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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류의 숙제, 제사 지내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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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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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개헌파에게 영구평화론 메시지 전하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
전사자 추모 위해 세계 어디서나 제2·제3의 야스쿠니는 계속 만들어질 것

다카하시 데쓰야의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역사비평사, 2005)를 읽기 전에, 박규태의 <일본의 신사>(살림, 2005)를 읽었다. 최초의 신사(神社)는 우리나라의 서낭당처럼 큰 나무나 바위·산 따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정령 숭배에서 시작해, 차츰 씨족의 조상신(氏神)을 모셨다. 민간 신앙의 출발지였던 신사가 오늘날과 같은 국가신도(國家神道)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메이지유신에 이르러서다. 1871년 유신 정부는 신사를 정리하면서 전국의 신사를 행정 단위별로 조직하고 국가 기관화했다. 신사의 민중적 전통은 거세되고 최고 정점에 아마테라스 국조신(國租神)이 자리잡게 되면서, 신사는 자연히 황실과 국가에 충성을 바치는 국가주의의 지성소가 되었다.

불만을 행복으로, 감정의 연금술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을 가진 야스쿠니(靖國)신사의 전신은 1869년에 건립된 도쿄초혼사(東京招魂社)로, 막부군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황군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 초혼사가 1879년 야스쿠니로 개칭되면서 일본 국가교(國家敎)의 상징이 된 것은, 일본군 최초의 해외 출병인 대만출병(1871) 이후 전개된 일본 식민주의와 관련 깊다. 일본은 대만출병을 시작으로 청일전쟁(1894년 발발)·러일전쟁(1904년 발발)·만주사변(1931년 발발)·중일전쟁(1937년 발발)·태평양전쟁(1941년 발발)을 일으켰는데, 전쟁을 거듭하면서 육군성과 해군성에서 관리하던 야스쿠니는 천황이 직접 제주가 되는 신사로 승격한다.

다카하시 데쓰야는 천황이 야스쿠니를 특권화하고 격을 높이게 된 까닭을 여러모로 분석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유족의 불만을 진정시키고 그 불만이 결코 국가를 향해 터지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으로, 자식을 잃은 유족의 슬픔은 “국가적 의례”를 거침에 따라 “슬픔에서 기쁨으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뀐다. 그런 감정의 연금술을 통해 야스쿠니는 “천황과 조국을 위해 죽기를 원하는 병사들을 끌어내”려는 좀더 긴급한 목적을 달성한다. 그래서 저자는 야스쿠니를 “대일본제국 군국주의의 지주(支柱)”라고 적시한다.

야스쿠니에는 대만출병 이후 여러 전쟁에서 전몰한 250만여 명의 일본군 병사가 합사되어 있는데, 2001년 여름,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행은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을 샀다. 전몰자를 위한 국립 추도시설은 어느 나라에나 있고, 전몰자에 대한 추도는 그 나라만의 권리일 텐데, 일본만 이런 항의를 받는 까닭은 무었일까? 그것은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전사자에 대한 애도를 넘어서 전쟁 그 자체의 성격”과 전후의 “전쟁책임” 문제를 되풀이 묻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야스쿠니에 합사된 14명의 A급전범으로, 그것은 일본이 승전국의 ‘세리머니’일 뿐이라고 억울해하는 극동군사재판(일명 도쿄재판)을 전면 부정하는 행위다. 그 사실이 일본의 역사 왜곡과 더불어 위안부와 징용자 처리 등, 해결되지 않은 피해 보상을 기다리고 있는 인접 국가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일본에서 30만여 부나 팔렸다는 이 책은, 쓸데없는 ‘물타기’를 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야스쿠니 문제에만 논의를 집중한다. 하지만 모든 국민국가가 그렇듯이 각국은 “자국의 전쟁을 정의의 전쟁(또는 성전)이라 칭하고, 죽은 자국의 병사를 영웅으로 상찬하며 다른 국민에게도 그 뒤를 따를 것을 요구”한다. 감정의 연금술은 비단 야스쿠니만의 마술이 아니다. 추모비·국립 추도시설·건축물 같은 기념비적 터전은 사회적 기억을 국민적 신화와 통합으로 재탄생시키는 장치다.

인류 보편의 문제가 된 야스쿠니

이 책의 가장 드높고 빛나는 부분은, 국가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고,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전세계 어디에서나 제2·제3의 야스쿠니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군사력을 가진 국가란 싸우는 국가이며, “싸우는 국가란 제사 지내는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제사를 지내지 않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포기해야 한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를 통해 정작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일본 신헌법 9조 1(전쟁 포기)·2(비무장)항을 개정하려는 개헌파에게 ‘영구평화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야스쿠니라는 특수한 문제는 인류 보편의 숙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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