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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행복도 투쟁으로 얻어낼 대상”

이영문 전 국립공주병원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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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8 17:15 수정 : 2016-05-2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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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본질적으로 내면의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정신’에서 한국인의 행복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영문(54) 전 국립공주병원장은 “행복도 자유 못지않게 투쟁해서 얻어낼 대상”이라며, “물질적 기준에 과도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 행복이 잘 만져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행복’을 정신적·역사적, 그리고 사회·경제·문화적 층위 등 여러 측면에서 살피며 고민해왔다. 행복 관련 이런저런 강연회를 만들거나 발표자로 참가했다. 지난해 말까지 3년간 국립공주병원장을 지낸 그는 “한국의 역사적·사회경제적 조건들이 행복을 느끼기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4월11일 이 전 원장이 살고 있는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이뤄졌다.

손정민

2001년부터 국가에서 5년마다 정신질환 역학연구를 하고 있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당 3명이 평생 한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에 비해 22% 늘었다.

정신질환이 증가할수록 행복도는 자연히 낮아질까? 둘 사이에 명확한 연관이 있을까? “정신질환 급성기 때는 당연히 행복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체질환이든 정신질환이든 모두 같다. 자신에게 갑자기 질환이 일어났을 때 누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질환이 회복되거나 어느 정도 적응이 이뤄지기 때문에 반드시 계속 불행하다고만 할 수 없다. 예컨대 만성질환의 경우 그 때문에 생활 자체가 더욱 가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질환으로 인해 반드시 불행해지는 건 아니다. 물론 치료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정신질환 발생률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정신질환 때문에 사회경제적 불이익을 얼마나 받느냐가 질환의 자연발생률보다 행복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정신질환 분류인 에프(F)코드가 있으면 어린이의 경우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된다. 성인도 생명보험 적용이 안 된다. 회사 인사고과에도 은연중 불이익을 받는다. 정신질환으로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권고사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 사유로 취업을 막는 법 조항이 84개나 된다. 둘 다 불면증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병원에 가고 다른 사람은 안 갔다고 치자. 정신과 의사가 질환진단을 내려 F코드를 찍으면 그 자체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취업 당시 현실 판단 능력이 없다면 몰라도 정신질환 유무만 갖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특히 현재 시점에서 치유·회복돼 있으면 취업에 지장이 없어야 한다.”

한국인의 ‘행복 결핍’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한국인은 살아가면서 심리적 외상 같은 상처가 많다. 이는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 정신질환의 절반은 자연적인 내인성, 절반은 외부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반응성으로 발생한다. 과도한 긴장, 경쟁 강박사회에서 사회공포증과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불안장애와 우울장애가 증가하고 있다. 각종 폭력이 상존하는 사회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우리나라에 정신적·심리적 외상이 매우 흔한데 ‘행복 불감’처럼 외상에 대해 우리는 너무 둔감하게 살아왔다. 개인이 스스로 극복해야 될 것으로 여겨왔다. 집단 따돌림이 발생했을 때도 항상 피해자가 무언가 잘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멘탈이 강해 극복했더라도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청소년이나 청년 시절 학교·군대라는 공간에서 과도한 공부 강요나 가혹 행위로 정신적 외상이 자주 발생한다. 그런 것을 개인과 가족의 문제라고 방치하고 있다. 각종 심리적 외상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거의 없고 또 그것에 둔감하다. 지나친 경쟁만으로 우울증이 증가하는 건 아니다. 보호 없는 사회가 불행을 더 가속화한다. 정신질환은, 개인과 가족에 국한되는 신체질환과 달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므로 더 보호해야 된다.”

“보호 없는 사회가 불행 더 가속화해”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은 정말로 불행한 것일까? 국립공주병원 환자의 평균 나이는 40대 이하다. 청소년도 꽤 있다. “정신질환과 우울증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치료와 극복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재발이 가장 큰 문제다. 특히 병에 대한 편견이 재발을 일으킨다. 문제의 원인을 개인으로 돌려버리고 치료받을 기회도 놓치고 그래서 더 악화시킨다.” 망상·환각에 시달리고 언어가 와해되고 정서가 둔감해지는 정신분열증(조현병)은, 평생 동안 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거나 미래에 앓게 될 확률(평생유병율)이 100명당 1명이다. 국립공주병원 환자 중 절반가량이 조현병을 갖고 있다. “정신분열증은 전세계적으로 발생률이 비슷하다. 그러나 조현병 역시 사회적 치료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정신병원 수용 중심이다. 학생의 경우 학업 기회를 놓치게 되고 학교의 지원도 거의 없다. 재발하면 다시 수용하고 만다. 우리나라 정신병상은 1995년께 약 3만 개였는데 지금은 8만개를 넘어선다. 정신병상 수가 계속 늘고 있는 이유도 병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지역마다 정신건강센터를 만들어 환자가 지역에 거주하면서 치료받는 사회적 치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수용 중심으로 하다보니 사회 복귀가 늦어지고 인생 낙오자로 찍히면서 불행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는 “삼성의료원 등 5대 메이저 병원은 세계 첨단이지만 정신과는 전세계 꼴찌”라고 한숨을 내뱉었다.  

