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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상향 이동 통로 열려 있어야

[행복의 사회적 조건] 경제·민주주의 수준 비슷한 국가보다 행복도 낮아… 튼튼한 실업 급여 등으로 직업만족도 제고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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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8 17:08 수정 : 2016-05-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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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 제3시청 앞 거리를 걷는 시민들. 이들은 잘 짜여진 노동시스템의 혜택을 누리며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고 누구나 행복한 것은 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나 행복한 국가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평균적인 행복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글로벌 조사 전문 기관 갤럽이 세계 200여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삶의 만족도 인식조사 결과를 보자. 한국은 경제와 민주주의 수준이 비슷한 다른 국가보다 행복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최근 발표된 국제비교를 보면 삶의 만족도가 비교대상 32개국 중 27위에 불과하다. 왜 그런가?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크게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으로 나뉜다. 먼저 개인적 요인을 살펴보자. 일단 건강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도가 높다. 건강이 최고다. 결혼은? 결혼한 사람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도가 높다. 늘 한결같이 행복한 것은 아니고, 결혼 직전과 직후, 즉 신혼 즈음에 제일 행복해한다. 자녀는 어떨까? 자녀가 없는 것보다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 또한 늘 행복한 것은 아니고, 자녀가 어릴 때 더 행복감을 느낀다. 선진국일수록 남성보다 여성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행복감을 느낀다. 일할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행복감이 높다. 직장의 안정성이 높고, 업무 자율성이 높으며, 동료와 관계가 좋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소득은 어떠한가? 소득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소득이 높다고 행복해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소득보다, 주변 사람과의 상대적인 소득수준이 행복도에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내 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남이 더 높고 그 격차가 크면 클수록 행복해하지 않는 것이다. 인생 주기로 살펴보면, 행복감은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가장 높고 나이가 들수록 하락해 50대 때 최저점에 다다른다. 이후 다시 행복감이 상승하다 70대부터 다시 하락하는 곡선을 그린다.

건강·결혼·자녀·소득 등 개인적 변수

이러한 요인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이지만, 국가정책을 통해 사회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보자. 우리나라는 장수 국가다. 2013년 평균수명이 81.9살에 이른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른 건강수명은 69.5살에 불과하다. 10년 이상 병치레하다 생을 마감한다. 앞서 70살부터 행복감이 다시 떨어진다고 했는데, 건강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금연과 절주에 대한 홍보, 주기적 암 검사, 예방접종 등 감염관리 강화, 운동 처치 등 보건행정의 틀을 사후치료에서 사전예방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초혼 연령이 서른 살을 훌쩍 넘어선다. 희망 자녀 수는 두 명이 넘는데 실제로는 자녀를 한 명밖에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행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가 결혼을 시켜줄 수 없지만 결혼과 출산, 양육이 두렵지 않게 시스템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청년실업 문제와 신혼부부의 주거문제 해결에 나서고,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며, 공보육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날로 늘어가는 소득 격차를 완화할 수 있게,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가 임금가이드라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모든 사람을 고임금의 정규직 근로자로 만들 수 없다면, ‘중규직’이라도 확대해 장기간 고용이 보장되도록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더해야 할 것이다.

그럼 다시, 행복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요인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 발전 수준이 높을 때, 즉 잘사는 나라가 가난한 나라보다 국민의 행복도가 높다. 국민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행복감이 높아진다. 실업률이 낮고 고용률이 높을 때 행복도가 높아지며, 소득분배가 개선되고 사회적 이동성이 높다고 여길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사회가 투명해 부패가 적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 때 행복도가 올라간다. 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책적으로 이런 상식적인 상태를 만들면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도는 올라갈 것이다. 문제는 희망하는 대로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것인데, 그래도 한번 따져보자.

