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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유효기간 지난 빨치산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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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1-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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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좌익 게릴라 ‘낙살’의 주지사 암살 시도…최근 인근 국가 마오주의 조직과 연대 강화

지난 10월1일, 인도 중부에 위치한 안드라 프라데시주의 주지사인 찬드라바부 나이두는 예배를 위해 사원으로 가고 있었다. 차량 행렬이 꾸불꾸불한 숲길을 지나고 있을 때 5개의 클레이모어지뢰가 폭발했다. 팔과 빗장뼈 등이 부러진 주지사가 흰 옷에 피가 가득 묻은 채 탈출하는 모습은 텔레비전을 통해 생생하게 방송되었다.

사진/ 부축을 받으며 병원에 들어서고 있는 나이두. 낙살 공격에도 나이두는 생명을 건졌다.(AP연합)

125개 마을에 해방구

이 사건이 있은 직후 낙살 조직인 인민전쟁파(PWG·People’s War Group)는 이 공격을 자신들이 감행했음을 밝혔다. ‘낙살’이란 인도에서는 빨치산 투쟁 조직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중에서도 인민전쟁파는 가장 대표적이고 과격한 조직으로 알려졌다.


낙살이란 이름은 웨스트 벵갈주 다질링의 낙살바리 마을에서 유래했다. 당시 인도 정부는 토지개혁법에 따라 토지를 소작농민들에게 분배했다. 그런데 지역 지주들이 법원에 의해 땅을 분배받은 한 소작인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반발해 1967년 5월25일, 마르크스파 인도공산당(CPI-M)에 속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지도 아래 소작인들의 봉기가 시작되었다. 그 폭동은 당시 국민회의 정부의 명령으로 웨스트 벵갈의 마르크스파 인도공산당이 이끄는 연합전선 정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이에 일부 당원들은 당 지도부에 반발했다. 우타르 프라데시주와 잠무 카슈미르주의 전체 당원과 비하르주와 안드라 프라데시주의 상당한 파가 합류해 1969년 4월22일 그들은 막스-레닌주의 인도공산당(CPI-ML)을 조직했다.

인민전쟁파는 1980년 4월, 안드라 프라데시주에서 가장 오지인 테랑가나 지역에서 결성되었다. 이들은 현재 안드라 프라데시주의 23개 군 중에 적어도 12개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약 125여개 마을에 독자적인 행정 체계를 갖춘 그들의 해방구가 있다. 그곳에서 이들은 인민재판을 열어 벌금 부과, 공개 구타, 신체 일부 절단 등의 처벌을 즉석에서 집행한다. 경찰 첩자나 ‘계급의 적’ 혹은 ‘카스트 억압자’로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바로 사형이 집행된다.

인민전쟁파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마오쩌둥의 조직적 농민봉기 이론에 근거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게릴라전에 근거한 장기 무장투쟁을 통해 정치적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전술은 지역 단위의 점령 및 도시 포위와 함께 오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그것들을 처음에는 게릴라 지역으로, 그 다음에는 해방구로 만드는 것이다. ‘인민의 전쟁’을 통해 ‘인민의 정부’를 세우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이다.

사진/ 지뢰로 만신창이가 된 안드라 프라데시 주지사 찬드라바부 나이두의 차.(AP연합)
인민전쟁파는 인도 내 같은 낙살조직인 마오주의 공산주의 센터(MCC·Maoist Commuinst Centre) 같은 단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조직들과 연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직은 페루의 해방군, 그리고 쿠르드노동자당(PKK)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세계에 알리려 노력해왔다. 1995년 5월 40개 국가의 60개 조직이 참가한 벨기에 노동당 주최의 국제 세미나에 참석한 것 역시 그런 노력의 하나이다.

60~70년대 절정기에서 점차 쇠퇴

남아시아에서 이 조직과 연계하는 대표적인 조직은 스리랑카의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이다. 인민전쟁파는 타밀엘람해방호랑이 반군들로부터 군사훈련을 받고 폭발물 제조 기술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들은 네팔공산당-마오주의자(CPN-M)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1년 7월1일에는 인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에서 활동하는 9개의 좌익 과격주의 단체들이 남아시아의 마오주의 정당과 조직들의 활동을 연합하고 조정할 목적으로 마오주의 정당 및 조직 협동위원회(CCOMPOSA)를 결성했다. 이 중 인민전쟁파, MCC, 네팔 마오주의자들은 안드라 프라데시주, 차티스가르주, 자르칸드주, 비하르주에서 네팔에 이르는 밀집혁명지역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그들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일부 네팔 마오주의 조직의 지도자들은 인도의 낙살조직들로부터 은신처를 제공받아왔다.