“기후로 보면 한국은 행복해야 할 나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자살률은 거대한 사회경제 지표다. 그래서 다른 국가들은 자살을 보건복지 차원에서만 다루지 않는다. 우리는 보건복지부 혼자 떠맡고 있고,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자살률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른 선진국 자살률은 우리의 4분의 1 수준(10만 명당 10명 미만)이다. 금융위기로 엄청난 경제적 재앙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 10만 명당 5명 정도다. 지리적·계절적 기후도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장 비슷한 이탈리아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5명 미만이다. 계절적 기후로 보면 우리는 매우 행복해야 될 나라이다. 사계절도 있고….”

그는 적어도 현대적 요소로서 행복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민주주의 확립이라고 말했다. “행복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게 프랑스혁명 즈음이다. 민주주의 염원 자체가 인간평등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평등을 지탱하는 것 중 하나가 사회정의다. 정의가 확립되지 못한 사회는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감이 낮아진다.” 그가 보기에 한국은 “1987년 이후 어느 정도 민주주의 제도가 갖춰졌지만 아직까지 사회정의는 확립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다보니 행복해지기 어렵다. “사람마다 조건이 다른데 어떻게 행복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의 삐뚤어진 면이 오랫동안 파고들어왔다. 자본의 논리가 모든 것에 작용하고 있다. 사회정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자본의 논리가 횡행하면서 모든 사람의 불행을 초래하고 있다.” 정신건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사회경제적 요인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치며, 특히 개인의 행복을 방해하는 사회경제적 지표들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행복을 누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행복도 자유 못지않게 우리가 투쟁해 얻어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의 이른바 ‘한’(恨)이란 정서는 행복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는 국민들이 갖고 있는 한은 개인의 한만이 아니고, 신분상승의 제도적 제약 등 ‘사회학적 한’이 잠재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민족의 한은 국제적으로 질병 분류가 돼 있을 정도다. ‘화병’(HwaByeong)이 그것이다. 컬처 바운드 신드롬, 즉 문화에 내재한 신드롬으로 국제질병분류에 등록돼 있다. 이것은 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답답한 마음이나 우울하고 아픈 증상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신체로 표현하는 걸 화병이라고 보았다. 많은 사람이 화병이라며 병원에 찾아온다. 아마도 우리의 독특한 ‘역사적인 한’이 현실에서 교정되지 못한 게 작용하는 것 같다.” 무슨 얘길까, 궁금해진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한번도 민중이 승리해본 적이 없다. 그 한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억울해한다. 한국전쟁, 여수·순천 사건, 5·18 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등 여전히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한이 수없이 많다. 국민 전체 정서에 거대 암반처럼 모두 한을 갖고 있다. 사회경제적 제도를 통해 그런 한을 풀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불평등이 더 심화되고 있다. 사회 불평등은 정신건강에 매우 위험하고, 불행을 자초한다.”

“한국전쟁·세월호, 암반처럼 웅크린 한(恨)”

남북 분단도 한의 일종이다. “아무래도 한반도 분단 자체가 항상적인 불안 요소이다. 무의식에 전쟁 위협을 늘 갖게 되고, 그것이 투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불안 요소를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핀란드를 보면, 스웨덴과 러시아로부터 식민지 위협을 받고 지배당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낳은 국민질환(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가 노력해왔다.”

경제성장과 개발 과정에서 만연한 불공평과 사회정의 부재도 불행을 초래한다.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누구는 1억원에 미리 땅을 팔아버렸는데 나중에 판 이웃은 2억원을 받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흔히 일어났다. 그에 따른 박탈감, 차별받았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얼마나 불행하게 했는가. 1억원에 판 사람은 그 돈으로 다른 거처를 마련하기도 어렵고… 결국 재개발을 추진·용인한 국가폭력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왔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12년간 열심히 공부했는데 대학은 못 들어가고 과외비로 뿌린 돈은 엄청나고 가족은 빈곤해졌고 자기 목표는 이루지 못했고, 또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은 어렵고…, 그런 사회에서 행복을 느끼기란 어렵다.”

‘행복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행복을 내건 간판이 곳곳에 널려 있고 행복을 위한 긍정심리학도 횡행한다. 대부분 마음을 긍정적으로 가져라, 명상해라 이런 것들이다. “물질적 행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행복하다’는 느낌의 기준과 표준을 높여 놓았다. 행복은 자족하는 것인데, 모든 것이 수치화돼 있다보니 스스로 자족하면 오히려 불행이나 행복 결핍을 느끼게 된다. 타인을 돕고 기부하고 사회정의를 위해 민감하게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또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고 그런 것들을 행복 기준에 포함시켜야 한다. 기준이 없으니까 행복이 잘 만져지지 않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이 작은 것에 행복을 잘 못 느끼는, 말하자면 “행복 체감에 훈련돼 있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없는 상태에서는 행복을 못 느낀다. 존중감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모든 문제를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어쩌면 매우 이기적인 행태로 우리 사회경제가 발전해왔다. 우리가 타인과 비교하는 데 익숙해 있는데, 이 또한 자기존중감이 없기 때문이다. 정신병리 용어 중에 ‘관계 사고’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 ‘눈치 보기’다. 관계 사고는 열등감과 연결돼 있다. 지극히 자기 주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잣대가 성립돼 있지 않으면 항상 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자기 존중감이 있고 눈치 보지 않는 그런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행복을 높일 수 있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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