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한 B-29 폭격기 전시 논란… “걱정스러운 것은 현재 미국의 핵 정책”
티니언은 관광지로 유명한 사이판에서 약 5km 남쪽에 있는 섬이다. 이 섬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도쿄 등 중심부 공습을 위한 미 공군의 중폭격기 발진기지로 사용됐다.
1945년 8월6일 새벽 2시45분, 폴 티베츠 대령이 지휘하는 미 공군 B-29 폭격기가 승무원 12명과 폭탄 4.5t을 싣고 티니언 기지를 이륙했다. 티베츠 대령은 이륙 직전 B-29 조종석 유리창 밑에 ‘에놀라 게이’(ENOLA GAY)라고 적었다. 에놀라 게이는 티베츠 대령의 어머니 이름이었다.
8월6일 오전 8시15분, B-29는 일본 히로시마 상공 9500m에서 ‘작은 소년’(little boy)이란 이름의 인류 최초의 원자탄을 떨어뜨렸다. 일본의 세이조 마리수에 장군은 원폭이 떨어진 다음날 히로시마의 상황을 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비행기가 히로시마 상공에 접어들었을 때 눈에 띄는 것은 검게 타죽은 나무 한 그루뿐이었다. 마치 이 도시에 거대한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 나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일시에 불타 없어져버렸던 것이다. …도시 전체가 지워 없어진 상태였다.”
일본 원폭 피해자들의 반대 거세
원폭 투하로 히로시마에서 약 14만명이 숨지고 28만명이 다쳤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후손까지 원자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2차대전이 끝난 지 58년이 넘었지만 미국과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두고 계속 ‘논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은 올 8월18일 에놀라 게이를 복원해 언론에 공개했다. 항공우주박물관은 12월15일부터 에놀라 게이를 일반 관람객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다. 다음달 에놀라 게이의 일반 전시를 앞두고 일본 원자폭탄 피해자들과 평화단체들의 반대가 거세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쓰보이 수나오는 “우리에게 에놀라 게이는 원자폭탄과 같다. 그 비행기를 전시하는 것은 원폭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자 원자폭탄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히로시마 원폭피해자연합 등 일본의 반핵 단체들은 최근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 이메일을 보내 “에놀라 게이의 일반 공개는 원자폭탄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스미소니언 박물관도 “B-29 폭격기가 당시로는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항공기란 점에서 전시를 결정하게 됐다. 이번 전시 결정이 이 폭격기가 역사 속에서 한 역할을 찬양하거나 비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에놀라 게이 전시의 초점을 복원 과정과 당시 B-29의 기술적 진보 등 비정치적 문제에 맞추고 있다.
원폭 돔 문화유산 지정은 미국이 반대
에놀라 게이 전시를 둘러싼 두 나라의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스미소니언박물관은 1994년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앞두고 ‘(되풀이돼서는 안 될) 마지막 행동:원자탄과 2차 세계대전 종전’이란 제목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다. 당시 박물관은 에놀라 게이 전시와 파괴된 히로시마 등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을 준비했다.
이 전시 계획에 대해 미국 참전군인단체 등은 2차대전 당시 수많은 미국 군인들의 희생을 무시하고 침략자인 일본을 거꾸로 피해자로 만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원폭 투하 몇주 전 오키나와 전투에서 12만3천명의 미군과 일본군이 숨진 사실을 예로 들면서, 만약 일본이 끝까지 항복을 거부해 일본 본토에 미군이 상륙했을 경우 양쪽 군인과 민간인 수백만명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폭 투하가 2차대전을 빨리 끝내게 해서 결과적으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시켰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운영비 책정을 맡는 미 의회는 “역사에서 수정주의가 난무하고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결국 박물관 예산이 삭감되었고 에놀라 게이 전시만 하는 것으로 이 박물관의 종전 50주년 기획전은 대폭 축소됐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에놀라 게이뿐만 아니라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으로 입씨름을 벌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95년 4월7일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열린 미국신문편집인협회 대회에 참석해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것에 대해 사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아니오”(No)라고 일축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의 원폭 투하 결정에 대한 정당성을 묻은 질문에도 “트루먼이 제시했던 사실에 입각해 본다면, 그렇다(Yes)”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이토 히로시마현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이사장은 “원폭 투하를 정당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1996년 12월에는 히로시마 원폭 돔(산업장려관)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놓고 두 나라가 또 맞섰다. 원폭 투하로 말 그대로 잿더미가 된 상황에서도 히로시마 산업장려관 건물이 뼈대나마 살아남았다. 이 건물은 1966년 히로시마 시의회에 의해 보존이 결정되었고,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원폭 돔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반대했다. 미국은 반대 이유로 “일본의 침략전쟁 사실을 외면한 채 미 원폭 투하의 상징인 원폭 돔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서는 안 된다. 미국 사람들은 2차대전 시작부터 끝난 1945년에 이르기까지 가공할 역사를 선택적으로 취급하는 데는 민감하다”고 주장했다.
