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이 통하는 로마에서 길을 잃다제1065호봄은 왔으나 이번에도 봄 같지 아니하다고 하는 봄날에, 문득 봄 같은 봄날이 언제였는지 궁금해하며 하릴없이 머리 긁적이던 비 오는 어느 날, 필자는 3박4일 일정의 로마 출장 지시를 받았다. 그 지시에 사족을 달 수 없는 궁박한 월급쟁이 처지임을 10초간 한탄하고 “또?”라며 토끼 눈처럼 동그래질 아내의 눈을...
백범은 또 말다툼을 했을까?제1061호세상일이 그렇다. 너나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옳다고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가령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면 그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길 가는 이를 잡고 물을 이유도 없다. 그런데 온 인류가 동의한다는 이치를 실현하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얼마를 주어야 공정하냐는 문제…
‘목숨값’부터 넣어야 했다제1057호4월이 오지 않길 바랐는데, 어김없이 와버렸다. 꼭 1년이 지났구나. 그곳에도 봄이 오고 꽃은 피는지. 오늘 나는 다시 호수를 찾았단다. 바다가 없는 이곳에는 바다 같은 호수가 있어. 지난해 이맘때 여기서 수신 불명의 편지를 보냈었지. 어른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가는 길에 너무 울지 ...
뜨겁다고 던져버리진 맙시다제1054호최저임금이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모두들 한 번씩 집어보려 하지만, 화들짝 놀라서 이내 옆 사람에게 떠넘긴다. 그래서인지 말은 무성한데, 딱히 잡히는 것은 없다. 감자가 식어 관심도 같이 시들어가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익숙한 풍경이다. 최저임금이 도입된 지 한 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잊을 ...
이 모든 소란을 환영함제1051호먼 바다를 건너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바다가 넓고 험한지라 길잡이가 필요했다. 어느 날 바다에 격랑이 몰아쳤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 상인들은 바다의 신이 진노한 탓이니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얘길 들었다. 상인들은 의논 끝에 길잡이를 제물로 바쳤다. 그러자 바다는 다시 고요해졌고, 상인들은 …
그리스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제1048호1979년 가을 어느 날, ‘보스’라는 투박한 애칭을 가진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반핵 콘서트에서 노래한다. 데뷔한 지 15년여가 흘렀고, 그동안 일하는 사람들의 구체적 일상을 노래로 옮겨왔지만, 정치적 공연은 멀리해온 그였다. 노래는 단 2곡. 그중 하나는 이제 막 만들어 소개하는 신곡이었다. 제목은 <...
시간이 구원해주지는 않는다제1045호새해다. 새로운 달력을 벽에 건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각오로 다시 한번 해보자는 결의를 다지는 건 좋은 일이다. 희망과 걱정이 교차한다면, 희망은 키우고 걱정은 줄이는 방안을 고민해보면 될 일이다. 비관이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니까, 소매 걷고 한번 해보는 거다. 정초부터 화급...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제1042호공항을 내 집처럼 가까이해야 하는 게 나의 일이다. 긴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매번 호기를 부려보지만, 한동안 비행기를 타지 못할 때면 나도 모르게 공항으로 차를 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금단현상치고는 참으로 희귀하고 어이없다. 덕분에 비행기의 속살을 볼 기회가 많다....
반신불수의 만물박사제1039호밤새 바깥으로는 겨울비가 잔잔했고 꿈속에서는 칠면조가 어지럽게 뛰어다녔다. 밤늦게까지 천명관의 소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읽었던 탓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사내는 한때 트럭을 몰고 다니며 제법 먹고 살았으나, 트럭 기사들이 벌인 도박판에서 돈을 잃고 트럭도 잃게 된다. 날로...
워싱턴에서 온 콜럼버스제1036호10월12일은 ‘콜럼버스의 날’이다. 1492년, 그가 오늘날 아메리카로 알려진 대륙에 발을 내디딘 날이다. 위대한 미국이 그의 발끝에서 시작된 날이니, 국경일로 삼아 대대손손 기념할 날이겠다. 그러나 이날은 산타가 온 날이 아니다. “긴장해 다들… 넌 이제 모두 조심해보는 게 좋아”라는 서태지의 노랫말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