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유럽사회포럼은 무엇을 외쳤나… 그들만의 세계화를 벗어나 21세기 르네상스를 향하여
파리행 테제베(TGV)에서 필자는 줄곧 “반세계화와 대안세계화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왜 이번 유럽사회포럼에서는 반세계화의 기치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대안세계화를 거론한 것일까?”를 골똘히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기차는 파리 리옹역에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대안세계화는 반세계화가 아니다
유럽사회포럼은 포르토 알레그르(Porto Alegre)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SF) 이후 2002년 이탈리아 플로랑스(Florence)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이번 포럼은 파리와 일드프랑스(ile-de-France)에서 두 번째로 열렸다. 유럽사회포럼은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세계화가 가능한가’에 대한 토론의 공간을 마련하고 동시에 거대 다국적기업과 정부, 국제기구가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기 위한 모임이다. 유럽 단위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반대하고 나아가서는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인 셈이다. 이번 행사에는 60개국에서 모두 7만명이 참석했고, 파리 라빌렛(Paris-la Villette), 일드프랑스의 보비니(Bobigny), 이브리(Ivry), 생데니스(Saint-Denis) 네곳에서 총 55개의 컨퍼런스, 270개의 세미나와 300개의 워크숍이 열렸다.
첫날은 파리 라빌렛으로 향했다. 배낭과 침낭을 짊어진 수많은 운동가들이 속속 행사장으로 몰려들었다. 여기저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중에 반가운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한민족유럽연합과 민주노동당 유럽지구당이 행사장 앞 광장에서 북핵 문제와 한국의 노동문제를 풀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호소하고 있었다. 한 참석자에게 이번 유럽사회포럼의 이슈와 한국 문제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분리된 문제 같아 보이지만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화의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한반도의 특수한 문제로만 여겨질지 모르지만, 세계화는 각 나라의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돌아가지요. 한국의 경우 분단의 문제 또한 세계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등록을 마치고 행사장 안을 둘러보면서 프랑스노조 관계자에게 대안세계화 혹은 새로운 세계화의 의미는 반세계화와 일맥상통하는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현 시스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비판 아래 새로운 세계상을 구현하자는 것입니다. 인권과 환경을 보호하며 전쟁 없는 세계를 만들어가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이 완전히 실현되는 이상적인 세계화를 구현하자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정당 불참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아 보였다. 11월12일 저녁, 일부 사회당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프랑스 정당은 유럽사회포럼에 불참 의사를 통보했다. 대안세계주의자들(alterglobalists)이 ‘다른 유럽, 다른 세계’의 건설을 주장하는 것은 유럽통합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시스템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며, 나아가 지스카드(Giscard)에 의해 만들어진 유럽헌법 초안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기 때문인 듯했다. 그들의 주장은 유럽연합이 제시한 해결책이 각국의 실업문제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으며, 오히려 문제를 가중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유럽연합쪽은 “대안세계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통화 공급의 제한이나 높은 이율을 적용한다면 경제는 가사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즉, 가격 안정 측면보다는 시장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대안세계주의자들은 유럽연합이 제시하는 자유경쟁 시스템은 결국 현 세계화의 복제판에 불과하므로 나라별·지역별 권력을 보장하며 기본 권리를 존중하는 새로운 유럽헌법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치정당의 참여가 없는 사회단체만의 행사는 대립각을 더 높이 세우는 꼴이 될 것이다. 대화로 방법을 모색하자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정치정당의 참여를 이끌어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자가 처음으로 참석한 국제투기자본 규제를 위한 토빈세 징수에 대한 강연장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 강연을 듣고 있는 프랑스 시민단체인 ‘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추진협회’(ATTAC)의 한 회원에게 ATTAC가 정치적 단체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아니다. 우리는 약 3만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유럽에도 많은 회원들이 있다. 매년 얼마간의 회비를 내고 이 돈으로 각종 세미나 등을 개최해 토빈세 징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토빈세를 징수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또 한 나라만 시행할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국가가 참여해야 한다. 단지 계도하는 차원에 그친다면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남은 것은 데모밖에 없다!” 이렇게 모여 토론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대안세계주의자들의 주장이 왠지 이상적 담론으로만 느껴졌다. 저녁 강연에는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사회시민운동과 정치정당’(Social and citizens’ movements/political parties) 주제를 내건 총회에 세계화 담당 프랑스 사회당 비서관인 카데 아리프(Kader Arif)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행사장에 들어서자 수십명의 청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강하게 항의하면서 몇명은 아예 퇴장을 해버렸다. 몇분이 흐른 뒤에 소동은 진정되었으나 한 이탈리아 대표가 “21세기는 민주주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결코 신자유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정치정당들은 좌파가 결코 현 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해왔다”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아리프 비서관은 “정당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맞대응했다.
한 참석자가 아리프 비서관의 참석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의도적 참여”라고 귀띔해주었다. 많은 참석자들이 정치 정당들이 새로운 세계상을 구현하기 위해 함께 모여서 토론하는 대안세계주의자들의 건강성과, 다수 대중이 느끼는 삶의 절박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자리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문화는 정치적 전략
‘새로운 유럽사회의 건설은 곧 새로운 세계화를 구축한다’는 모토를 내건 이번 유럽사회포럼은 전시장과 강연장 곳곳에서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치적 민주주의, 새로운 경제공동체 건설,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큰 틀에서 각국의 상황과 유럽의 미래, 세계가 처해 있는 현실과 미래의 전망에 대해 열린 토론이 펼쳐졌다. 한 사회단체 대표는 “문화는 하나의 정치적 전략이며 사회적 변화와 중재의 도구”라고 주장했다. 이 건강한 토론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되고 나아가 21세기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복원하는 계기가 되길 진정으로 기원해보았다. 강연이 끝난 뒤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 악사가 헝가리 무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이 필자의 가슴을 타고 흘렀다. 그는 가난해 보였지만 그의 음악은 피곤에 지친 승객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이번 유럽사회포럼도 위기와 상실의 시대에 우리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되었으면 한다.
파리= 글 · 사진 방상훈 | 자유기고가 pwer21c@hotmail.com

사진/ ‘새로운 유럽사회의 건설은 곧 새로운 세계화를 구축한다’는 모토를 내건 이번 유럽사회포럼의 전시장과 공연장 곳곳에서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이 분출됐다.

사진/ 한민족유럽연합과 민주노동당 유럽지구당 관계자들이 행사장 앞 광장에서 북핵과 한국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한 강연장에서는 현실 정당 정치인의 참가를 둘러싸고 일대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