에놀라 게이를 둘러싼 논쟁은 전쟁에 대한 기억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교수는 <전쟁을 기억한다>에서 “미국인에게 에놀라 게이는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전승의 상징이지만 일본인에게는 파괴와 핵 시대의 시작이다”고 말했다.
원폭 투하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살던 우리 민족의 피해도 컸다. 1972년 한국 원폭피해자협회가 조사·발표한 바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 4만명이 숨지는 등 7만명이 원폭 피해를 입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겪은 우리 처지에서 에놀라 게이 논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일본이 침략자인지 아니면 피해자인지 논쟁은 한국과 일본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국에게도 남의 일 아니다
2003년 가을, 한국 사람들에게 에놀라 게이 논쟁은 과거사에 그치거나 ‘태평양 건너 불’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한 미국은 지금도 핵무기를 선택 가능한 정책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다. 최근 <워싱턴 타임스>는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북한이 남침할 경우 한국을 방어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필요하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자기가 사는 땅에 외국 군대가 핵폭탄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데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무덤덤하다.
미국 평화운동가들은 에놀라 게이 전시가 원폭 투하의 비극을 다시 일깨우고,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케빈 마틴 평화행동 수석대표는 “1945년 8월 발생한 일에 대한 논란을 원하지 않는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현재 미국의 핵 정책”이라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승리와 파괴의 기억 충돌. 미 공군 지휘관 어머니의 이름을 딴 B-29 ‘에놀라 게이’가 미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었다.(SYGMA)
원폭 투하로 히로시마에서 약 14만명이 숨지고 28만명이 다쳤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후손까지 원자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2차대전이 끝난 지 58년이 넘었지만 미국과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두고 계속 ‘논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은 올 8월18일 에놀라 게이를 복원해 언론에 공개했다. 항공우주박물관은 12월15일부터 에놀라 게이를 일반 관람객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다. 다음달 에놀라 게이의 일반 전시를 앞두고 일본 원자폭탄 피해자들과 평화단체들의 반대가 거세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쓰보이 수나오는 “우리에게 에놀라 게이는 원자폭탄과 같다. 그 비행기를 전시하는 것은 원폭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자 원자폭탄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히로시마 원폭피해자연합 등 일본의 반핵 단체들은 최근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 이메일을 보내 “에놀라 게이의 일반 공개는 원자폭탄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스미소니언 박물관도 “B-29 폭격기가 당시로는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항공기란 점에서 전시를 결정하게 됐다. 이번 전시 결정이 이 폭격기가 역사 속에서 한 역할을 찬양하거나 비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에놀라 게이 전시의 초점을 복원 과정과 당시 B-29의 기술적 진보 등 비정치적 문제에 맞추고 있다.

사진/ 히로시마 상공의 버섯구름. 핵폭발로 생기는 강한 상승기류에 따라 생긴 뭉게구름이 성층권까지 상승하면 옆으로 퍼져 버섯 모양으로 된다. 이 구름에서 내리는 비에는 방사성 물질이 가득하다.(SYGMA)

사진/ 원폭이 터진 히로시마는 도시 전체가 없어졌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