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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 | 캐슈미르] “컬키를 구하라, 단추를 눌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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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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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의 미신숭배자들, 파키스탄 핵공격에 사활을 걸고 핵통제국에 접근하다

“나는 무시무시한 칼라(시간), 이 세상 모든 존재의 파괴자. 세상 모든 존재의 파멸을 예약해두었고…. 아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니라.”

1945년 7월16일 새벽 5시59분, 미국 뉴멕시코 트리너티(하느님·예수·성령 삼위일체) 테스트 사이트에서 세계 최초의 핵실험을 앞둔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힌두 서사시 ‘바아가우드 기타’(신의 노래)를 뇌까렸다.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핵폭탄 개발계획을 주도했던 유대인 오펜하이머는 일생 동안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며 힌두 성구에 빠져 지낸 인물이었다.

파키스탄과의 전쟁을 선동하는 힌두극단주의자들과 경찰의 격렬한 충돌. 종교적 극단주의는 지구적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AP연합)
“보존신인 비슈누의 화신 크리슈나는 문하생 아르주나 왕자에게 망설이지 말고 가족이든 누구든 죽이는 의무를 다하라고 몰아쳤다.” 바아가우드 기타는 궁극적으로 누구를 살리고 죽이는 결정은 크리슈나가 하는 것이지 순진한 전사 아르주나 왕자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다고 노래했다. 핵폭탄의 아버지 바이블(성경)이 그랬던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만든 핵폭탄을 일본에 떨어뜨리든 말든 그 결정은 정치가들의 몫일 뿐, 아르주나 왕자처럼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믿었다.

파키스탄엔 더욱 극단적인 정권이…


2004년 7월16일 새벽 5시, 60년이 지난 뒤 인디아에서 바아가우드 기타는 다시 핵물리학자 라자람 샨카르(Rajaram Shankar)에게 의심 없이 ‘의무’를 다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인디아의 해묵은 경쟁자 파키스탄을 향해 핵폭탄을 퍼부어라!”

그러나 파키스탄을 핵무기로 공격하기에는 명분이 턱없이 모자랐다. 비록 카슈미르를 놓고 인디아와 파키스탄 사이에 긴장감은 높았지만 전쟁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쪽은, 한달 전 이슬라마바드에서 무타히다 마즈리세 아말(MMA) 소속 강경파 근본주의자들이 내세운 전 정보국장(ISI) 하미드 굴 장군이 유혈 쿠데타로 대통령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을 몰아낸 뒤였다. 그러나 정권을 탈취했지만 의회에서 20%에 지나지 않는 의석을 지닌 MMA는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반전시키고자 카슈미르에서 지하드(성전)를 선포했다. 미국과 인디아 정부는 6개 강경파 종교정당들이 연합한 MMA가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부활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 하미드 굴 장군 제거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인디아쪽에서는 바지파이 총리가 이끄는 우익 집권당 바라티야 자나타당(BJP)과 연대한 힌두 근본주의자 정당 비슈와 힌두 파리샤드(VHP)가 정부를 향해 파키스탄 핵 무장시설을 선제공격하라며 격렬한 대중선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몇주 앞으로 다가온 총선 여론조사들이 모두 BJP의 승리를 예상하는 결과를 쏟아내던 시점이라, 바지파이 총리는 선제공격을 어리석은 짓이라며 거절했다.

라자람 샨카르가 파키스탄 핵공격을 염두에 둔 동기는 60년 전 오펜하이머가 나치 독일과 옐로 일본을 때려부수겠다며 가졌던 ‘의무’와 큰 차이가 났다.

샨카르는 오직 컬키(Kalki·비슈누의 10번째 화신)의 ‘오른손’ 노릇을 하면서 고대 힌두 원전이 예언한 대로 컬키가 세상에서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신명을 바쳐온 인물이었다. 그런 샨카르에게 동기는 단순했다. ‘컬키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모든 종교가 사라진다는 컬키의 예언

컬키는 샨카르의 어릴 적 친구이자 한때 첸나이에서 생명보험 회사 사무원을 지냈던 선도자 비자이 쿠마르다. 컬키는 힌두의 세 신 가운데 가장 큰 힘을 지닌 비슈누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외치며 1989년 스스로 비슈누의 10번째 화신임을 자임한 인물이다.