실업률 낮지만 고용률도 떨어져 


다행히 한국은 경제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2015년 현재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경제대국 중 하나다. 1인당 국민소득도 일본이나 뉴질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러나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고, 경쟁력은 추락하고 있다. 아무리 잘살아도 뒤로 후퇴하면 불행해진다. 기존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 새성장 동력 확보, 혁신 생태계 구축 등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매우 낮다. 2015년 3.6%로 유럽연합(EU) 평균(9.4%)이나 미국(5.3%)보다 훨씬 양호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용률은 65.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5.7%)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북유럽의 스웨덴(74.9%)이나 덴마크(72.8%)에 비하면 10% 가까이 격차가 벌어진다.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매우 낮은데도 고용률이 높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취업을 포기한 실망실업자가 많기 때문이다. 경력 단절 여성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행복하기 어렵다. 경제 발전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근본적인 해법이겠으나, 일자리 나누기, 노동시장의 경직성 완화,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 지원 등을 통해 일자리 수요와 취업 가능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후 산업화 시기에 아버지 세대보다 자식 세대가 더 잘살고, 직업적으로도 상향 이동한 대표적 모범 국가다. 경쟁이 극심하고 복지가 약해도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을 매개로 한 상향 이동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점차 그 길이 막혀가고 있다. 특히 사교육 경쟁에서 밀려나는 저소득 가정의 박탈감은 커져간다. 10대 학령기 교육의 성과로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이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제공되는 양질의 일자리로 진입하는 일생일대의 티켓이 되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

학령기에만 집중된 교육을 넘어 평생교육 체제에서 부단히 자신의 직무 능력을 향상시키는 사람이 그만큼 상향 이동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향상된 직무 능력을 바탕으로 승진은 물론 더 좋은 일자리로 이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에 놓인 진입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한 직장에서 오래 눌러 있어야 월급이 오르는 호봉급보다 하는 일의 가치만큼 보상을 받는 직무급 체제로의 전환도 과제다. 대학 타이틀이 아닌, 부단한 자기 개발의 결과로 뒤늦게라도 언제든지 상향 이동할 수 있다면 분명 행복해질 것이다.

상향이동 가능성 점차 막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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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부패지수도 높다. 2011년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는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투명도를 가지고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멕시코보다 투명하지 않은 나라로 나온다. 다행히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우리나라 점수(41)가 멕시코(38)보다 더 높다. 그러나 이 또한 OECD 평균(56)보다 낮고, 1등 핀란드(82)나 2등 덴마크(75)와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정치 개혁, 정부 혁신, 그리고 강력한 부패 척결이 요청된다. 인물 대결이 아닌 정당 간 정책 대결이 가능하도록 선거제도를 바꾸어, 비공식 인적 네트워크가 부패 네트워크화하는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미국이나 EU처럼 로비를 합법화해 음지에서 벌어지는 이익 투입을 양지로 끌어올려 ‘정책 흥정’이라는 뒷거래의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행복감을 높이는 개인적·사회적 조건을 하나씩 살펴보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할 일도 많고 갈 길도 한참 먼 걸 발견하게 된다. 과연 행복하기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추어놓을 수 있을까? 모든 방면에서 노력해야겠지만 역량을 집중해야 할 부분은 아무래도 노동시장 개혁이 아닐까 한다. 위의 <그림>을 보면 직업만족도가 높은 나라가 삶의 만족도에서도 높은 순위를 보인다. 직업만족도 1위 국가 덴마크를 보자. 이 나라는 노동시장이 유연하면서도 노동자가 느끼는 안정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EU가 회원국에 벤치마킹을 권하는 나라다. 흥미로운 점은 덴마크의 노동시장 유연성이 유럽에서 제일 높다는 점이다. 법적 고용보호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낮다. 근속기간도 유럽에서 제일 짧다. 그런데 국민들의 직업만족도가 제일 높다. 비결이 뭘까?

유연한 노동시장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실업 급여와 강력하고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공공 직업훈련과 고용서비스) 덕분이다. 후자에만 2011년에 국내총생산(GDP)의 2.21%를 썼다.

방향은 명확, 추진력이 관건

한국은 불과 0.28%다. 그러다보니, 덴마크 노동자 10명 중 1명 이하(9%)만 현재의 직장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68%는 “현 직장을 그만두거나 해고되더라도 다른 직장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미래를 낙관했다. 게다가 빈부 격차가 대물림되지 않도록 누구나 어릴 때부터 질 높은 공보육과 공교육의 혜택을 받게 하고, 직업 세계와 연결된 대학교육을 국가가 무료로 제공한다. 그리고 사회 진출 이후에도 직업 세계와 교육·훈련을 오가며 변화하는 기술 수요에 자신의 직업 능력을 맞출 수 있게 평생교육시스템을 운영한다. 어떤 가정에 태어나든 동등한 교육과 훈련 기회를 보장받고,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의 원칙하에 자신의 능력에 부합하는 보상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직업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첩경이다.

행복학 이론대로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손쉽게 창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라도 발걸음을 옮겼으면 한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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