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한국의 기울어진 행복

[행복불평등] UN 행복 평등지수 157개국 중 96위… 소득불평등 낮은 편인데 행복불평등 왜 높을까

1110
등록 : 2016-05-17 15:46 수정 : 2016-05-24 16:35

크게 작게

한국의 행복 평등지수는 지구상 157개국 중 96번째 자리에 놓여 있다. 의자는 행복불평등도가 높아 삐걱대고 위태롭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지표는 ‘국민행복’이다. 대통령선거 때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제시해 선택을 받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 보고서의 제목은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였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국민행복을 위한 13개 전략과 133개 과제를 세웠다고 한다. 국민일자리 행복 회의, 행복주택, 행복한 국민의 삶, 내일행복지원단, 행복 로드맵, 행복가족 프로그램, 국민행복연금위원회, 행복한 임신과 출산, 행복학습지원센터, 국민문화행복지수, 행복한 생활문화 공간, 국민행복 인프라…. 너무 많아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3년 뒤, 청년들은 지옥불 세상이라며 ‘헬조선’을 말하고, 중·장년과 노년층에서는 살기 어려운 ‘디스토피아’를 우려하는 사람이 늘었다. 국민행복을 약속받은 국민들은 ‘국민불행, 절망의 세상’에 자꾸만 가까워지고 있다.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 서 있는 대한민국에서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은 어영부영 너절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2012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3113달러로 세계 34위였다. 2015년에는 2만8338달러로, 3년 사이에 6계단 상승해 28위가 됐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14위에서 11위로 올라섰다. 그런데 국민 ‘삶의 만족도’(행복지수) 경쟁에서는 해마다 후퇴하고 있다. 유엔이 지난 3월 발표한 ‘2016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 행복지수(최저 0점, 최고 10점)는 5.835점. 조사 대상 157개국 가운데 58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에서 순위를 매기면 29위로 최하위권이다. 행복지수의 절대 수준보다 추이는 더욱 부끄럽다. 유엔 발표 시점 기준으로 살펴본 국가별 행복 순위에서 한국은 2015년 6계단(41→47위), 2016년에는 11계단(47→58위)씩 연거푸 떨어졌다. 국민행복도로 측정하면 한국은 ‘질 나쁜 성장’, 또는 ‘행복 없는 성장’에 빠져 있다.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는 GDP, 사회안전망, 기대수명, 선택의 자유, 사회적 관용, 부패 인식 등 6가지 항목을 조사해 점수를 매긴다. 여기에는 나라별로 평균 3천여 명의 응답자에게 주관적 만족감을 물어 산출하는 수치가 반영된다. 일반적으로 행복지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요소에서는 한국의 점수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뒤에도 한국 경제는 미약하나마 성장세를 유지한 결과이다. 반면에 사회안전망, 관용, 부패 인식 등 정치·사회적 항목 점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정체되거나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에도 행복지수 뒷걸음질 까닭은

한국의 국민행복 지수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이상한 대목이 또 있다. 바로 행복불평등 지표이다. 행복불평등은 개별 응답자들 사이에 느끼는 행복감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표준편차(개별 응답치들이 전체 평균에서 벗어난 정도)를 이용해 측정한다. 이 값이 클수록 불평등도가 높은 것이며 작으면 그 반대이다. 2016년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 응답자의 행복 표준편차는 2.155로, 조사 대상 157개국 가운데 96위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만 골라서 비교해 보면, 평균치(1.868)보다 표준편차가 훨씬 크다. 그만큼 행복불평등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순위를 매기면 35개 OECD 회원국 가운데 행복불평등 정도가 다섯 번째로 크다.

