관공개홀 <개그콘서트> 리허설 현장. 진행표에 맞춰 각 팀이 무대 앞에서 대기한다. 객석 한쪽에선 옥동자 정종철이 방송국 견학차 들른 동자승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좀 떨어진 자리에선 새 코너 ‘L.O.V.E’를 무대에서 맞춰보고 허전했던 강유미, 유세윤 콤비가 아이디어 윤색에 몰두하고 있다. 이렇게 어수선한 현장에서 말없이 군불을 때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주무대 옆 보조무대에 자리잡은 ‘이태선 밴드’다. 오후 5시30분께 마지막 코너 ‘봉숭아학당 2006’의 리허설이 끝난 뒤 코너들을 잇는 짧은 연주곡들을 한꺼번에 모아 15분간 연습을 한다. 1999년 9월 첫 방송부터 7년째 하는 일이다. 어디서나 필요한 음악인이 된다는 것
이태선 밴드의 고향은 방송국이다. 1990년 이병진, 송은이를 데뷔시킨 한국방송 <청춘스케치>의 기획 단계에서 담당PD의 권유로 이태선(46)의 이름을 단 밴드가 조직됐다. 그는 1988년부터 KBS관현악단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밴드는 1995년 케이블 방송의 개국과 함께 사표를 내고 활동 범위를 넓힌다. <가요톱10> <열린음악회> <서세원 쇼> 등 각종 음악 프로그램과 토크쇼를 거친 이 밴드는 한 시절 주당 대여섯 프로그램을 소화하기도 했지만 최근 라이브가 감소하면서 고정출연이 줄어들었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에 열기를 불어넣는 개그맨들의 파트너 ‘이태선 밴드’. 현장에 음악이 더해지면 분위기는 고조된다.(사진/ 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