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갈비맛의 모든 것
등록 : 2001-01-09 00:00 수정 :
서울 을지로3가역 네거리에 자리잡은 ‘조선옥’(02-2266-0333)은 그 역사가 줄잡아 70∼80년을 헤아리는 토박이 한우갈빗집이다. 해방 전부터 명성을 얻어온 곳으로 6·25전쟁이 나던 해, 지금의 주인 김정학(62)씨의 모친(작고)이 인수해 잠시 문을 닫았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문을 열어 김씨 집안에서만 3대에 걸쳐 50년 훨씬 넘게 이어온다.
이같은 내력을 말해주듯 23살 때 첫발을 들여놓아 52년을 근속하고 99년 여름 75살로 은퇴한 김계환 할머니를 비롯해, 19살 때 들어와 42년째 한우갈비를 굽고 있는 주방장 박중규(61)씨 등 ‘백전노장’들이 즐비하다. 조선옥 갈비맛은 곧 주방장 박씨의 손맛이고, 조선옥이 자랑하는 대구탕은 50년 넘도록 한결같이 국솥을 지켜온 김씨 할머니와 후계자로 지명받은 엄명옥(67) 할머니의 한결같은 정성으로 독특한 맛을 이어간다.
이곳 갈비맛은 재료구입에서부터 시작된다. 개업 이후 한우갈비 이외의 것은 들여놓은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 한우갈비를 대주고 있는 정승일(49)씨도 16살 때 처음 이곳에 갈비를 들고와 인연을 맺은 뒤 30이 넘게 갈비를 대주고 있다. 그래서 이곳 갈비맛은 50여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고, 굳이 변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외곬으로 서울식 양념갈비만을 그대로 고집해오고 있다.
본래 살이 두텁지 않은 것이 특징인 한우갈비는 한 방향으로 길게 펼 수가 없어 있는 그대로 다듬어 날개처럼 뼈의 양쪽으로 자연스럽게 붙여놓고, 그래도 먹을 만큼 살이 모자란다 싶으면 덧살을 몇점 양념에 함께 잰다. 그래도 옛날 한우갈비보다 갈빗살 자체가 너무 연해져 들고 뜯는 맛이 예전같지 않아 오랜 단골손님들은 가끔씩 석연치 않은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진간장을 사골국물에 풀어 간을 맞춘 뒤 양파, 마늘, 흑설탕, 후추, 참기름, 통깨, 배즙 등을 넣은 양념장에 갈비를 푹 재어놓고 하루나 이틀쯤 지나 손님상에 내는데, 짭짤한 양념장맛과 담백하게 감치는 고유한 갈비맛이 서울갈비의 참맛을 실감케 해준다. 굽는 방법도 50년 전 그대로 주방에서 불조절을 해가며 알맞게 구워 접시에 담아낸다. 여러 사람분의 갈비는 몇 차례로 나누어 들여오는데, 진한 양념맛 탓인지 다소 식더라도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고객들의 이야기다. 지금의 조선옥 건물은 6·25전쟁 뒤 길이 넓어지면서 골목 안으로 몇 걸음 들여다 새로 지은 것으로 역시 50년 넘은 고옥이다. 양념갈비 1인분 1만3500원, 육개장 1그릇 5천원.
‘음식이야기’는 앞으로 ‘자격있는’ 원조집을 찾아, 그 깊은 맛의 내력을 소개해 드립니다.
나도주방장/ 조선옥 육개장 입 안에서 고깃살이 녹는다?
조선옥의 또다른 맛은 뻘건 고추기름이 가득 덮인 육개장(대구탕)에도 있다. 고춧가루를 푹 고아놓은 듯 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이 매울 것 같지만 오히려 시원하게 감치는 깊은 맛이 난다. 살코기는 물론 정육점에서도 걷어내 버리는 간막이 힘살까지 푹 삶아 우거지처럼 입 안에서 녹는 부드러운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선배인 김씨 할머니의 솜씨를 10년 넘게 지켜보며 대물림을 했다는 엄명옥 할머니는 가정집에서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훌륭한 맛을 내, 집안 대소사에 요긴한 먹을거리로 내놓을 수 있다며 그 방법을 일러준다.
준비해야할 고기는 양지머리나 허벅지살 등을 기본으로, 갈비나 정육을 다듬고 남은 살과 간막이 힘살 등, 잡부위를 알맞게 섞으면 더욱 좋다(정육점에서 구입 가능).
되도록 큼직한 솥에 미리 뽑아놓았던 잡뼈를 곤 국물에 국거리를 안치고 한소끔 푹 끓여 처음 떠오른 기름을 한 차례 걷어낸다. 대파, 양파, 생강을 알맞게 넣고 굵게 간 태양초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고 솥뚜껑은 열어놓은 채 1시간 이상 푹 끓인다. 이때도 처음 떠오르는 탁한 고추기름은 알맞게 걷어내면 맛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
2시간쯤 끓이면 양파는 형체도 없이 흩어지고 힘살까지 흐물흐물 녹아 죽처럼 부드러워진다. 빨간 고추기름도 선명하게 밝은 빛깔을 띠며 매운기운이 누그러져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맛을 내게 된다. 다 끓인 뒤 소금간을 하고, 끓는 상태에서 떠먹어야 제맛이 난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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