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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도] 돈을 받든지, 몰카를 찍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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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2-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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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치인 뇌물수수 몰래카메라 파문 일으켜…국민들은 받거나 말거나 여당에 몰표

인도에서 몰래카메라를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여성이 아니라 정치인이다. 선거 직전에 한 정치인이 뇌물을 받는 장면이 몰래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인도는 ‘카메라 스캔들’로 시끌벅적하다. 그리고 이 카메라 스캔들로 불거진 일련의 사건들은 인도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진/ 국민회의쪽에서 여당인 국민당의 뇌물수수를 풍자하는 광고판을 트럭에 붙여 선거 유세를 벌이고 있다. 수염을 떼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인물이 “돈은 신보다 못하지 않다”며 뇌물을 받은 주데오 장관이다.

“돈이 신보다 못하지는 않다”

지난 11월 인도의 영자신문인 <인디안 익스프레스>는 특종을 터트렸다. 현직 장관이 뇌물을 받는 장면이 담긴 VCD를 입수했다는 기사와 함께 1면에 VCD 화면이 찍힌 흐릿한 사진을 실었다. 같은 날 VCD 복사본은 힌디 뉴스 채널인 <사하라 TV>에도 방송되었다. 화면의 주인공은 딜립 싱 주데오 환경부 장관이었다. 조연으로 장관 보좌관도 등장한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라훌이라는 남자는 자신이 호주 광산 회사의 직원이라고 말한다. 차티스가르주와 오릿사주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의 채굴권을 따내고 싶다는 희망도 숨기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 남자는 장관에게 돈을 건넨다. 주데오 장관이 돈을 받으면서 한 말은 가히 압권이다. “돈이 신은 아니다. 그렇지만 맹세코, 돈이 신보다 못하지는 않다.” 그러나 사진 속의 남자는 그의 말처럼 호주 광산 회사 직원이 아니었다. 모든 게 돈을 받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속임수였던 것이다.


이 사건은 여당을 긴장시키고, 야당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12월1일 4개 주에서 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가 치러질 주에는 주데오 장관이 주지사 후보로 예상되는 차티스가르주도 포함되었다. 인도에서는 의회 선거에서 후보자가 아닌 정당에 투표를 하기 때문에 선거에 주지사 후보가 발표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주데오는 거의 공식적으로 여당인 인도국민당의 주지사 후보로 인식되어왔다.

사건이 터진 다음날 주데오 장관은 사임했다. 처음에 장관은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흐릿한 VCD 화면 속의 인물은 자신이 아니고 그 사진 속의 남자를 알지도 못한다고 발뺌을 했다. 하지만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행위를 사실상 시인하는 말을 했다. “돈이 신보다 못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 그리고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돈을 받았냐는 질문에 그는 “마하트마 간디도 재벌 비를라에게서 돈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가 마하트마 간디를 끌어다 붙인 것에 언론과 야당들은 더욱 경악했다. 인도의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위해 자금을 받은 것을 감히 자신이 뇌물을 받은 것과 한 통속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사진/ 델리의 국민회의 선거사무실. 야당인 국민회의는 여당의 부패상을 잇달아 폭로했으나 인도 국민들의 정치 불신으로 반사이익을 거의 얻지 못했다.
한편 이번 사건의 배후와 목적과 관련해서도 많은 설들이 분분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현 차티스가르주 주지사인 아지트 조기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국민당의 최대 라이벌인 여당 국민회의 소속으로 재임을 노리고 있던 그는 이번 사건의 최대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온 조기의 발언도 심상치 않았다. 신문에서는 웨이터들이 두 차례 다녀가는 것으로 보아 이 VCD의 촬영이 이루어진 곳은 호텔인 것 같지만 자세한 촬영장소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기 주지사는 촬영이 이루어진 곳이 델리의 타지마할 호텔이라고 정확히 말했다. 하지만 조기 주지사는 그가 이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설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자신은 <인디안 익스프레스>의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비로소 이 사건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찍으면 암소 한마리 드릴게요

