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 경력 30년. 2014년 4월20일부터 80일 정도 세월호 현장에 있었다. 잠수 업무에 투입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전화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어느 순간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고 불안했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가만있으면 멍하고, 눈물이 자주 나왔다.
7월9일 잠수 업무 투입 중단을 통보받은 뒤 심리적으로 더 힘들었다. 의사는 “불안, 과민한 기분 등으로 유의한 트라우마 증상이 관찰돼 정신건강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했다.
약을 받았다. 약 먹을 때마다 심장이 뛰는 것 같다. 멍하고 불편한 느낌이 이어졌다. 특히 아침을 먹은 뒤 오후 2~3시까지 이런 기분이 이어졌다. 병원에서 동료들과 같이 있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퇴원 뒤 혼자 있는 상황이 걱정됐다. 의사에게 “약을 끊겠다”고 했다. “혼자 있게 될 상황이 불안하다”는 얘기도 해뒀다.
80일간의 세월호 현장은 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다. 일했던 것, 봤던 것들이 떠올랐다. ‘죽는 게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이 내내 머리에 맴돈다. 슬퍼졌다.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이 상태로 사회생활에 어떻게 적응할까? 세월호에서 일하다가 다른 데 가서 일할 수 있을까?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 현장에서 잠수부로 일한 게 나를 짓누르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과 일하는 게 부담스럽다. 그러면서도 혼자 있으면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된다. 내 상태를 설명하는 일마저 어렵다. 안절부절못하는 느낌,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다. 5분 정도 괜찮다가 다시 두 번 정도 그랬다. 이제 약이 불편하지는 않다.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잘 지낼 줄 알았다. 조금 나아진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에 있을 때보다 울 때가 많아졌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눈물이 나왔다. 세월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눈물이 나왔다. 현장에서 돌아온 지 두 달. 아직도 많이 이러는구나….
운동하면서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는 것 같았다. 서울 광화문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곳을 다녀왔다. 다른 것은 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 가니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펑펑 울고 돌아왔다. 운동을 심하게 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뒤 6개월이 흘렀다. 수습 과정에서 돌아가신 잠수사 유가족을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그런대로 지냈다.
의사는 ‘간헐적인 감정의 북받침과 수면 중 각성’이 있다는 의견을 줬다. 자다가 한 번씩 깨는 것은 여전하다. 불쑥 슬픈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다. 일하러 오라는 사람이 없다. 아직 일하러 갈 상태가 아닌 줄 알지만, 그래도 일하러 오라는 연락이 와야 할 때인데 그것이 조금씩 걱정된다. 8개월이 지났을 때, 큰 변화는 없고 불편한 것은 줄었다. 한 달 뒤 의사에게 “이번달까지만 약을 먹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다른 일이 생기면서 스트레스가 늘었다. 조금 나아졌다고 느꼈으나, 다른 일이 생기면서 처음 상태로 돌아갔다. 세월호 1주기가 한 달 남았다. 요즘 들어 상태가 심해지고 있다. 한 달 전부터 우울증도 다시 느끼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차 타고 가다가도 그렇고…. 의사 소견. “감정적으로 가라앉아 있고 잦은 눈물을 보인다. 면담시에도 눈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사고 원인 진상 규명을 위해 선체 촬영에 나섰던 2015년 11월, 민간잠수사들이 세월호 침몰 지역에서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21살 때부터 잠수일을 했다. 삶의 절반 이상을 물속에서 살아온 셈이다. 몸에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세월호 구조 작업에서 돌아온 뒤부터였다. 오른쪽 어깨와 무릎에 모두 통증이 있었다. 양팔이 하루에도 2~4차례씩 저려왔다. 어깨에서 아래쪽으로 저린 느낌이 내려왔고 두 다리에도 비슷한 증세가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 부위는 양어깨, 오른쪽 옆구리, 왼쪽 엉덩이 쪽으로 늘어났다. 뼈에 괴사가 와서 수술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세월호 이전에는 없던 무리한 잠수 일정 때문이었을까?
<의사 소견>
사건충격 척도: 완전외상 수준
스트레스 척도: 심각한 스트레스 수준
우울증 척도: 유의한 우울증
자살 척도: 심각한 자살사고 우려
불안 척도: 유의한 불안 수준
수면 척도: 유의한 불면 수준
2014년 7월. 현장에서는 아직 세월호 구조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병원에 가야 했다. 잠을 자야 하는데 잘 수가 없었다. 수면제 반알을 먹으면 3시간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잘 수 있었다. 꿈에 세월호 잠수 작업 때 일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눈은 항상 피곤해서 빨갛게 충혈됐다. 하루는 친구와 포장마차에 갔는데 옆에서 떠드는 소리에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그냥 나와버렸다.
해양경찰청장이 와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기분이 절반쯤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약을 먹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이 안 좋다. 4일쯤 약을 먹다가 끊었다. 그러면 잠을 자기가 힘들다. 다시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또 다른 병원에서 ‘어깨 골괴사’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해야 한다. 입원치료까지 3~4개월을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잠수병 인정을 받았다. 건강한 몸으로 일하면 한 달에 800만원을 받는데, 잠수병 때문에 300만원을 받자고 병원에 있어야 한다. 화가 날 때마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난다.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다. 책을 못 보겠다. 책을 보면서 잠이 들고 싶었다.
|
“정부가 ‘한 푼이라도 덜 주고 잠수사들을 이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골괴사 어깨 수술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수난구조법, 산업재해법도 해당 안 된다고 한다. 해경 담당자가 2주에 한 번꼴로 바뀐다. 사람을 지치고 분노하게 만든다.”
|
|
|
점점 예민해지는 것 같다. 주위에서 떠드는 소리만 들려도 그쪽을 쳐다보게 된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가족을 만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좀처럼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꿈을 자주 꾼다. 내가 자면서 소리를 지른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해줬다. 약을 먹어도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속에서 욱하는 감정이 다시 생긴 것 같다. 정부가 ‘한 푼이라도 덜 주고 잠수사들을 이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골괴사 어깨 수술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수난구조법, 산업재해법도 해당 안 된다고 한다.
