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운동 ‘프리덤 라이드’… 버스 타고 전국 돌며 차별 철폐 외쳐
2003년 10월4일 뉴욕의 플러싱 메도 공원에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이민자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 모인 이민자들은 각기 자신의 나라 국기를 흔들며 모국의 언어로 구호를 외쳤다. 지난 2주일간 2만 마일을 달려서 온 프리덤 라이더들은 모두 900여명에 달했다. 이주노동자 프리덤 라이드 운동은 지난 9월20일, 10개 도시에서 각 지역 노동조합 노동자와 이민자 옹호그룹의 활동가들을 실은 18개 버스가 출발하면서 막을 올렸다. 버스들은 전국 103개 도시를 방문해 이주노동자 문제를 알렸다. 필자는 한국인 최초의 프리덤 라이더로서 12일간 버스에 동승했다.
부시의 ‘오리발 내밀기’
‘이주노동자 프리덤 라이드’(Immigrant Workers Freedom Ride)는 196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프리덤 라이드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닻을 올렸다. 1960년 공공시설의 흑인·백인 분리 사용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이것이 실제로 잘 이행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1961년 5월4일 워싱턴에서 2대의 버스가 인종차별과 분리가 가장 극심한 남부로 출발했다. 프리덤 라이더들은 백인 전용 공공시설과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구타당하고 구속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프리덤 라이드는 남부 여행을 강행했다. 가는 곳마다 지방 경찰의 보호를 받는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결국 1대의 버스가 KKK에 의해 불태워지는 일까지 겪는다. 라이드가 이어질수록 구속자 수도 늘어났다. 하지만 각 도시 참가자는 갈수록 증가했고 전국적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결국 케네디 행정부는 공공시설에서의 차별을 철폐하고 분리 사용을 위법화하는 조처를 내렸다. 라이드 운동은 미국 민권운동의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주노동자 프리덤 라이드는 이러한 민권운동 역사의 맥을 잇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한,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삶을 거부하는 몸짓인 것이다.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미등록 이민자 수가 적게는 840만명, 많게는 1100만명에 이른다. 미등록 이민자 수는 9·11 테러 이후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정치적 변수가 프리덤 라이드 운동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집권 초기 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사면을 준비했다. 미국에서는 1986년 대사면이 있은 뒤 그간 어떤 조처도 없었다. 이런 터에 부시는 선거공약으로 사면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사면 공약은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이민자와 이민정책에 대한 강경 대처 기조가 강화되었다. 이런 와중에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민자옹호그룹과 노동조합은 이민자 문제를 각 정당의 대선공약으로 채택하도록 압력을 넣을 필요성이 생겼고, 이를 전국적 현안으로 만들어 힘을 결집하기 위해 프리덤 라이드가 조직되었다.
노동총연맹(AFL)-산업별조직회의(CIO)의 이민자에 대한 입장 변화도 프리덤 라이드에 불을 지폈다. AFL-CIO는 2000년 공식적으로 ‘미등록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 처벌에 대한 지지’ 입장을 철회했다. AFL-CIO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줄곧 취해왔었다. 이런 입장 변화는 전체 노동인구 가운데 외국 태생의 이민자 비율이 급증한 현실을 감안한 탓이다. 즉, AFL-CIO의 주요 조직대상이 이민자로 바뀐 것이다. 2000년 미국 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인구의 11%에 이르는 3천만명 이상이 이민자다. 미국 어린이 5명 가운데 1명이 이민자 자녀다. 특히 노동조합의 조합원 가운데 이민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가령 호텔과 식당 노동조합(HERE·Hotel Employees & Restaurant Employees)의 경우 라스베이거스 50%, 샌프란시스코 60%, 뉴욕 68% 그리고 로스앤젤레스는 75%가 이주노동자로 채워져 있다.
24년간 살아오다 갑자기 추방 위기
이주노동자 프리덤 라이드의 주요 요구사항은 이렇다. 첫째,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법화다. 둘째, 가족의 재상봉이다. 이는 시민권자가 모국의 가족을 초청해 재상봉하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10년 넘게 걸리는 현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셋째, 사업장에서의 평등한 노동권 보장이다. 넷째, 시민권의 완전한 보장이다. 이는 9·11 테러 이후 특히 아랍 이슬람계, 남아시아 이민자 사회가 극심한 시민권 침해를 받아왔으며, 사소한 형사상 전과를 빌미로 강제추방을 당하고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채 감금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필자가 탄 로스앤젤레스 버스에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지 14개 나라에서 건너온 다양한 이민자가 동승하고 있었다. 이들은 6개주 14개 도시, 특히 국경도시와 반이민 정서가 강한 도시를 집중적으로 방문했다. 각 방문 도시에서 종교인, 정치가, 지역단체가 주최하는 지지 집회, 거리행진이 이어졌다. 각 집회는 프리덤 라이드에 대한 지지 연설뿐 아니라, 각 지역 이민자들이 자신들이 겪은 반인권적 상황을 증언하고, 프리덤 라이더들의 보완 증언 등으로 채워졌다.
미등록 노동자는 취업을 하기 위해 대부분 가짜 사회보장번호를 사용한다. 고용자는 이를 사회보장국에 신고하는데, 사회보장국에서는 사회보장번호가 한 사업장에서 10% 넘게 불일치하는 경우에만 고용자에게 불일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에는 불일치 편지를 보내는 횟수가 급증했다. 사회보장국에서는 불일치 편지를 빌미로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으나 고용자는 종종 노동자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특히 노동조합 활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크게 불이익을 당했다.
레바논에서 건너와 미국에서 합법적 신분으로 24년간 살아온 이슬람교도인 바야클리씨는 최근에 비자 갱신을 신청했으나 갑자기 거주 자격이 안 된다는 이유로 비자 거부 및 추방 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두 아들은 모두 이곳에서 출생한 미국 시민권자다. 쿠바에서 이주해와 마이애미에 살고 있는 베로니카는 미등록 이민자 신분 때문에 대학 들어가기를 포기했다. 1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았고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대학은 이민자 신분이 아닌 유학생 자격으로 다녀야 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에 비해 다섯배나 많은 학비를 내야 한다. 학자금 융자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저임금 노동자 이민자에게 자녀 학비를 부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비록 미등록 신분이지만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수십년을 살아온 그들에게 자녀들이 교육기회에서 차별을 당하고 끝내 꿈을 포기하는 현실은 감내하기 힘들다.
로스앤젤레스 출발 버스는 엘파소 근처 시에라 블랑코 이민국 검문에 걸려 4시간이나 감금되기도 했다. 모든 프리덤 라이더들은 신분증을 몸에 소지하지 않는 게 행동원칙이었다. 이는 라이더 가운데 포함될 수 있는 미등록 이민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또 이민자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이민자들은 동일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도 담고 있었다. 이민국 검문에 걸린 모든 라이더들은 주최쪽에서 마련한 카드만을 제시하고, 묻는 말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노래만을 불렀다. 버스에서는 오직 한 사람, 대변인만이 이민국 및 경찰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허용되었다. 라이더들이 이 원칙을 고수하는 바람에 이민국 유치소에 격리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언론과 지역 단위 조직이 감금 사실을 알고 이민국에 빗발치는 항의 전화를 해준 덕택에 4시간 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
전문 로비스트보다 한수 위?
워싱턴에 모인 900명의 프리덤 라이더들은 7∼8명씩 한 팀이 되어 의회 상·하원 의원을 만나 프리덤 라이더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로비활동도 벌였다. 특히 공화당 의원들에 대한 로비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공화당 의원의 질의에 자신들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설득하는 이민자들의 열정적 모습은 전문 로비스트들보다 한수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1960년대 민권운동 경험에서 보듯이 인종주의 희생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날 이주노동자 프리덤 라이드도 미국의 민주주의, 인권 향상을 위해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올 9월24일 현재 멕시코에서 애리조나주의 사막을 건너 미국으로 입국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만 156명이다. 노갈레스 국경도시에는 거의 매일 죽은 이의 이름이 새겨진 십자가가 세워지고 있다. 세계화의 어두운 그림자인 셈이다. 멕시코에 많은 일자리와 막대한 부를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북-미 자유무역협정이 출범했지만 불법 이민자의 탈출은 더 늘어나고 있다. 프리덤 라이드가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로스앤젤레스= 글 · 사진 김애화 | 한인노동상담소 활동가

