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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은퇴 뒤에도 생계비 위해 취업… 위태로운 ‘미끄럼틀 사회’

[노년의 행복] 연령 증가할수록 서양과 반대 ‘역U자’ 행복그래프 ‘노인 근로빈곤’ 탓… 연금 수령비율·액수 너무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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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8 17:31 수정 : 2016-05-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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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파산>. 최근 일본 NHK 스페셜 제작팀에서 펴낸 책 제목이다.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능력을 상실한 노인의 비참한 삶을 뜻한다. 수십 년간 성실하게 일해온 중산층이 평균수명의 증가로 노후에 빈곤계층으로 전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한국의 65살 이상 가구의 노인빈곤율은 50%에 육박한다. 노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2050년에는 35.9%까지 증가해 일본(40.1%) 다음으로 세계 두 번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가능인구(15~64살)는 감소 추세로 돌아섰고, 65살 이상 노인 비중은 14살 이하 유소년 비중을 추월하게 된다. 지금은 생산인구 5.6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하지만 2030년에는 2.6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한다. 노인복지 지출의 증가에도 노인빈곤율은 정체 중이다.

서구의 경우 연령과 행복 간의 관계에서 고령일수록 행복이 증가하는 유(U)자 형태가 일반적이다. 나이가 들수록 상황 적응능력이 커지고, 삶을 충만하게 즐기게 되기 때문에 행복수준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한국은 딴판이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행복과 삶의 만족이 오히려 감소하는 역U자 그래프가 한국 사회다. 올해 초 <한국일보>가 벌인 ‘저성장 시대, 한국 리포트’ 4개국 행복도 조사(2015년 12월, 한국인 성인 1천 명 전화면접조사 및 나머지 3개국 각 패널 500명 온라인 조사)결과가 이를 실증적으로 확인해준다. 60대 이상 연령층의 행복도는 3개국(일본·브라질·덴마크)에서 증가한 반면, 유독 한국만 하락했다.

한국 노인빈곤율 50%, ‘이코노사이드’ 사회

우리나라는 서양과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행복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인들이 공원에서 외롭게 앉아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이코노사이드’(econocide), 즉 경제적인 이유로 자살하는 사회를 뜻하는 개념이 있다.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과 함께 노인자살률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높다. 이는 노년의 불행이 높은 자살률로 이어지는 사회를 함축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4 노인실태조사’(만 65살 이상 1만451명)에서 10.9%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로 주로 ‘경제적 어려움’(40.4%)을 꼽았다. ‘건강’(24.4%)보다 훨씬 높다.

높은 빈곤률과 ‘이코노사이드’를 줄이려면 일차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해야 한다. 통계청이 지난 2월 발표한 ‘가계·금융 복지조사로 본 가구의 동태적 변화분석’에 따르면 노인가구가 될수록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비율이 증가한다. 가구주 연령이 60살 이상인 가구의 빈곤진입률이 18.2%에 이른다. 40~59살 가구주(7.2%)에 견줘 훨씬 높다. 정년퇴직 뒤에도 노동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일에서 벗어나는 ‘유효 은퇴연령’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71.5살, 70.1살에 이른다. 명예퇴직 등으로 직장에서 탈락하는 연령은 빨라지는데, 은퇴 후에도 계속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65살 이상 고령층 고용률은 30.6%(2015년)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은퇴 뒤에도 여전히 일하는 노인일수록 더 행복한지 아니면 불행한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문제는 일하는데도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노인빈곤율에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04년 당시 가구주 연령 50~65살인 중산층 866가구 가운데 6년 뒤(2010년)에도 여전히 중산층으로 남아 있는 가구는 45%(390가구)에 불과했다. 52.9%(458가구)는 빈곤층으로 떨어졌다.

