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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건강·소득·안전 순서 나이들수록 행복감 추락

[서울시민 행복방정식] OECD 조사 11개 영역 중 소득과 연령이 결정적 영향 미쳐… 계층 소속감·계층 이동가능성 등 주관적 요소도 큰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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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8 15:21 수정 : 2016-05-2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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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새삼 상기하지 않더라도 행복이 사람들 삶의 궁극적인 지향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서울에 사는 1천만 시민 모두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개인의 행복감은 심리적 태도나 상태에 따른 것이 아닐까? 공공부문의 정책적 개입으로 시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까? 한 사회나 개인의 행복감은 측정 가능한 것일까?

최근 행복을 둘러싼 많은 질문과 사람들의 행복을 높이려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현 정부는 스스로를 ‘행복 정부’로 불리길 원한다. 과연 한 사회나 도시가 행복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행복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은 상태를 말한다. 서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하면서 끝없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거대 도시가 되었다. 서울에 사는 수많은 사람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으며, 성장의 풍요로움을 경험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도시의 성장과 발전을 통해 과거의 시간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2012년 유엔은 <세계행복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공공부문에서 시민들의 삶의 행복을 정책적으로 고려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전세계가 과거 수십 년에 비해 엄청난 경제성장을 했지만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졌는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는 한 사회의 발전 수준을 국민총생산(GDP)으로 측정하던 일반적 기준에 대한 본질적 문제 제기다. 이 보고서의 출현으로 전세계의 성장, 한 국가의 성장, 한 도시의 성장은 무엇을 의미해야 하며, 사람을 위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공공부문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세계 대도시들 서로 행복정책 경쟁

오늘날 세계 대도시들은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시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즉 사회의 성장 동력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문제는 도시의 경쟁력이 경제성장만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 직면한 것이다. 이미 절대 빈곤을 벗어난 발전국가의 도시들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 사회의 ‘질적 성장’을 제고할 수 있는 정책의 개입 없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한계가 있을 거란 정황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서울을 포함한 많은 도시에서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이 전면에 부각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행복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행복에 대한 경험적 이해와 자료가 전제되어야 한다. 행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행복을 이해하고 측정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세계 각 국가와 도시에서 주요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행복과 웰빙을 어떻게 이해하고 측정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며, 2011년부터 ‘더 나은 사회’(Better Life Initiative)를 통해 세계 시민의 행복을 측정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에서도 ‘행복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수십 만 명의 시민이 함께 참여해 공동체의 행복지표를 구성했다. 개인적 웰빙, 관계, 건강, 일자리, 생활환경, 재정, 교육, 거버넌스, 경제, 자연환경 등 10개 영역으로 구성된 영국의 행복지표는 국민의 삶의 객관적 상태를 측정하는 지표와 사람들의 주관적 태도 등을 측정하는 지표가 모두 포함되었다. 이를 근거로 영국민들의 행복 상태를 파악해보니 주거환경을 포함한 생활환경 영역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행복감을 보였지만, 교육 영역과 재정 영역에서는 가장 낮은 행복감을 나타냈다. 한편, 유럽연합(EU)에서도 전체 회원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럽연합 삶의 질 지표’(European Union Statisticson Income and Living Condition)에 개인의 안녕(well-being)을 측정하는 부문을 개발하여 2013년부터 지표에 포함했다. 프랑스 역시 국민들의 심리적 감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사람들의 시간사용에 관한 조사에 최근 웰빙 측정 모듈을 포함했다.

서울시민 행복관 러시아·폴란드 등과 유사

OECD 자료에 따르면, 개인의 행복감을 결정하는 영역으로 학력, 기술요소, 건강, 주관적 만족감과 일과 삶의 균형요소 등이 거론되었다. OECD 국가 내 사람들은 주관적 만족과 건강 영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특히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덴마크·스웨덴 사람들은 주관적 만족감 영역이 자신들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언급하였다. 한편, 전체적으로 행복감이 낮은 지역인 터키·러시아 사람들은 건강 영역을, 멕시코·칠레·브라질 등 라틴아메리카 지역민은 학력과 기술 영역이 행복 결정 요인으로 가중치가 높다고 응답했다.


서울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서울시민들은 OECD ‘더 나은 사회’ 11개 영역 중 자신의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영역의 순위를 건강, 소득, 안전 순으로 생각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영역은 5점 만점에 4.55점으로 건강이 가장 중요하며, 소득이 4.39점으로 두 번째 중요도를 나타냈으며, 안전 4.23점, 고용 여부 4.19점, 일과 삶의 균형 4.05점, 주관적 만족감 4.05점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민과 유사한 행복 가치관을 보이는 국가로는 러시아·폴란드·룩셈부르크였고, 서울시민이랑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국가는 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흥미로운 결과다.