행복불평등과 관련해 소득지니계수 산출 방식으로 ‘행복지니계수’도 구할 수 있다. 국내외 여러 행복 관련 연구에서는 일반적으로 행복지니계수가 소득지니계수의 절반밖에 안 된다. 소득불평등보다 행복불평등 정도가 훨씬 낮은 게 정상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소득이나 자산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개인 삶의 만족도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실증 연구결과도 여럿 나왔다. 소득이나 자산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추가적인 증가분과 행복감의 비례관계가 약화된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그렇지만 계층 간 경제적 격차의 심화는 정치·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국민 전체의 평균 행복지수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행복불평등 수준은 경제적 불평등 이상으로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2013년 기준 한국의 소득지니계수는 0.302로 OECD 평균치(0.315)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소득불평등 정도는 경제력이 비슷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봤을 때 양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행복불평등 정도는 OECD 회원국들에 견줘 훨씬 심각한 것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꼽는 원인은 ‘기회의 불평등’이다. 다방면으로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기회의 불평등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부모의 재산 등 타고난 배경에 따라 출발선이 아예 다르다며 아우성이다. 이른바 ‘흙수저’와 ‘금수저’로 양분된 세상이다.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득불평등 이상으로 커진 행복불평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소득분배 불평등보다 기회의 불평등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그 반응은 개인의 주관적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행복은 개인의 주관적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 또한 개인적으로 알아서 찾으라고 할 수 없다. 사회가 누구에게나 그런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줘야 한다. 한 사회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리나 불행을 피할 수 있는 권리는 모두에게 똑같이 중요한 가치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여러 행복 관련 조사에선 기회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 증가가 뚜렷하게 잡힌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가 지난해 11월 전국 성인 1천 명을 표본으로 산출한 행복도 조사결과도 마찬가지이다. 이 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평가를 비롯해 사회적 신뢰, 계층 상승 가능성 같은 항목의 평가결과가 대부분 중간값 아래로 나왔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능력과 노력에 따른 보상의 공정성에 대한 응답자들의 평가치는 행복도를 구성하는 14개 조사 항목 가운데 가장 낮았다. 연령별로는 20~30대, 소득 분포로는 중간 이하 계층이 두드러지게 낮은 평가를 내렸다. 이처럼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계층에서 기회의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느끼면 심각한 문제이다. 정치,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경제 활력도 시들게 하기 때문이다. 경제 활력과 아울러 국민행복감을 고르게 높이려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법과 제도, 관행의 공정성을 구축해야만 한다.

교육·보건 등 공공재와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낮은 것도 국민의 행복불평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풍요롭고 강하진 않지만 국민 개개인이 외롭거나 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있다. 끈끈한 사회적 관계망을 바탕으로 국민이 고루 행복한 삶을 누리는 나라이다.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매년 1위를 다투는 가난한 나라 부탄이나 코스타리카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소통과 상호작용의 부족으로 구성원 다수가 고립감을 느껴 사회 전체가 무기력증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바로 사회적 관계망이 취약한 나라가 그렇다. OECD가 2011년부터 내놓고 있는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에서 국가별 사회적 관계의 질을 비교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 부문에서 만년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의 질에 대한 측정은 가령 이런 질문에서 구한다. “당신은 지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회적 관계’ 만년 꼴찌

여기에 대해 한국의 응답자들은 72%가 ‘있다’고 답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이다. 회원국 평균은 88%에 이른다. 한국에서 성별로는 남성 71%, 여성 74%로 여성의 사회적 관계가 좀더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회적 관계망의 학력별 격차가 두드러졌다. 초등학교 졸업자는 53%가 도움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답한 반면, 대학 졸업자의 경우 83%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에 따른 격차가 상당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 행복지도의 연령·계층별 분포 또한 기형적이다. 인구 구조상의 행복결정 요인을 실증 분석한 선진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연령과 국민 행복지수는 ‘유(U)자형’ 상관관계를 보인다. 즉 젊은층이나 노년층이 중년층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정상이다. 젊은층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노년층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주어지는 여유가 행복의 배경이다. 어쨌든 어린이부터 청소년기까지 높은 행복도를 유지하다가 핵심 생산활동기에 있는 연령층에서는 조금 떨어진 다음, 은퇴 시기를 전후에 다시 행복도가 높아지는 2차 곡선을 그려야 하는 것이다.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불행해지는 행복지도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청소년층의 행복지수가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연령층보다 낮고, 은퇴할 즈음인 50대 후반부터는 다시 행복지수가 가파르게 떨어진다. 2008~2009년 조사치부터 이런 패턴이 반복적으로 포착된다. 예를 들어 한국노동연구원의 2014년 노동패널조사 결과를 보면, 연령·계층별 행복도 수치(최대 5점)가 30대에서 3.53인데 장년층(55~64살)에서는 3.37로 낮아지고, 고령층(65살 이상)에 들어서면 3.31이라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런 경향은 저출산·고령화와 함께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 경기 침체에 따른 청년 취업난과 베이버부머 세대(1957~64년생)의 본격적인 은퇴까지 겹친 영향도 적지 않아 보인다. 몇 년째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청소년과 노인자살률, OECD 평균의 두 배 이상인 노인빈곤율(49.6%·2015년 기준)은 우리나라의 슬픈 자화상이다.

