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불고기맛은 이렇다!
등록 : 2001-01-16 00:00 수정 :
서울토박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종로 ‘한일관’은 1939년 창업한 한식집이다. 불고기와 갈비탕의 명문집으로 3대에 걸쳐 62년째를 맞고 있다.
조흥은행 본점 앞(지금의 광교사거리)에서 자리잡으며 최고의 명성을 날렸고, 도로가 넓혀지면서 종각사거리 제일은행 본점 옆으로 새집을 짓고 옮겨앉은 지 30년 가깝다. 종로 한복판에서 주차걱정 없이 예약이 가능할 정도로 시설을 잘 갖추고 있으면서, 서울의 상징적인 한식집으로의 옛 면모는 여전하다.
한식메뉴에 생고기와 생갈비 같은 새로운 이름이 오르기 시작한 90년대 이전만 해도 한식점의 최고 메뉴는 불고기와 양념갈비만한 것이 없었고, 맑은 장국에 갈비가 1∼2대 들어가고 보들보들한 당면을 넣어주던 갈비탕은 곰탕이나 설렁탕을 능가했다. 가운데가 둥굴게 솟아오른 불고기판에 양념이 푹 밴 불고깃감을 수북하게 얹어놓고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쌈을 싸고, 불판에서 흘러내리는 달콤한 육수를 떠내 밥을 비비거나 당면과 냉면사리를 넣어먹는 즐거움은 40∼50대 중년층한테는 향수처럼 남아 있다. 또 그 시절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불고기와 김치는 한국의 대명사처럼 기억되는 별미였다. 60∼70년대까지도 한우는 대부분 농사일을 거들던 소여서, 지금처럼 비육사료를 먹여 살을 찌우지 않았다. 그래서 지방분이 적은 근육질의 한우쇠고기는 양념에 재 불고기로 내거나 탕을 끓이지 않으면 제맛나게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불고기와 갈비맛에 고기를 재는 양념장맛이 크게 작용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진/주방장 박성순씨와 지배인 김동월씨, 육류담당부장 조명수씨(왼쪽부터).
한일관은 그 시절의 불고기와 갈비탕맛을 한결같이 지켜오며 정상의 자리를 잃지 않고 있다. 단골들 중에는 가족과 함께 찾아오는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의 각료들과 이름난 기업의 총수들도 많고, 학교 동문 모임이나 친목회 등을 수십년씩 이어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고객을 맞이하는 주인이나 직원들 역시 늘 낯익은 얼굴들이다. 지배인 김동월(55)씨는 26년째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주방장 박성순(51)씨는 21년, 육류담당부장인 조명수(43)씨는 20년, 대부분의 찬모들도 10∼20년을 헤아린다.
쇠고기도 특별한 상차림이 아니면 지금도 충남 홍성지역에서 올라오는 한우고기로 양념갈비를 떠내고 불고깃감은 앞다리와 뒷다리살을 다듬어 쓴다. 야채와 과일즙을 혼합한 양념장을 다려 불고깃감을 비빈 뒤 하룻밤을 쟀다 낸다는데, 알맞게 씹히는 맛이 있고 달콤한 게 감치는 불고기맛이 옛맛 그대로다. 집에서 담그듯 2∼3일 익혀서 내는 빨간 깍두기와 김치맛도 기막혀 외국인들에게도 찬사를 듣고 있다.
나도주방장/ 한일관 갈비탕 더이상 담백할 수 없는 갈비탕
한일관의 명성은 담백한 갈비탕맛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갈비와 사태살을 넣고 푹 삶아 건져놓았다가 사골국과 갈빗국을 알맞게 섞은 탕국에 말아 진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한소끔 더 끓인 뒤, 열판에 얹어내는 갈비탕은 다 먹도록 따끈하게 식지 않고 담백하게 감치는 맛이 일품이다.
주방장 박씨에 따르면 갈비탕은 집에서도 제맛나게 끓일 수가 있다. 갈비의 기름을 알맞게 다듬어 사태살과 함께 2시간쯤 푹 끓여 건진다. 국물에 뜬 기름을 한 차레 더 걷어낸 뒤, 통마늘 몇알과 통무와 대파를 큼직큼직하게 툭툭 저며넣고 끓이며 진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이렇게 탕국물이 완성되면 삶아놓았던 갈비와 사태살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 뒤 파와 후춧가루, 다진양념을 곁들여 맛을 돋우고, 찬은 깍두기나 김치면 족하지만 짭짤한 젓갈무침도 잘 어울린다.
갈비탕을 만드는 데에는 냄새가 없는 싱싱한 갈비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갈비의 질에 의심이 가면 처음 20∼30분 삶은 국물은 버리고, 다시 우려내면 한결 깔끔한 국물을 만들 수 있다. 냄새를 없애기 위해 수삼을 넣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갈비탕의 제맛을 버릴 위험이 있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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