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동쪽 자락에 위치한 인구 75만 명 남짓한 작은 나라다. 부탄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히말라야 산속 ‘은둔의 왕국’ 혹은 ‘마지막 샹그릴라’로 불리던 부탄에 외국인 관광이 자유화된 것은 1991년부터다. 그렇지만 부탄의 독특한 관광 시스템 때문에 지금도 관광이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부탄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하루 250달러(성수기) 혹은 200달러(비수기)를 여행사에 미리 내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여행사는 이 돈 가운데 65달러를 관광세로 정부에 내고, 나머지 돈으로 관광객의 숙식·교통·가이드 등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며 정해진 일정에 따라 관광객을 안내한다.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내며 부탄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탄관광위원회 국장은 부탄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문화를 꼽는다. 히말라야 깊은 산속에서 가난하지만 그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보전하면서 좋은 자연환경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은 물질 만능과 극심한 경쟁 그리고 개인주의적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경이와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위안을 준다. 그들의 눈에 비친 부탄의 이미지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다. 나의 첫인상도 역시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였다. 그러나 두세 번 부탄을 방문하고 외국인이 거의 가지 않는 동쪽 끝까지 여행하면서 부탄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보며 과연 부탄 사람이 행복한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부탄이 국제적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국가의 독특한 정책(국민총행복정책)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만난 부탄 관리가 “부탄은 동남아 국가에 비해 특별히 행복하지는 않지만, 다른 나라보다 정책적으로 국민행복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나라”라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다. 2011년 11월 유엔은 ‘행복: 전체적 발전을 위하여’라는 매우 중요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문은 “행복은 인간의 근본적 목표이고 보편적인 열망이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은 성질상 그러한 목표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빈곤을 감축하고, 웰빙과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더 포용적이고 공평하고 균형 잡힌 발전이 필요하다”고 결의했다. 이 결의를 주도한 나라가 부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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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4대 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는 1972년 16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자신의 국정 철학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영국과 인도 등에서 공부한 그는 “모든 나라 정부와 국민이 경제적 부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한 사람들은 안락한 생활을 하지만, 많은 사람은 나라의 부가 늘어나도 빈곤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심지어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 부를 증대하기 위해 환경을 파괴한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열망한다. 따라서 한 나라의 발전 정도는 사람들의 행복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며 GDP 대신 국민총행복(GNH)을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1960년대 부탄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1500년대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동차 도로는 전혀 없었고, 경제는 생계 농업과 물물교환에 의존했다. 평균수명은 38살에 지나지 않았고, 1인당 소득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51달러에 불과했다. 의사는 두 명만 있고, 학교는 통틀어 11개 뿐이었다.
그러나 국민총행복을 국가발전 전략으로 채택한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전혀 다른 나라로 변모했다. 부탄은 1990년대에 연평균 7.8%, 2005~2010년에는 연평균 8.7%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2014년 2730달러(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는 7560달러)로 늘었다. 유치원부터 10학년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공립 고등학교와 대학교육이 무료다. 모든 의료 서비스 또한 무료고 필요하면 외국 병원까지 보내 무상으로 치료해준다.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38살에서 69살로 증가하였다. 전 국토의 70% 이상이 숲으로 덮였고, 생태보호지역이 전 국토의 51%에 이른다. 동식물의 다양성이 잘 보전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문화가 잘 계승 발전되면서 정치적으로 민주화에 성공하였다.
GNH란 무엇이며 그것은 정책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는가. 우선 행복에 대한 부탄의 인식(이해)이 서구 사회와 매우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 행복은 사적이며 주관적인 것으로 즐거움 혹은 만족 성취도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에 부탄 정부는 행복을 주관적 웰빙만이 아니라 다차원적으로 인식한다. GNH를 총괄하는 GNH위원회는 “GNH는 개인과 사회의 물질적 웰빙과 정신적·정서적·문화적 필요 사이에 조화로운 균형을 달성하는 다차원적 발전전략”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행복은 개개인이 느끼지만 집단적으로 실현된다고 이해한다. GNH에 개념화된 행복은 원자화된 개인 사이에 추구되는 경쟁적 선이 아니다. 개인과 집단의 행복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부탄은 2006년 4대 왕이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이행했다. 2008년 제정된 민주헌법에는 “국가는 GNH를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GNH가 국가발전전략의 주류가 되고, 제10차 발전계획(2008~2013년)은 GNH에 기초해 작성되었다. 부탄의 GNH는 기본적으로 네 기둥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기둥은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적 발전이고, 둘째 기둥은 문화 보전과 증진, 셋째 기둥은 생태계 보전, 넷째 기둥은 굿 거버넌스, 즉 좋은 민주주의다. 이러한 네 기둥을 토대로 GNH의 9개 영역을 설정했다.