국민행복 책임지는 게 정부의 존재 이유

소득이나 재산은 서로 나누게 되면 어느 시기까지 총량은 불변한다. 이와 달리 사람의 행복은 총량 가변이다. 개개인의 행복이 널리 퍼지는 사회일수록 행복 총량은 커진다. 거꾸로 다른 사람의 불행은 모두의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에서도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행복불평등이 낮은 나라 국민들의 평균 행복지수는 일관되게 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미국 독립선언문 기초자이며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사람들의 삶과 행복을 보살피는 것이 정부의 유일한 법적 목적이다”라고 했다. 국민의 낮은 행복도와 높은 행복불평등은 복합적이며 다층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그런 만큼 국민행복을 증진하려면 경제성장과 같은 단선적인 목표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등 여러 분야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 또한 종합적이어야 한다.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문은 ‘나만의 욕망’을 채우는 게 아니라 ‘우리가 더불어 행복한’ 꿈을 꾸는 데서 열릴 수 있다.


‘경제위기=국민불행’ 등식을  거부한  아이슬란드

부자  증세·사회안전망  강화  등  부활  성공

한 나라의 경제위기는 국민 삶에 고통을 안긴다. 대량 실업이 발생하든지 물가가 치솟든지, 아니면 정부가 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복지 지출을 대폭 삭감해서든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삶의 질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제위기가 닥친 나라에선 국민들이 ‘뼈를 깎는 고통 분담’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상식처럼 돼 있다.

하지만 상식은 무너지기도 한다. 경제위기에 대한 상식적 대응을 거부하고 ‘국민행복 지키기’로 버텨 위기 극복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바로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는 2000년대 들어 과도한 금융시장 개방과 자유화의 후유증으로 민간 외화부채와 금융부실이 급증하는 바람에 2008~2010년 국가 부도의 위기에 몰렸다. 은행과 부실기업 구제를 위해 복지를 축소하고 긴축재정을 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국민은 은행 구제와 외채 상환을 국민투표로 거부했다. 부실한 은행과 기업을 국민 세금으로 살리는 게 아니라 국유화하거나 아니면 망하도록 내버려뒀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주변 국가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는 논리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실업자에 대한 직업훈련과 전직 지원 서비스 확대, 실업수당 지급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의료복지 확대, 상환능력이 취약한 가계와 유망 중소기업에 대한 부채 탕감 등 위기 이전보다 더 많은 재정을 복지와 사회안전망 강화에 쏟아부었다. 필요한 재원은 고소득층과 기업에 대한 증세로 마련했다. 비슷한 시기에 부도 위기에 몰렸던 그리스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대응 방식이었다. 신용평가회사들은 ‘이단의 위기 관리 프로그램’이라며 아이슬란드가 대재앙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들의 경고는 틀렸고, 아이슬란드의 위기 극복은 성공했다. 재정지출과 복지 확대에 힘입어 내수가 살아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 활력을 되찾았다. 2013년 2.8%를 시작으로 2014년 2%, 2015년 3.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평균 1%대에 머무른 유로존 국가에 견주면 건실한 성장세이다. 2016년 2월 기준 유로존의 평균 실업률은 10.3%에 이르는 반면 아이슬란드는 3.2%로 완전고용에 가깝다. 국내총생산(GDP)과 대비한 정부 부채(82.4%·2014년), 재정적자(-0.5%·2015년), 경상수지 흑자(3.6%·2015년) 비율 등 대부분의 거시건전성 지표가 유럽 선진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경제위기 극복과 함께 아이슬란드 국민의 행복지수도 복원했다. 유엔의 연도별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2013년 국가별 행복 순위에서 9위였던 아이슬란드는 2016년 3위로 올라섰다. 더욱 놀라운 것은 행복불평등의 개선이다. 유엔의 행복연구팀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뒤 149개국의 행복 표준편차 변화 추이를 조사했다.

이 결과 표준편차, 즉 행복불평등 지수가 떨어진 나라는 39개국으로 조사 대상국 전체의 26%에 불과했다. 세계 금융위기 뒤 전반적으로 행복불평등이 더 심해졌다는 얘기이다. 반면에 행복불평등이 가장 많이 감소한 국가로는 파키스탄에 이어 아이슬란드가 2위를 차지했다. 유엔 보고서는 아이슬란드의 높은 국민통합 의식과 탄탄한 사회관계망이 국민행복의 버팀목이면서, 동시에 경제위기 극복의 동력이 된 것으로 분석했다.

김학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김학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kimhj@hani.co.kr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