조기 주지사의 아들 역시 혐의가 다분했다. 처음에는 <사하라 TV>만 이 테이프를 방송했다. 그런데 아지트 조기의 아들인 아미트 조기의 친구로 보이는 여론 조사원들이 언론인들에게 화질이 더 좋은 VCD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따라서 일부 뉴스 채널은 복사본을 손에 넣어 델리와 뭄바이에 있는 본사에 전송했다. 복사본들은 이 주의 케이블 네트워크를 관리하며 24시간 지방뉴스 채널인 <아비-아비>를 운영하는 아카시 채널의 사무실에서 복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카시 채널의 사장은 조기 주지사의 친구이다. 또한 사건 직후 총리가 지시한 중앙수사국 조사에서도 주지사 아들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드러내는 전화통화 기록 등의 증거들이 있다는 보도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또 주데오 장관이 차티스가르주의 기독교인들을 힌두로 개종시키는 운동을 오랫동안 벌여온 점을 들어 기독교 선교사들의 음모론도 불거졌다. 주데오 장관은 공공연히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기독교인을 힌두로 개종시키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또 이 사건을 특종 보도한 <인디안 익스프레스>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신문에 비해 판매부수나 인지도 면에서 떨어지는 이 신문의 고도의 상업전술이라는 것이다.

한편 국민당은 이 VCD가 조작·위조되었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이 이번 선거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아지트 조기 주지사가 1996년 재산신고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며 당시 의과대학 교수이던 아내의 월급명세서까지 들먹거렸다. 또 선거에 이길 경우 농민들에게 ‘암소 1마리’씩 제공하겠다는 극우 힌두정당다운 공약을 내걸었다. 여고생들에게는 자전거 한대씩 제공한다는 공약도 있었다.

그리고 뇌물수수 스캔들에 따른 장관의 사임은 당의 도덕성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뇌물 수수가 아직 정확한 사실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장관이 사임한 것은 높은 도덕성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또 차티스가르주의 사람들은 주데오 장관의 높은 인격과 지도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비디오의 장면들을 믿지 않는다고 국민당은 주장했다. 당대표 벤카이아 나이두는 국민당이 차티스가르주 주지사 후보로 어떤 사람도 공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이두는 언론들이 차티스가르주에서 주데오 장관이 당의 주지사 후보라고 보도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몇주 동안 언론은 주데오를 국민당의 후보로 거론했고, 국민당에서는 아무도 이것을 부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당은 주데오 장관이 여전히 국민당 선거 유세의 ‘스타 유세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지파이 총리나 부총리 랄 크리슈나 아드바니, 구자라트 주지사 나렌드라 모디 같은 간판급 스타들을 집중적으로 차티스가르주의 선거 유세에 동원했다. 그들은 주데오 장관이 국민회의가 놓은 덫에 걸린 희생양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차티스가르주 사람들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고위 정치인들의 부패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라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이번 VCD는 단지 이런 사실을 눈으로 확인시켜준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아지트 조기 주지사도 문서위조 혐의로 중앙수사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처지다. 따라서 주지사가 주데오 장관을 비난할 자격도 없다고 말했다. 이런 폭로들은 ‘선거기간에 정치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일’이라며 주민들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국민회의는 이번 사건을 차티스가르주에서만이 아니라 선거가 열리는 모든 주에서 국민당을 공격하는 빌미로 삼았다. 하지만 12월4일 치러진 선거결과는 국민당의 압승으로 드러났다. 4개 주 중에서 델리를 제외한 3개 주에서 국민당이 정권을 잡았다. 놀랍게도 차티스가르주 선거에서도 국민당이 이겼다. 주데오 장관의 부패에 견줘 조기 주지사의 배후 공작 의혹이 더 컸던 탓일까. 아니면 자전거와 암소라는 ‘경품’이 빛을 발했던 걸까.

이번엔 야당 주지사 부패 스캔들도

아마도 정답은 인도인들의 심각한 정치 냉소증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인도 정치인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은 참으로 깊다. 인도인들에게 뇌물 수뢰와 같은 일상사는 선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주데오 장관을 감싸는 쪽이나 비난하는 쪽 모두 국민의 눈에는 ‘오십보 백보’일 뿐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부패스캔들은 좀처럼 수그러들 조짐이 없다. 최근에는 조기 주지사가 새로 당선된 국민당 의원들에게 탈당을 권유하며 뇌물을 건네는 내용이 녹음된 테이프와 현금이 국민당에 의해 공개되었다. 하지만 조기 주지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테이프는 조작된 것이며….”

델리= 글 · 사진 우명주 전문위원 greeni@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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