사진/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한 지역 고등학생들. 부모가 미등록 이민자이면 비싼 학비 때문에 대학에 갈 수 없어 ‘아메리칸 드림’을 접어야 한다.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미등록 이민자 수가 적게는 840만명, 많게는 1100만명에 이른다. 미등록 이민자 수는 9·11 테러 이후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정치적 변수가 프리덤 라이드 운동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집권 초기 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사면을 준비했다. 미국에서는 1986년 대사면이 있은 뒤 그간 어떤 조처도 없었다. 이런 터에 부시는 선거공약으로 사면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사면 공약은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이민자와 이민정책에 대한 강경 대처 기조가 강화되었다. 이런 와중에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민자옹호그룹과 노동조합은 이민자 문제를 각 정당의 대선공약으로 채택하도록 압력을 넣을 필요성이 생겼고, 이를 전국적 현안으로 만들어 힘을 결집하기 위해 프리덤 라이드가 조직되었다.

사진/ 미 의회 의사당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한 의회 로비팀. 프리덤 라이더들은 7∼8명이 한 팀이 되어 의회 상·하 의원을 만나 미등록 이민자들을 위한 로비 활동을 펼친다.

사진/ 프리덤 라이더들이 한 공화당 소속 의원을 만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법화, 모국 가족과의 재상봉, 시민권의 완전한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