“컬리 유가(악마의 시대)를 깨부수고 셔트 유가(황금의 시대)로 이끌 마지막 화신인 컬키는 하늘에서 백마를 타고 내려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피의 숙청을 할 것이다.”

고대 인도의 신화, 전설, 왕조사를 기록해둔 푸라나에 따라, 컬키는 2005년에서 2012년 사이에 크리스천, 이슬람, 부디즘을 비롯한 모든 종교 추종자들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예언해왔다. 물론 자신을 따르는 이들은 예외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몇달 전 컬키는 2004년이 되면 최후의 심판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샨카르는 최근 ‘컬키 제국’이 인디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폐쇄령에 몰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인디아 대법원은 컬키가 최후의 심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이들로부터 수백만달러를 착취했다는 판정을 내렸다. 컬키는 지역개발과 가난한 학교를 지원하겠다는 명목으로 모은 돈들을 가까운 친지들의 회사로 전용했다. 사회적으로는 컬키 구속을 외치는 소리가 높아가고도 있다. 뿐만 아니라 컬키가 귀감으로 삼았던 지도자 사티아 사이 바바가 역설적이게도 컬키를 몰락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리하여 샨카르는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컬키 숭배사상이 무너지면서 일생의 과업이 깨져버리고 만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면서 샨카르는 컬키의 선언과 고대 힌두 예언을 모두 적중시키며 컬키 제국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대파키스탄 선제 핵공격에서 찾았다. 그러나 샨카르는 핵물리학자일 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어떤 위치에도 조직에도 있지 않았다. 심지어 영향력 있는 정치가 하나 가까이 두고 있지 않았다.

샨카르는 ‘버튼’을 쥐고 있는 인디아핵통제국(INCA)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의 비밀병기는 바라지 순다라잔이었다. 바라지는 만약 파키스탄이 핵 선제공격을 감행할 경우 인디아 핵무기가 자동 보복발사 되도록 핵공격 시스템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만든 기술자다.

인디아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술자이며 수학자라는 명칭과 달리 바라지는 미신에 빠져 있는 인물이었다. 바라지는 샨카르의 동료 가운데 한명과 가까운 인척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부터 컬키를 숭배해왔다.

이런 샨카르와 바라지가 뜻을 모으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총리와 국방장관, 육군총장 같은 핵공격 명령라인이 필요 없었다. 이제 이들에게는 핵 미사일 발사대에 근무하는 멍청한 지역 사령관 하나면 족했다. 파키스탄 핵무기를 장악한 오사마 빈 라덴이 이미 인디아로 선제공격을 감행했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 얼간이 한명!

2004년 7월16일 새벽 5시29분!

샨카르와 바라지는, 1980년 6월3일 대륙간탄도탄(ICBM)이 미국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경보 발령을 내려 미국과 소비에트를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던 네브라스카 미국 공군전략사령부 본부의 컴퓨터 오류를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라지는 인디아와 그 카운터파트인 미국 공군전략사령부의 컴퓨터 시스템이 적국으로부터 날아오는 가짜 핵 미사일을 인식해 핵 경보를 울리면서 동시에 자동으로 보복공격을 가하게끔 2004년 7월16일 새벽 5시29분에 맞춘 버그를 집어넣었다.

샨카르와 바라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인류는 마지막 핵전쟁을 보게 될 것이며 컬키도 ‘의무’를 달성해 마침내 세상은 평화로운 천국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일찍이 오펜하이머가 조종했던 인류 최초의 핵폭발이 일어난 시간과 같은 ‘5시29분’에 인류는 최후의 핵폭발을 보게 되리라.

2004년 7월16일 새벽 5시29분, 땅이 흔들리고 창문이 덜컹거렸다. 샨카르는 기다리던 순간임을 깨달았다. 태양이 아직 떠오르지 않은 새벽 하늘엔 눈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컬키가 선언한 그 황금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방콕= 사티아 시바라만(Satya Sivaraman)
인디아에서 태어난 사티아는 인디아 방송과 신문 기자를 거쳐 10여년 전부터 방콕을 베이스로 삼아 각국 언론에 기사를 제공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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