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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노년의 은사에게 대접하는 청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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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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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불도장과 바닷가재요리)
해를 넘기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들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부모와 은사, 은인들이 아닐까 싶다. 이제 막 자신의 입지가 서고 있는 청장년층이라면, 이런 감사드릴 분들의 대부분이 연로하거나 더러는 이미 타계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때론 초조한 마음을 갖게도 하지만, 때는 자신이 만들면 된다는 말이 있다. 미루거나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들 또한 나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담은 작은 표현만으로도 큰 위안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각별한 자리를 마련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다소 분에 넘친다 싶어야 두고두고 흡족한 기억이 더한 것이 또한 사람의 마음이다. 평소 자신의 주변에서 미리 점찍어놓은 곳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 아직 정해진 곳이 없다면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백리향(02-789-5823)을 떠올려볼 만하다.

나이가 지긋한 상대일수록 양식보다는 중식인 청요리의 향수가 더 짙고, 평소 크게 부담없이 느껴온 친숙한 분위기도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단골들이 꼽는 백리향의 매력은, 첫째는 음식이고 다음은 만족할 만한 분위기다. 63빌딩 57층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유유한 한강과 사방으로 꼬리를 물고 흘러가는 차량 행렬이 마치 시간의 흐름을 내려다보듯 한없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준다. 창가로 테이블이 이어지는 넓은 홀은 물론 수십개의 크고 작은 예약실들도 어디나 이같은 경관들을 볼 수 있는데, 예약시 좀더 좋은 전망을 선택할 수 있다.

(사진/주방장 손성이씨)
30년 경력의 주방장 손성이(48)씨는 서울의 대려도와 희래등, 동보성 등을 두루 거친 화교2세 중국인으로 중국요리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지휘를 받는 조리사들이 무려 27명. 이들의 90% 이상이 중국인 전문조리사들이다. 특히 주방장 손씨는 불도장과 상어지느러미요리, 굴소스요리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고, 그가 엮어내는 특선메뉴는 누구나 만족할 만한 뛰어난 맛을 갖추고 있다는 평판을 받는다. 그래서 겨울철 중노년층에 만족할 만한 불도장이나 그가 추천하는 특선요리 중 알맞은 것으로 미리 정하고 가면 메뉴선택에도 어려움이 없다.

중국에서도 신비한 요리로 알려진 ‘불도장’은 상어지느러미(샥스핀)와 해삼, 전복, 생선부레, 새우, 마른관자 등과 오골계, 돼지목살, 사슴도가니(힘줄), 송이버섯, 동충하초, 은행 등 진귀한 재료들이 실물 그대로 들어간 찜탕이다. 쇠뼈와 닭뼈를 5시간 이상 푹 고아낸 국물에 서홍주와 간장만 가미해 양념을 하지 않고 찜을 한 것이어서 맵거나 짜지 않고, 담백하면서 은은하게 입에 감치는 맛이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 한점씩 맛을 음미해가며 국물과 함께 떠먹다보면, 온몸에 훈기가 서서히 퍼지며 몸이 촉촉이 젖어나오는 자양강장식이다. 상어지느러미와 생선부레, 사슴도가니와 오골계 등이 들어가 입술이 짝짝 붙을 정도로 진하고 겨울철 노인들의 무릎을 부드럽게 해주며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구수하면서 은은하게 풍기는 향이 도를 닦던 승려까지도 그 냄새에 못 견디어 담을 뛰어넘어오게 했다고 해서 불도장(佛跳墻)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 밖에 특선메뉴로 1인 3만원 선이면 사품냉채와 게살팽이버섯수프, 팔보채, 새우요리, 삼겹살찜, 피망오리볶음, 꽃빵 식사(면과 밥류 중 선택), 후식 등으로 10가지 가까운 요리가 이어지며 손색없는 상차림을 보여준다. 식지 않도록 도자기그릇에 담아 연잎을 씌워 내놓는 불도장은 식사로 굴짬뽕이 곁들여지고 후식으로 마라우유와 야자연자탕 등을 따라내며 1인분 4만5천원.

나도 주방장/ 호피호두
파삭거리는 호두의 참맛


준비물 호두(백호두) 60g, 백설탕 40g, 물 1컵, 참깨 약간

백호두란 속껍질이 하얀 국내산 호두를 일컫는다. 호두를 4조각으로 나누어 먹기 좋도록 한 뒤 호두와 설탕을 프라이팬에 얹고 물을 알맞게 부어 은은한 상태에서 볶는다. 설탕이 녹아 호두에 엉켜붙으면서 설탕이 알맞게 배어들었다 싶으면, 호두를 건져 조리에 담아 설탕물이 적당이 흘러내도록 한다.

설탕 녹은 물이 마른 상태의 호두를 다시 프라이팬에 넣고 튀김을 해 완성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식용유의 온도다. 식용유가 너무 끓지 않도록 적당한 온도에서 호두껍질이 노릇노릇한 상태가 되도록 천천히 튀겨야 호두맛이 살아 있으면서 파삭거리는 호피호두의 참맛을 낼 수 있다. 어른이나 어린이 모두가 좋아하는 간식이 될 수 있다. 따끈한 차와 곁들여도 좋고, 맥주와 와인과도 썩 어울리는 격있는 안주여서 연말 손님대접에 적합하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리스트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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