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영국 런던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버려진 공장과 창고 건물을 보수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템스강의 지류인 리강을 따라 갤러리와 스튜디오, 극장 등이 줄지어 있다. 김정원
화이트빌딩 인근에 ‘야드 시어터’가 있다. 이곳의 대표 루시 올리버 해리슨은 2011년 이사를 왔다. 루시와 친구들은 주변 올림픽파크 공사장의 폐기물과 폐자동차의 좌석을 재활용해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창고를 110개 객석을 갖춘 소극장으로 바꾸어냈다. 1년 매출은 약 60만파운드(약 10억원)로 이 중 25%는 영국 예술위원회와 다양한 자선재단에서 받는 지원금이고, 75%는 자체 사업으로 벌어들인다. 야드 시어터는 예술가들의 새롭고 실험적인 공연을 주로 올리며 모판 역할을 한다. 야드 시어터를 나와 리(Lea) 강가로 5분여를 걸어올라가니 스투어 스페이스(Stour Space)가 보였다. 이곳은 또 다른 예술가들의 작업장이자 전시장이며 지역 주민들의 문화 공간이다. 1층엔 전시 공간과 카페, 상점이 있다. 2층과 3층엔 12개의 예술가 스튜디오가 있고, 이곳에선 48명의 예술가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입주한다. 이곳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은 1층 전시 공간에서 전시되고, 전시 기간이 끝난 뒤에는 1층 상점에서 판매된다. 또 입주한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멘토링을 제공한다. 예술가 네트워크와 연대의 힘 이 공간들을 운영하기 위해 HWFI의 다양한 지역 자원을 활용한다. 창업자들은 2009년 야드 시어터처럼 버려진 창고 두 개를 저렴한 가격에 임대했고, 주변에 있던 고물상에서 주워온 것과 올림픽 건물 폐자재를 이용해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한 것이다. 2012년 스투어 스페이스는 ‘로컬리즘 액트’(Localism Act)를 근거로 해크니구 최초의 지역자산으로 등재되었다. 영국은 2011년 ‘로컬리즘 액트’라는 법률을 시행했는데 소유자가 토지나 건물 등의 자산을 매각할 때 지역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산일 경우 지역공동체가 우선 구매할 수 있도록 6개월 동안 유예기간을 갖도록 했다. 이처럼 런던자산개발회사가 산업유산 건물을 헐지 않고 개발 계획을 수립한 것, 화이트빌딩의 개·보수에 지원금을 제공한 것, 야드 시어터의 각종 지원 기관 확보, 스투어 스페이스의 지역자산 등록 모두 HWFI CIG의 논의 결과다. 지역의 예술가, 구청 관계자, 런던자산개발회사 관계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지역 예술가들은 입을 모아 HWFI CIG가 엮어낸 예술가들 네트워크와 연대의 힘을 강조한다. 멋드러진 올림픽 주경기장과 올림픽 공원 조성은 이미 2012년 런던올림픽 개최에 맞추어 완료되었다. 하지만 올림픽 유산 계획에 포함된 HWFI 지역의 재개발 사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술가들이 자생적으로 창조해낸 공간을 최대한 밀어내지 않는 범위에서 재생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예술가들과 전체 지역 개발 담당 모든 이해관계자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 이들이 택한 방법은 예술가들이 자생해온 그들만의 소규모 비즈니스 노하우를 지역의 주요 비즈니스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우선 건물, 스튜디오, 카페 하나하나의 특색을 이해하고 그들만의 예술적 재능이 팔릴 수 있는 시장과 후원자를 매칭시켜주면서 성장할 수 있는 개별 방법을 찾고 있다. 개발이 끝나면 유입될 1만여 명의 주민과 직장인은 1천여 명에 불과한 이곳이 예술가의 재능을 인정하고 판매할 수 있는 무대가 되어줄까? 예술가들의 시장가치는 치솟는 이곳 부동산 가치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따라잡을 수 없다면 그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건물주들이 예술가들을 위해 부동산 가치를 공공화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까?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작품은 가난했던 원주민과 돈 많은 이주자들 사이의 벽을 허무는 매개가 될 수 있을까? HWFI의 미래를 고민하는 HWFI CIG 참여자들의 질문은 이어진다. 대규모 재생사업이 진행되는 곳에서 대자본과 원주민의 충돌은 빈번하다. 이들은 갈등과 반목을 풀어내기 위한 소통의 장을 만들었고, 소통은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존중해나가면서 공간과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여정은 6개월 내에, 1년내에 완성될 수 있는 단기간 사업이 아니다. 2025년을 목표로 오늘도 대화하고 연구하는 이들을 응원한다. 김정원 스프레드아이 공동대표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