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로셰비치 이후 높아가는 연방 탈퇴의 목소리…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 아니면 탈퇴하겠다!”
“당신의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대통령궁에서 만난 미오드라그 부코비치 대통령보좌역이 한 말이다. 그가 말하는 필자의 “잘못된 질문”이란 이것이었다. “몬테네그로가 언제 독립될 걸로 보느냐.” 그의 주장은 “몬테네그로는 이미 독립된 국가”라는 것이다.
문제는 ‘유고연방’이란 족쇄를 풀고 세르비아공화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모아진다. 벨그라드정권의 세르비아공화국과 더불어 유고슬라비아연방의 마지막 파트너인 몬테네그로의 관심사는 ‘완전독립’이다. 자체의 군대와 화폐를 갖고, 몬테네그로 이름으로 외교관을 내보내는 그런 날을 꿈꾸고 있다. 인구 64만명의 이 작은 국가는 인구 1천만명을 웃도는 세르비아를 상대로 힘겨운 자존의 반란을 꿈꾸는 중이다.
유고연방의 새 대통령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가 지난 10월16일 몬테네그로를 방문해 밀로 듀카노비치 대통령을 만난 것도 몬테네그로 붙들기의 맥락에서다. 그러나 연방 탈퇴를 꿈꾸는 몬테네그로를 달랠 만한 변변한 보따리를 풀지 않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유일한 합의라면 ‘대화로 의견차이를 좁혀간다’는 것이었다. 지난날 발칸국가들이 그랬던 것 같은 군사적 대결은 피하자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부코비치 대통령보좌역은 양국의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다룰 전문가 그룹이 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벨그라드의 코스투니차 신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몬테네그로의 시각에선 “코스투니차는 지난 6월 밀로셰비치가 불법적으로 개정한 헌법에 따라 당선된 것”이다.
코스투니차도 불법으로 당선?
몬테네그로의 유고연방 탈퇴 움직임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유고의 전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전범으로 기소되고 경제제재의 불똥이 몬테네그로로 튈 조짐을 보이면서 몬테네그로 안의 연방 탈퇴 목소리는 더욱 높아갔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이를 부추기듯, 몬테네그로에 이런저런 경제원조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에 맞서 밀로셰비치는 지난 6월 연방헌법을 개정해 몬테네그로의 연방 내 입지를 전보다 훨씬 좁혀놓았다. 몬테네그로는 이에 반발해 9·24선거가 불법적 개헌에 바탕한 선거라며 불참을 선언했다.
코스투니차는 그의 일관된 세르비아민족주의에 바탕해 전부터 몬테네그로의 연방 탈퇴를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비해 몬테네그로 듀카노비치 정권은 “좀더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가 아니라면, 국민투표를 통해 연방 탈퇴쪽으로 가닥을 잡겠다는 입장이다. 보지다르 야레디치 공보장관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란 독자적인 군대를 갖되, 외교와 경제정책을 함께 조율해나가는 그런 모습을 가리킨다”고 정의한다. 몬테네그로의 권한을 형편없이 축소시킨 이른바 밀로셰비치헌법을 개정해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마련하지 않는 한 몬테네그로는 완전독립의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몬테네그로의 완강한 태도를 눈으로 확인한 코스투니차는 이 문제를 풀 실마리를 12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찾고 있다.
부차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유고연방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세르비아인일 경우 총리는 몬테네그로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몬테네그로 현 정권이 선거 불참을 선언함에 따라 밀로셰비치를 지지해온 몬테네그로사회당(당수 조란 지지치)이 연방의회의 몬테네그로 의석들을 대부분 차지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유고연방 총리는 몬테네그로 현 정권에 맞서온 조란 지지치가 임명될 판이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현실정치에선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곳 일간지 <보비예다>의 한 정치담당 기자는 “코스투니차가 조란 지지치를 연방총리에 임명할 경우 몬테네그로 현 정권을 화나게 할 게 분명하고, 연방 탈퇴의 수순을 더욱 앞당길 게 뻔하다는 것을 코스투니차가 모를 리 없다”고 분석했다.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희박
몬테네그로도 발칸의 여느 국가들처럼 다인종사회다. 64만 인구 가운데 다수를 이루는 종족은 몬테네그로인(63%)이고, 그 다음이 모슬렘(16%), 세르비아인(9%), 알바니아인(8%) 순이다. 문제는 인구 10% 가까이 차지하는 세르비아인들의 향배다. 이들 세르비아인들은 세르비아공화국 안에 있는 이른바 ‘본토’ 세르비아인들과는 정치정서가 조금 다른 것으로 알려진다. 필자는 거리의 한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으로 친구 사이였다. 알바니아인은 몬테네그로에서 태어나 코소보로 옮겨갔다가, 지난해 전쟁을 피해 다시 몬테네그로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그의 세르비아 친구는 “그들을 전혀 이해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이란 코소보에서 이른바 인종청소에 나섰던 세르비아세력들을 가리킨다. “이곳의 많은 세르비아인들은 나와 같은 생각이다.”
