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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컬처타임] 도시의 리듬을 교란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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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5 00:00 수정 : 2008-09-1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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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모드를 사색모드로 바꾼 지하보도의 멈춤버튼 ‘광화랑’

▣ 오현미/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사진/ 노세환)

서울 거리를 다니다 보면 갑자기 이 도시의 구획된 대로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곳은 미로같이 꼬불꼬불한 골목길이어도 상관없고, 혹은 산길이어도 상관없다. 어쨌든 통제와 감시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일 테니까.

여기 도심 속에서 도심의 리듬과 다른 리듬을 타는 공간이 존재한다. 이름하여 광화랑. 이 공간은 지하철 5호선이 지나는 광화문역 내에 있다. 통상적인 전시장이라고 하기에는 결함이 많은 곳으로 보이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기에는 아주 적당한 곳이며 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만약 전시장을 화이트 큐브로만 규정짓고 있다면 ‘광화랑’은 좋은 전시장이 될 수 없겠지만, 광화랑의 위치가 가지는 정치·문화적 지형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면 엇박자를 생산하는 미술가들에겐 ‘가능성을 소진하지 않는 가능성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에 더해 현재 열리고 있는 ‘문득 바라보다-서울의 발견’전은 위에서 언급한 광화랑의 가능성을 현 실태로 잘 보여주고 있다.


김을, 김태헌, 이부록의 자그마한 작품들은 서울의 거대한 도시적 질서의 리듬을 아주 잘 교란시키면서, 그 교란의 틈새에 관람자들을 서게 한다. 이 틈새야말로 우리를 보행 모드에서 사색 모드로 전환시키는 작동 버튼이다. 우리 시선의 순방향을 엉클어버리고, 우리가 보는 것을 한번쯤 의심하게 만드는 이들의 작품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유쾌한 패러독스의 효과를 크게 내고 있다. 광화문역을 지날 때 군중들 속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면 뒤이어 오는 사람들과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의 물결을 휘젓는 소용돌이가 생겨나듯이 이 전시 또한 그러한 소용돌이로서 순응적 시스템을 휘젓는 멈춤이 되고 있다. 7월4일까지, 광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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