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도 놀라는 부대찌개
등록 : 2000-11-14 00:00 수정 :
퓨전의 세계를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6·25전쟁으로 어렵던 시절 우연히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2∼3세대로 이어져 오며 여전히 사랑받는 먹을거리로 반세기를 기록하고 있는 음식. 다름 아닌 부대찌개다.
서양음식의 상징인 소시지와 햄, 치즈 등과 함께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음식인 김치와 고추장, 고춧가루, 두부와 떡가래 등 두 대륙의 서로 다른 맛이 한 냄비 속에서 뜨거운 국물과 함께 무르녹아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별미로 승화된다. 이보다 확실한 퓨전요리는 전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일본과 미주지역으로 활발한 진출을 보이고 있는 김치의 여세와 함께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부대찌개는 한국여인들의 천부적인 눈썰미에서 비롯됐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맛으로 거듭나고 있다. 먹을거리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우리 민족의 타고난 성품이 미군부대에서 나온 재료들로 세계가 인정하는 퓨전요리를 탄생시킨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 여겨진다. 맛의 표현도 만드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꼭 같지만은 않다. 지금도 당시 부대찌개의 오리지널 모습을 그대로 고집스럽게 이어오는 집이 있는가 하면, 변해가는 입맛에 따라 이들이 선호하는 소시지와 햄, 치즈와 라면 등을 세심하게 선별해 좀더 세련되고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부대찌개의 기본 골격만은 크게 벗어난 데가 없어, 세대간 격이 없는 별미이다.
초롱이고모네부대찌개(02-442-3546)는 후자에 속한다. 농축산물 개방과 음식문화의 세계화 추세로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재료도 여간 고급화되지 않고서는 고객들의 취향을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 엄순자(52)씨는 국산이나 수입품을 막론하고 고객들이 가장 선호하고 새롭게 뜨고 있는 햄과 소시지, 치즈, 콩통조림, 라면 등을 찾아 백화점과 수입식품코너들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 덕분에 테이블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부대찌개 냄비에 올려진 재료들은 외관부터 다르고, 맛 또한 재료의 차이만큼이나 전혀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메뉴구성도 기존의 부대찌개와 함께 햄전골이란 새로운 메뉴가 하나 더 있다.
일본 관광객들은 물론 주한 외국인들이 한국친구의 접대를 받아 이 맛을 접해보고는 ‘원더풀’을 연발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부대찌개가 뛰어난 퓨전요리임을 말해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주방장/ 가정식 부대찌개
끓일수록 시원한 국물맛!
준비물 소시지, 햄, 치즈, 콩통조림, 쇠고기 약간, 쫄면, 라면, 흰떡가래, 두부, 밥, 익은 김치, 양파, 대파, 당근, 미나리,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양념, 참기름(이 중 형편에 따라 몇 가지는 빠져도 크게 상관없다.)
엄순자씨는 부대찌개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점이 치즈와 햄, 소시지가 지닌 고지방분의 탈피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우리 식성에 맞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찾아내야만 어린이나 어른 모두에게 즐거운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비법을 육수와 야채에서 찾고 있다.
지난 몇회에 걸쳐 소개된 육수뽑는 방법과 재료구하는 요령들도 참고가 될 만하다. 맑은 짬뽕국물을 만들 때 사용했던 닭고기와 닭부산물(닭발과 닭뼈)도 좋고, 모밀국수국물을 낼 때 사용했던 다랑어포를 우려 사용해도 무난하다. 아니면 준비된 쇠고기를 이용하면 된다. 쇠고기 양지살을 일부는 다져서 찌개에 얹고 그 중 지방이 적은 부위를 육숫감으로 사용하면 이상적이다. 다만 국물을 낼 때 무와 양파, 대파는 물론 수삼과 홍고추가 들어가면 더욱 효과적이다. 수삼이 들어가면 지방과 느끼한 맛을 훨씬 줄여주고, 홍고추을 한두개 넣으면 칼칼하면서 시원한 맛을 내준다. 육수가 완성되면 준비된 햄과 소시지를 알맞게 썰어 야채와 흰떡 등과 함께 넣고 쇠고기 다진 것과 치즈를 얹은 뒤 국물을 넉넉히 붓고 고추장과 고춧가루, 마늘 다진 것을 풀어 한소끔 끓인다. 국물이 어느 정도 우러났다 싶을 때 쫄면이나 당면을 넣고 알맞게 풀어질 때까지 충분히 끓인다.
부대찌개는 푹 끓어야 햄이나 소시지가 더 쫄깃해지고 국물맛도 제맛이 난다. 간은 고추장에 의존하지 말고 소금으로 완성한다. 반찬은 매콤하게 무친 무채나물이나 맑은 물김치 정도면 족하다. 부대찌개를 다 먹고 난 뒤 남은 국물은 버리지 말고 김과 깻잎, 참기름을 넣고 밥을 비비면 그 맛 또한 찌개 못지않은 별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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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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