심리 지원도 없다. 꾀병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근처 병원에 다니지 왜 멀리 가냐는 말까지 한다. 해경 담당자가 2주에 한 번꼴로 바뀐다. 그럼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모두 다시 설명해야 한다. 사람을 지치고 분노하게 만든다. 이게 스트레스로 이어져서 이 문제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함께 입원한 동료가 88바지선으로 갔다. 나도 병원에 있기 싫다. 여기서 일단 탈출해야 한다는 느낌이다. 자꾸 세월호랑 연관된 사람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빨리 잊고 싶다. 세월호 뉴스가 나오면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다. 수면제를 안 먹으면 멍해져 잡생각이 난다. 악몽도 자주 꾼다. 꿈속에서 자주 싸운다. 다리가 부러지고 잘리는 끔찍한 꿈도 꾼다.
살이 너무 많이 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마신다. 새벽에 운동하며 일부러 몸을 괴롭히는데도 잠자는 일이 가장 힘들다. 뭐가 잘못된 거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병원비, 생활비,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요?
얼마 전 중동에서 2018년까지 작업할 일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몸도 마음도 갈 상황이 아니어서 후배에게 일을 넘겼다. 아내는 내가 짜증이 늘었다고 했다.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고 그게 버거워서 토한다. 꿈에서 주검을 봤다. 아내와 대화하다가도 끝은 세월호 얘기를 하게 된다. 몸무게가 10kg 늘었다. 아내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면 또 혼자 술을 마시게 된다. 혼자가 되면 화가 나고, 다시 분노가 치밀고….
아이들 숨소리에 의지해 산다_잠수사 김○○
2014년 4월23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세월호 참사 일주일이 갓 지난 때였다. 해경이 주도한 초기 수중수색 작업은 주먹구구식이었다. 같은 팀 잠수사 3명이 떠났다. 나는 4월30일 사고를 당했고, 이튿날 병원에 실려갔다. 잠수 시간이 지났는데 통신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바지선에 올라와 감압시설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
병원으로 후송돼 3박4일을 입원했지만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병원 쪽은 퇴원을 만류했다. 잠수사가 부족한 게 불을 보듯 뻔했다. 현장에 복귀했지만 다이빙을 할 수 없었다. 잠수사를 돕는 일이라도 해야 했다. 몸이 너무 힘들었다. 무리해서 버틴 게 독이 됐을 수도 있다.
<의사 소견>
사건충격 척도: 완전외상 수준
스트레스 척도: 심각한 스트레스 수준
우울증 척도: 유의한 우울증
수면 척도: 유의한 불면 수준
그해 잠수사들의 심리 상태를 점검하러 온 ‘진도심리단’ 의사 소견은 이랬다. “지난 5월 시행된 자가보고형 검사에서 사건충격 척도 완전외상 수준, 스트레스 척도 심각, 우울증 척도 유의한 수준 등.” 두 달 뒤 진행된 추가 검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증상이 관찰돼 정신건강 의학과적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는 의견을 냈다.
증상은 악화됐다. 그해 8월부터 약 없이는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약을 먹으면 이틀에 한 번씩 잠을 몰아서 자기도 했다. 혼자 있으면 눈물이 났다. 왜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나…. 한동안 희생자 수습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장님(공우영 유성수중개발 이사)은 업무상 과실치사로 피의자 조사를 받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리를 지금 죄인 취급하고 있다. 밖에선 우리가 돈 다 받고 한 재산 챙긴 줄 안다. 정부가 돈 얘기를 먼저 꺼내놓고 장난치고 있다.
넉 달 동안 가족을 두 번밖에 못 봤다. 그동안 할머니가 돌아가신 줄도 몰랐다. 약 먹고 자면 아침에 (몸 상태가) 안 좋고 일어나기가 어렵다. 머리가 늘 멍해 있다. 왼쪽 다리 마비가 아직 안 풀렸다.
잠수사들끼리 모여 있으면 의지가 되고 마음도 안정된다. 그러나 외부 사람들이 연락하면 주먹이라도 나갈 듯이 감정이 올라온다. 살이 많이 쪘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무기력, 폭식, 불면이 이어진다.
어른이어서 아이들이 희생된 게 마음 아파서,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다. 예쁜 딸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 희생자들이 세월호 어디어디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놔줘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머리로 그리고, 또 그리고.
하루라도 그 생각이 안 나는 날이 있으면 좋겠다.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한 느낌이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왜 이런 벌을 받나 생각한다. 잠을 못 잔다.
세월호 구조 작업 중 다친 뒤부터는 통증 때문에 20분 이상 걷는 게 힘들다. 살이 90kg까지 쪄서 조절 중이다. 다른 곳에서 잠수 일이 있으니 오라고 했지만 몸이 힘들어서 갈 수 없었다. 약도 듣지 않는다. 막걸리를 한 병씩 먹고 잠이 든다. 깜박깜박 잊는 일이 많아졌다.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다. 차를 주차하면서 시동을 끄지 않은 채 병원 진료를 받고 나온 적이 있다.
시간이 빨리 간다. 눈물이 자주 난다. 또 잠을 거의 못 잤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는 것 같다. 내가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하겠다. 아이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집에 있으니 그나마 아이들 숨소리가 들리는 게 위로가 된다. 2015년 초부터는 대리운전을 해볼까 생각했다. 의사에게 수면제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