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기 전 메이크업, 찍고 나서 ‘뽀샵’
이력서 사진 찍기
등록 : 2013-11-22 14:53 수정 : 2013-11-30 00:31
거울 앞에 앉으니 온갖 화장품이 보였다. 연예인이 메이크업하는 TV 장면에서 보던 것들이다. “스타일 어떻게 해드릴까요?” 분장사의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답변했다. “단정하게 잘라주세요.” “여기 미용실이 아니라서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사진관에서 메이크업을 하며 나는 순간 착각했다. “금융업계 쪽 원서 낼 때 필요한 사진입니다.”
분장사는 까칠까칠한 얼굴에 촘촘히 크림을 발랐다. 피부가 점점 창백해지는 게 거울로 보였다. 머리는 젤과 스프레이로 ‘떡칠’했다. “이렇게 해야 사진이 잘 나와요. 9~10월에는 대기업 공채가 많이 떠서 사진 찍으러 많이들 와요.” 분장사가 말했다. 이 사진관은 인기가 많아 사전 예약이 필수다. 사진만 찍으면 5만원, 메이크업도 하면 10만원이다.
메이크업이 끝나고 탈의실로 옮겼다. 대여용 정장을 입고 사진 찍는 방으로 들어갔다. “긴장 풀고요, 오늘 회사 합격했다 생각하고 환하게 웃어요.” 사진사가 말했다. 파란색 배경 앞에 앉으며 나는 생각했다. ‘오늘 연예인 된 기분이다.’ 주문이 이어졌다. “부모님께 첫 월급 받아서 용돈을 드린다. 아이고 좋아라.” 그렇게 상상하니 진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죠, 좀더 활짝, 활짝 웃으세요.” 웃는 표정을 계속 지었다. 안면 근육에 마비가 오는 느낌이었다. 사진사는 40회 넘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카운터 옆 컴퓨터로 사진사가 나를 데려갔다. ‘뽀샵’ 작업을 눈으로 확인하는 곳이다. 나름 웃었는데 표정이 부자연스럽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 있다. 사진사가 40여 장의 사진 중 하나를 골랐다. “어떠세요? 맘에 드세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진들은 더 어색했다.
‘마법’이 시작됐다. 사진 편집 프로그램에서 내 사진은 온갖 변형을 거쳤다.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걸 없앴다. 뺨에 남아 있던 수염 깎은 흔적을 지웠다. 훨씬 깔끔해 보인다. 홍조를 띠던 얼굴에 하얀 ‘분칠’을 했다. 삐져나온 머리카락도 자취를 감췄다. 심지어 올라간 어깨선도 내렸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촌스러움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넘쳤다. ‘뽀샵’ 티가 나지 않아 더욱 자연스러웠다. 내 얼굴에 혁명적 변화를 주는 데 쓰는 돈 10만원, 전혀 아깝지 않았다.
노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