인민전쟁파가 국제적 연계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강력한 스폰서가 없다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인도의 타밀족과 스리랑카의 타밀 이민족들의 지지를 받는 타밀엘람해방호랑이나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히불 무자히딘, 라시카르-에-토이바 같은 남아시아의 다른 무장단체들처럼 자금이 풍부하거나 정교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인민전쟁파에서 CCOMPOSA의 결성은 전문기술 교환, 군사훈련, 무기흐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들은 총기류를 네팔 마오주의자들에게 공급받는 대신 채석장과 군수품 공장에서 탈취한 폭발물을 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한편 인도 정보기관은 파키스탄 정보기관인 ISI까지도 인도의 낙살조직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본다.

인민전쟁파의 영향력은 이제 안드라 프라데시주를 넘어 마드야 프라데시, 오릿사, 자르칸드, 비하르 같은 주들로 퍼져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 몇년간 자신들의 본거지인 안드라 프라데시주의 테랑가나 지역에서 고전하고 있다. 수십명의 고위 지도자들이 교전에서 사망했고 많은 고위층이 자수를 하고 있다. 경찰 보고서는 지난 4년간 2천명이 넘는 낙살라이트들이 자수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공격은 자신들의 건재함을 보여주려는 시도로 보인다.

낙살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는 인도 정보기술 산업의 메카인 IIT 대학 출신을 포함한 유능한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낙살운동에 합류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수천명의 지역 주민들과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현재 낙살운동은 본래의 성격을 잃어버리면서 떨어지는 지지만큼이나 쇠퇴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 운동이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살조직이 여전히 60년대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낙살운동이 테러리즘으로 변질됐다는 비난 목소리도 높다.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 대한 반발로 자행한 2001년의 코카콜라 공장 공격에 따른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근로자들이었고, 이로 인해 수백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런 사건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사진/ 낙살운동을 계기로 생겨난 마르크스레닌주의 인도공산당 건물.(우명주)
인민전쟁파의 활동 초창기 이후 안드라 프라데시주에서 낙살 폭력으로 사망한 이들은 1만여명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저지르는 인권침해도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경찰들은 낙살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과 그들의 지지자 및 정보제공자의 고문과 그에 따른 죽음을 은폐하기 위해 ‘가짜 교전’을 일으켰다. 경찰들은 그렇게 사망한 사람들의 주검을 가족들이 확인하기도 전에 화장한 다음 낙살과의 교전에서 사망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주지사 나이두 도와준 꼴

이 조직이 주지사 나이두를 살해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 시도는 1999년 나이두가 선거유세를 하고 있을 때 불거졌다. 주지사 취임 이후 그는 낙살의 공격 리스트의 맨 위를 차지해왔다. 나이두는 스스로를 안드라 프라데시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라고 말한다. 특히 정보기술에 큰 관심을 기울여 주의 수도 하이데라바드를 인도의 인터넷 수도도 만들었다. 요즘 인도 언론에서는 하이데라바드를 ‘사이데라바드’라고 부른다. 빌 게이츠도 인도를 방문할 때마다 하이데라바드를 꼭 들른다. 하지만 이런 나이두의 정책은 농촌과 도시의 경제적 간격을 더욱 넓게 만들었고,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낙살조직들은 나이두를 ‘세계은행과 국제 자본주의가 명령한 반민중 정책을 수행하는 자본주의의 종복’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행위는 나이두를 도와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차량이 완전히 파손되는 사고에도 무사했던 나이두는 내년 6월 선거를 앞둔 상태에서 갑자기 주지사직을 사퇴했다. 낙살 공격으로 인한 동정표를 노리는 나이두는 유권자들이 내년 6월까지 이 사건을 기억해줄지 불안했던 탓이다. 안드라 프라데시주는 내년 2월에 보궐선거를 치르며, 당연히 나이두는 재출마를 선언했다.

델리= 우명주 전문위원 greeni@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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