사회보장제도의 미성숙도 무시할 수 없다. 기초연금·생활보장제도·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소득보장이 노인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3%에 불과하다. OECD 평균(58.6%)에 크게 못 미친다. 고령층 인구 중 연금 수령자 비율은 45%(532만명·2014년)에 그치고, 월평균 연금수령액은 49만원에 불과하다. 수령액 10만~25만원이 50.6%다. 공적연금이 미흡하다보니 시장소득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불안정한 시장 취업에 따른 ‘노인 근로빈곤’ 때문에 노인들은 좀체 행복감을 갖기 어렵다. 한국이 서구와 달리 연령이 증가할수록 역U자 행복그래프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2014년 노인실태조사’ 원데이터를 활용해 노인의 경제활동 실태를 살펴봤다. 전체 응답 노인의 33.1%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 회귀분석 결과 우울감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건강’ ‘취업 여부’ ‘경제적 만족도’ ‘사회·여가·문화 만족도’ ‘친구 및 지역사회 만족도’ ‘자녀와의 관계 만족도’ ‘배우자 유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취업 여부가 경제적 만족도보다 노인의 우울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삶의 질을 결정짓는 6가지 만족도(건강, 경제수준,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사회·여가·문화, 친구 및 지역사회)를 살펴보니, 배우자와의 관계 만족도(3.70)가 가장 높은 반면 경제상태에 대한 만족도(2.52)가 가장 낮았다. 이외에는 자녀와의 관계(3.68), 친구 및 지역사회(3.44), 사회·여가·문화(3.08), 건강(2.79) 순이다. 특히 취업노인일수록 비취업노인에 비해 6가지 만족도가 모두 높았다. 노인의 경제활동이 ‘사회적 유대’에 영향을 미쳐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노인실태조사에서 계속 취업 중인 노인들(28.9%)의 종사 업종을 살펴보니 농림·어업(38.3%), 경비·수위·청소(19.3%), 운송·건설(10.8%), 가사·조리·음식(8.2%), 공공·환경(7.6%), 판매·영업(6.8%) 순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단순노무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음이 뚜렷하다. 노년에도 일을 계속 하는 이유로는 ‘생계비 마련’(79.3%)이 가장 많았다. 이어 ‘용돈 마련’(8.6%), ‘시간 보내기’(3.6%), ‘건강 유지’(3.1%) 등으로 나타났다. 근로 목적이 생계비 마련인 노인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낮고 우울감도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고령자, 일을 통한 사회 참가 욕구 커

우리나라 노인가구의 소득 구성을 보면, 임금소득과 자영업소득을 포함한 근로소득 비율이 63%에 이른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OECD 국가의 평균을 보면 공적이전소득(58.6%)이 가장 높고, 근로소득은 24% 수준이다. 한국은 OECD 평균과 정반대인 셈이다. 이처럼 근로노인 비율은 높지만, 60살 이상 임금근로자의 월급여는 전체 임금근로자 평균임금의 80.7%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정부가 시행 중인 노인 일자리사업의 90%가 저소득 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공헌형’(사회봉사 등) 일자리다. 이런 일자리 역시 하루 3시간, 월 20만원의 활동비 지급에 그친다.  

그렇다면 연령이 증가할수록 행복도와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 일본의 경우 노인의 경제상태는 어떨까? 일본의 65살 이상 고령자 취업률은 21.7%(2015년)로 OECD 국가 중 한국 다음으로 높다. 다양한 노인 고용지원정책이 일본의 노인취업률을 높이는 배경이다. 일본과 한국 모두 노인취업률이 높지만 일하는 이유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일본의 고령자는 ‘건강’ ‘일을 통한 사회활동’ ‘사회 참가 욕구’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국민생활기초조사(2013)’를 보면 일본 노인가구의 전체 소득 중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18.0%에 불과하다. 공적연금소득이 68.5%를 차지한다. 일본 내각부의 ‘고령자 경제생활 의식조사(2011년)’에 따르면, 60살 이상 남녀 응답자 중 경제적 상황에 ‘걱정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71%에 이른다.

일본의 빈민운동가 우아사 마코토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빈곤상태로 떨어지게 되는 사회를 ‘미끄럼틀 사회’라고 이름 붙였다. 미끄럼틀 사회에서 한국 노인들은 행복이란 단어가 낯설기만 하다.

오세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sein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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