부탄 정부는 ‘국민행복’을 측정하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국민총행복조사’를 실시한다. 이 조사를 위해 9개 영역에 각각 2~4개씩 총 33개 지표를 설정했다. 각 지표에 하위 지표(변수) 총 124개를 설정했다. 이를 토대로 각 지표의 충족도를 평가한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GNH 지수를 계산하기 위해 두 개의 문턱(threshold)을 사용한다. 우선 각 지표에 대해 ‘충분 문턱’을 정하고, 개개인이 각 지표에 대한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 조사한다. 여기에 각 지표의 가중치를 곱하고 그 값을 합계하여 각 개인이 충분 문턱을 어느 정도 충족하였는지 평가한다. 충족비율이 50% 이하인 사람은 ‘불행’, 50~66%인 사람은 ‘약간 행복’, 66~77%인 사람은 ‘대체로 행복’, 77% 이상인 사람은 ‘매우 행복’으로 분류한다. 부탄 정부는 중간에 해당하는 66%를 행복 문턱으로 설정하였다. 66% 이상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된다. 부탄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분류되려면 9개 영역 가운데 적어도 3분 2는 충족해야 한다는 의미다. 행복 문턱이 꽤 높은데, 이는 정책 목표임과 동시에 이것을 중심으로 토론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행복 잣대로 정책·프로젝트 선정
부탄 아파트 단지 풍경. 부탄에서는 건축물 높이를 3층 이내(수도 팀푸에서는 6층)로 규제한다. 박진도
2015년 조사에 따르면, 부탄 국민의 43.4%(‘매우 행복’ 8.4%, ‘대체로 행복’ 35.0%)는 행복하고, 56.6%(‘약간 행복’ 47.8%, ‘불행’ 8.8%)는 ‘아직 행복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한 사람의 비중은 2010년 조사(40.9%)에 비해 약간 증가했다. 부탄 정부는 GNH 지수를 전 국민에 대해서 측정할 뿐 아니라, 이것을 종카그(현에 해당하는 행정구역)별, 성별, 도시-농촌, 교육 수준별, 연령별, 혼인 여부, 직업별로 측정해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맞춤형 정책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예를 들면, ‘아직 행복하지 않은’ 부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교육, 생활수준, 그리고 시간 사용과 굿 거버넌스 등에서 행복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지역별로 보면, 도시에서는 공동체 활력, 거버넌스, 시간 사용, 문화에서 그리고 농촌에서는 교육과 생활수준 등에서 행복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도 팀푸에서는 공동체 활력이 가장 부족하다. 팀푸에서는 사람들이 바빠서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 아파트의 경우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탄 정부는 제11차 5개년 계획부터 주택건설 정책을 바꾸었다. 과거에는 주로 주택 공급에만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어린이 공원, 노인 쉼터, 농구 시설 등 공동시설을 함께 지어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 또한 농촌지역에서는 보건소와 학교가 매우 멀고 생산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 통신, 전기, 도로 등 인프라 정비에 노력한다.
부탄 GNH 정책의 중요 요소 중 하나가 ‘정책심사도구’다. 부탄 정부는 이 심사도구를 통해 GNH라는 렌즈로 국가 정책과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평가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GNH를 향상시키는 정책과 프로젝트는 선정하고, 반대로 악영향을 미치는 정책 및 프로젝트는 거부한다. 부탄이 아직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이 심사도구를 통해 보니 WTO가 GNH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부탄은 더 이상 은둔의 나라가 아니다. 빠르게 성장하고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개발을 재촉하는 포클레인 소리가 수도 팀푸를 거쳐 동쪽 끝까지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부탄은 지금 급속한 이농과 도시화, 개인주의 만연, 공동체 붕괴와 사회안전망 위축, 청년실업과 높은 자살률, 서구문화 유입과 전통문화 훼손, 환경 파괴 등 성장통을 앓고 있다. 부탄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성장’을 원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국내총생산 증대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부탄 정부는 이미 다른 나라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부탄의 2만여 공무원의 인사를 책임지는 카르메 치팀 인사위원장(전 국민총행복위원회 차관)과의 대화를 통해 부탄이 GDP보다는 GNH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GNH를 국정지표로 삼는 이유를 들어보자. “부탄은 GDP 성장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3천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다. 부탄 사람들은 더 나은 생활을 원한다. 그러나 GDP는 GNH를 증진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GDP와 건강, 여가, 교육, 문화, 환경, 공동체 활력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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