이렇듯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의 시민들은 대체로 듀카노비치 정권의 연방 탈퇴, 친서방노선을 반기는 분위기다. 보지다르 야레디치 공보장관의 표현대로 “벨그라드에 밀로셰비치가 물러나고 코스투니차 새 정권이 들어서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과 연방 탈퇴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태도다. 그러나 일부 몬테네그로 거주 세르비아인들은 밀로셰비치가 지향하던 ‘위대한 세르비아’에 강한 향수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헤이그 유고전범재판소에 기소된 보스니아의 라도반 카라지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이 두 사람이 몬테네그로 출신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지난 9·24 대선 유세과정에서 밀로셰비치가 몬테네그로의 세르비아 접경마을들을 찾았을 때 그는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만약 코스투니차가 그곳을 찾았다면, 코소보에서 당한 것처럼 돌팔매질당했을 것”이라고 한 정부관리는 말한다.
90년대 초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는 유고연방 탈퇴를 꾀하는 과정에서 세르비아와 전쟁을 치렀고, 특히 보스니아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몬테네그로가 완전독립을 밀어붙일 경우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을까. 대답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다. 밀로셰비치가 그랬던 것처럼 코스투니차가 무력에 호소하면서까지 몬테네그로를 묶어두려 하지는 않으리란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몬테네그로 현지의 분위기도 “벨그라드의 코스투니차 정권이 지난날 밀로셰비치 정권의 무리수를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다. 이곳 일간지 <보비예다>의 한 정치담당 기자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린다. “시대가 바뀌었고, 만에 하나 군사적 침략이 있을 경우 국제사회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며 연방 탈퇴를 둘러싼 세르비아와의 긴장관계가 합리적으로 풀릴 걸로 내다본다.
몬테네그로는 여러 부문에서 유고연방,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벨그라드 정권과는 거리를 두는 정책을 펴왔다. 이를테면 외국인들에 대한 입국심사 절차부터가 다르다. 필자는 지난 10월 초 벨그라드 정치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헝가리 주재 유고대사관에 입국비자 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세르비아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외국인들의 벨그라드행을 차단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몬테네그로는 국제법으로는 엄연한 유고연방에 속하면서도 비자없이 입국이 가능했다. 외국인 기자들에 대한 배려도 상당히 깍듯하다는 느낌이다. 장관급 인사들에 대한 인터뷰 주선에도 적극적이었다. 몬테네그로의 연방 탈퇴 노력과 친서방 노선 홍보에 힘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필자가 그곳을 찾았을 때 마침 밀로 듀카노비치 대통령이 가벼운 자동차 사고로 휴무중이었는데, 그런 사고만 아니었다면 그는 누구라도 서슴없이 만나는 개방형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으리라 여겨진다.
예전부터 몬테네그로는 지정학적으로 유고연방의 맹주인 세르비아공화국과 밀접한 경제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밀로셰비치 정권 후반부에 들어 그 고리가 하나씩 끊어졌다. 이를테면 몬테네그로의 공용화폐는 독일 마르크화다. “세르비아에서 통용되는 디나르화의 유통 비율은 2%에 그친다”는 게 이곳 몬테네그로대학 경제학부 베셀린 부코티치 교수의 설명이다. 부코티치 교수는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봐도 유고연방이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단언한다. 공동의 화폐 사용이라는 연결고리가 끊어졌다는 점에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도 유고는 사라졌다”
세르비아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줄이고 경제적 독자성을 강화하기 위해 몬테네그로는 서구의 입맛을 당기는 경제시책을 펴는 중이다. 주요 기업의 만영화와 개방이 그것이다. 공기업민영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부코티치 교수는 “현재 25% 정도 민영화가 추진됐다”고 밝힌다. 유고연방이라는 족쇄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의 회원국은 될 수 없다. “바로 그 점 때문에라도 몬테네그로가 연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고 보면 틀림없다”고 그는 덧붙인다.
몬테네그로가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20%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도 그 하나다. 세르비아와의 긴장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일종의 위험으로 비쳐지는 측면도 없지 않다. 발칸의 공룡 세르비아에 맞서 홀로서기를 꾀하는 작은 몬테네그로가 나름의 독자적 생존실험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포드리고차(몬테네그로)=글·사진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사진/포드리고리 외곽 코니크마을에 있는 집시 난민수용소. 지난해 코소보전쟁을 피해 온 2천명의 집시들이 이곳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사진/둘이 친구 사이라 밝히는 세르비아인(왼쪽)과 알바니아인. 세르비아인은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밀로셰비치의 코소보 인종청소를 비난한다)

(사진/몬테네그로 달래기에 나선 유고연방의 새 대통령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가 지난 10월16일 중순 몬테네그로를 방문해 밀로 듀카노비치 대통령(왼쪽)을 만났다)

(사진/코니크 집시난민수용소의 아이들. 몬테네그로에는 모두 7만5천명의 발칸난민들이 몰려 있다)
| 인터뷰/ 몬테네그로 대통령보좌역 미오드라그 부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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