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도 궁제1071호응급의학도 궁은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다. 응급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일을 한다. 응급실은 24시간 365일 쉬지 않는다. 응급실에서 일하면 그 근처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과 사고, 범죄 같은 일을 거의 다 경험한다. 응급의사는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직업 중 하나이며 인간의 가장 나약...
이동조사원 핀제1070호핀은 이동조사원으로 2년째 일하는 중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다가 친구 따라 선거기간에 투표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하던 계기가 인연이 되었다. 인구이동 조사부터 도시 하수구 배관 통계까지 핀은 조사원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두 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봇대 수를 세고 기능을 점검하고 통계 내…
취업준비생 골제1069호 골은 동네 은행에서 계약직 청원경비원으로 일한다. 서울 노량진 학원에 등록하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몇 번 응시했지만 연거푸 낙방한 뒤 선택한 일이다. 고향 부모님께서 매달 보내주시던 생활비와 학원비도 끊긴 지 꽤 되었고 백수로 계속 지내는 것도 무리였다. 시골에 계시는 골의 아버지는 아직까지 악몽으로 남아 …
대출상담사 융제1068호융은 대출상담회사에서 전화받는 일을 한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은행 문턱을 못 넘는 사람들이 융이 근무하는 제2금융사에 전화를 걸어온다. 제2금융은 빚을 빛으로 바꾸어주는 곳이다. “사람들은 제2금융은 믿을 게 못 된다고 말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예요. 하루 200만 명이 우리 덕에 목숨을 건지는걸요....
대리운전자 킨제1067호 킨은 새터민이다. 어떤 이는 탈북자라고도 부르고 북한이탈주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킨의 직업은 심야의 대리운전이다. 킨은 남으로 넘어와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말투로 인해 번번이 적응에 실패했다. 대리운전은 최소한의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몇 년째 버틸 만하다. 손님과 말을 섞을 이유도 없고 목적지를 알려주면...
전파사 탕제1066호 탕은 요즘 사설 글쓰기 창작 아카데미학원에 다닌다. 시를 배우기 위해서다. 탕은 아내가 잠든 밤 조용히 혼자 일어난다. 밥상을 펴고 앉아 시를 써보기 위해 끙끙거린다. 깎아놓은 연필심을 종이에 꾹꾹 눌러가며 시심을 담은 단어를 고른다. 벽으로 돌아누워 잠든 아내의 숨소리가 부드럽다. “아내의 저 ...
용팔이 튠제1065호튠은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 일한다. 주로 컴퓨터 부품들을 조립해주거나 수리하는 일을 한다. 직원은 주인과 튠 둘이다. 손님이 없을 때는 구석에 앉아 중고 모니터를 닦는다. 사람들은 이제 인터넷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용산까지 찾아오는 고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짖을 일이 없는 경비견처럼 튠은 ...
동물원 사육사 얌제1064호 얌은 얼마 전까지 계약직 동물원 사육사였다. 주로 원숭이들을 맡았다. 얌은 새끼 알락꼬리여우원숭이의 기저귀를 채워주었고 히말라야원숭이의 목욕물을 덥히고 망토원숭이의 텃세를 버티기 위해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일을 그만두기 전까진 혼기를 놓친 다람쥐원숭이들의 소개팅을 주선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얌은…
독거노인 령제1063호독거노인 령은 얼마 전 타투 전문가를 찾아갔다. 령은 그동안 폐지를 주워서 모아놓은 돈을 내놓았다. 자신의 앞가슴에 DNR(Do Not Resuscitate)라는 글씨를 새겨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얼마 전 령은 전세계에 자신처럼 가슴에 이런 문신을 한 노인이 많다는 것을 양로...
배달왕국의 판제1062호 판은 중국집 배달원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집을 나와 중국집에 딸린 방 한 칸에서 먹고 잔다. 몇 년간 꾸준히 돈을 모아 동네에 치킨집 하나를 차릴 수 있는 자금이 마련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판은 화교인 사장님의 진지한 창업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제 이 나라는 중국집보단 치킨집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