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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

[윤리적 소비] 기업의 의도적 ‘상품 진부화’… 강요된 자발적 소비 ‘소비 통한 행복’ 벗어나서 ‘윤리적 소비’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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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21 11:41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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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는 미국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의 글을 쓴 신영복 선생의 작품. 사단법인 더불어숲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소비 행위로 점철되어 있다. 소비 외에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린 듯 ‘소비’라는 삶의 양식에 압도되어 있다. 때론 삶의 질이 구매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닌가 싶다. 사회적 지위나 성취감이 상징적으로 ‘구매력’과 관련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소비에 관해선 우리가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가 잉여생산의 소비처를 식민지로 돌리기 위해 총칼을 앞세워 물리적으로 침탈했다면, 기업과 자본주의는 은밀히 계산된 광고와 집요한 마케팅으로 침투해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물론 외양은 ‘자발적 소비’를 띠고 있다. 끝없는 소비로 이루어진 자본주의적 삶에서도 질문은 여전히 던져진다. 더 많이 소비하면 더 행복해질까? 소비는 미덕일까?

오늘날 기업과 자본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비 창출에 사활을 건다. 사람들이 모이고 눈길 닿는 어디를 둘러봐도 광고 아닌 것이 없다. 오감을 자극하며 쉼 없이 소비하라고 유혹한다. 광고와 마케팅이 너무나 집요해 더 이상 자발적으로 제품을 구매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광고와 마케팅은 갖지 못한 것을 집요하리만치 욕망케 하고,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은 비하하도록 부추긴다. 소비를 창출하기 위한 자본의 전방위적 전략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제품 수명을 단축시켜 새로운 소비를 자극한다. 이른바 의도적인 상품 ‘진부화’다. 개인적 덕성으로 근검하게 생활하는 사람조차 소비하는 상품의 기술적 노후화나 결함 앞에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소비 창출에 수단·방법 안 가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스마트폰 교체율 및 교체주기’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비자의 스마트폰 교체율(77.1%)과 교체주기(15.6개월)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짧다. 유독 우리나라에만 최신 스마트폰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넘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우리 국민이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기질을 지녔다며, 교체주기가 빠른 이유를 국민의 일반적 특성으로 돌린다. 돌이켜보면 사용하던 바늘이 부러지자 ‘오호 통재라’ 하며 애통해하던 <조침문>(조선시대 수필)에선 물건과의 정서적 관계까지 엿볼 수 있다. 물건이 귀한 시절을 살아온 이들에겐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껴 쓰는 습관을 간직한 어른들을 간혹 만날 수 있다. 갑자기 어느 날 이런 정서들이 우리에게서 모두 사라진 걸까? 사실상 강제된 자발적 소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소비경제 구조에 그 원인이 있는 건 아닐까?

아마존에서 전자책 개발을 맡았던 제이슨 머코스키는 “소비재 생산기업은 기술적인 노후화를 염두에 두고 제품을 디자인한다. 내일 판매할 기기를 생산하면서 이미 그 기기를 대체할 상품을 연구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세르주 라투슈는 <낭비사회를 넘어서>에서 새 상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진부화’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기술 발전에 따라 기존 제품이 폐기되는 ‘기술적 진부화’, 광고와 유행을 이용해 디자인만 약간 바꾼 채 새것이라며 여전히 유용한 물건은 버리게 만드는 ‘심리적 진부화’, 수명을 제한하는 결함을 인위적으로 기술에 삽입하는 ‘계획적 진부화’가 그것이다.

예컨대 프린터를 제작할 때 인쇄 매수가 1만8천 장이 넘으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하는 마이크로칩을 삽입한다든지, 제품 보증 기간이 끝나자마자 고장 나도록 설계하는 식이다. 스마트폰 제조업체와 통신회사가 결합해 제품 약정 기한을 2년 안팎으로 설계하고, 스마트폰의 내구연한을 1~2년으로 해 새 제품으로 갈아타도록 하는 전략도 여기에 해당한다. 구형 폰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경로도 빠르게 차단된다.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단종시켜 구 품종의 구입을 차단하고 오히려 비슷한 가격대의 중저가 모델 구입을 유도한다. 이 모든 ‘계획적 진부화’ 전략은 신규 수요를 개척하기보다 대체 수요를 증대시킬 목적으로 이뤄진다. 흔히 자동차산업에서 그렇듯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제품을 진부화시키기 위해 모델 변형을 계획적으로 단행하고 광고판촉비를 대거 투입한다. 빠른 주기로 기존 제품을 진부화시키고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기 위한 전략들이다.

소비사회 덫으로부터 구원할 방법은? 


우리는 과잉생산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고 있다. 인간은 물건을 소비하는 데 삶을 소비하며, 넘쳐나는 쓰레기는 지구 한 켠에 켜켜이 쌓여간다. 해마다 나이지리아·가나 등 제3세계 쓰레기 처리장으로 수출되는 컴퓨터가 1억5천 만대에 이른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중금속을 분리해내는 제3세계 어린아이들이 유독 물질에 그대로 노출된다. 수은·카드뮴·비소·납 같은 중금속이 포함돼 있지만 보건 기준은 무시된다. 바다 한가운데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가 엉키면서 거대한 쓰레기 섬을 이루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피터 디킨스는 “신자유주의의 전면화가 모든 공동체적 원리를 소멸시키고 끝없는 경쟁과 그에 동반되는 비교를 강요함으로써 사람들이 ‘심리적 궁핍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자본은 우리에게 ‘오직 소비할 때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집요하게 속삭인다. 사회적 기준과 공공성은 사라져가고, 시장의 힘에 순응하는 ‘신자유주의적 소비 주체성’이 개인의 의식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소비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무리 소비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더 많은 소득을 갈망하며 발버둥친다. 모두가 행복해지길 원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세계. 그 안에서 ‘소비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간직한 채 무한경쟁 속에 내던져진다.

자본이 강요하는 자발적 소비, 그 소비사회의 덫에 걸린 우리를 스스로 구할 방법은 없을까? 대표적으로는 ‘윤리적 소비’ 운동을 들 수 있다. 소비자로서 단순히 소비 활동만 했는데, 현실적 재앙을 만들어내는 소비자본주의의 나쁜 관례나 시스템을 지지해주는 꼴이 되어왔다. 윤리적 소비란 자신의 소비 행동의 결과가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생산과 소비가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윤리적 소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사려 깊은 소비, 윤리적 가치판단에 의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개념 있는 소비’ ‘착한 소비’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윤리적 구매 행동으로는 △비윤리적 기업의 제품을 구매·이용하지 않는 불매운동 △윤리적 상품 적극적 구매 △윤리적 평가 비교조사 정보를 이용해 구매 △윤리적 제품을 생산·판매하도록 요청하는 사회적 행동 △자동차 같은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품을 피하고 가급적 DIY(손수 제작) 상품을 이용하는 것 △소비를 줄이는 것 등이 있다.

하지만 윤리적 소비를 ‘소비’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두면 안 된다. 윤리적 소비의 또 다른 목표는 소비자의 주체적 참여와 건강한 생산자의 상생적 발전 보장을 목표로 한다. 최근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지역 순환경제에서의 윤리적 소비로 그 외연이 확장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첫출발 때부터 윤리적 소비를 지향해온 생협(생활협동조합)은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연결하고 있다. 즉, 개인의 고독한 소비 활동에서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주체적 소비로 변모하는 것이다.  

지속 가능하지 못한 ‘소비 지향 자본주의’가 비록 쾌락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인간 자신, 그리고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근본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의 말을 되새겨보자.

“삶에서 정말 중요한 건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건 장애물과 짐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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