이제 구체적인 실증 데이터를 통해 서울시민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를 파악해보자.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은 2014년 서울서베이 자료를 통해 서울시민의 행복지수 영향 요인을 파악했다. 서울서베이는 서울시의 도시사회정책지표체계로 도시의 사회구조 변화와 시민들의 삶의 질, 가치와 의식, 소비와 문화 등의 변화를 조사, 분석하여 정책수요를 예측하거나 정책 효과를 분석한다. 서울시는 서울서베이를 위해 서울시민 2만 가구 15살 이상 가구원 전수조사를 2003년부터 매년 실시하고 있다. 조사데이터를 보면 시민들의 삶의 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시계열로 파악할 수 있다.

서울시민들의 행복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소득과 연령이다. 예상하겠지만 서울시민들은 가구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상대적으로 저소득 가구층보다 행복하다. 서울시민들은 가구소득이 10% 증가하면 행복감은 0.04점 증가했다. 물론 소득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소득 증가분만큼 개인의 행복감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민의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는 연령이다. 서울시의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덜’ 행복하다. 이 점에서 서울시민의 행복감은 전세계 사람들의 행복감과 차이가 난다. 이른바 ‘U 패턴’(그림1)이 전세계 사람들의 연령과 행복감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형태다. 즉, 전세계 사람들은 젊을 때 행복감이 가장 높으며, 이 행복감은 40대 중반 정도까지 계속 하락한다. 이후 50대, 60대 등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차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반대다. 서울시민들은 나이 들수록 행복감이 툭툭 떨어진다. 중·장년층, 고령자의 행복감은 점차 바닥을 향해 돌진한다.(그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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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수록 행복감 떨어져

그렇다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주관적 생각이 개인의 행복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가정생활에 대한 서울시민의 만족도가 1점 상승할수록 체감 행복지수는 1.64점 상승했고 재정 상태에 대한 만족도가 1점 상승할수록 체감 행복지수 또한 1.44점 상승하였다. 사회생활에 대한 만족도 역시 체감 행복지수에 유의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해당 만족도가 1점 상승할 때 체감 행복지수는 1.35점 상승했다. 주관적 계층의식 또한 시민들의 행복감과 중요한 연관을 맺고 있다. 서울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이 평가할수록 좀더 행복감을 느꼈다. 또한 앞으로 개인의 노력을 통해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할수록 현재 느끼는 행복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결과 중 흥미로운 것은 서울시민의 행복감 증가분을 설명할 때 소득 증가에 따른 행복감 증가분보다 다른 주관적·인지적 요소인 계층소속감, 계층이동 가능성, 생활영역별 만족도와 신뢰 요소의 설명력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이다. 더욱이 서울시민의 행복감 정도에 좀더 세분화된 분석 단위를 적용하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상이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경우 평균 가구소득수준이 높은 자치구와 가구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지역 간에는 지역민에 미치는 행복 영향 요인이 다르다는 의미다.

우리는 서울시민들이 생각하는 행복영향 영역에 대한 생각과 실증자료 분석을 통해 서울시민의 행복 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물질적 요소뿐 아니라 주관적·인지적 요소 역시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시민들의 행복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혹은 사회 공동체의 태도와 인지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행복의 질(質)과 수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 영향이나 사회경제적 조건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다차원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정책의 공공성과 정책의 우선순위 결정의 근거 자료로 삼아야 한다.

실증자료 바탕 이정표 삼아야

또한 사람들의 행복이나 삶의 질과 관련하여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론의 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 공론의 장에서 정부 영역, 시민 영역, 전문가 영역 등이 상호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소통을 위한 자료 생산(모니터링, 지표, 다차원 분석 등)이 필요하고, 그 소통의 결과물로서 자료 축적이 이뤄진다면(예, 정기적인 국가·도시행복보고서, 행복영향평가 등) ‘더 나은 공동체 삶’에 하나의 이정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궁극적으로 시민과의 소통을 제고하고 정책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접근법이다.

서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 성장의 결과물이 응축된 상징 공간이다. 전쟁의 폐허 위에 한강의 기적을 전세계에 알리면서 세계적인 메가시티로 도약했다. 눈부신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만큼의 그림자도 드리웠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1천만 시민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때다. 행복 담론 논의는 그 출발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변미리 서울연구원 글로벌미래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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