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총리 “유대인 세계 지배” 발언에 떠들썩한 반응 보이는 유럽연합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 끝도 없이 지속되는 가운데 요즘 유럽 언론을 장식한 ‘안티 세미티즘’(반유대주의) 소식이 눈길을 끌고 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2차 세계대전 때 유럽인들이 1200만명의 유대인 가운데 600만명을 죽였으나 오늘날 유대인들은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고 말해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이슬람정상회의(OIC) 개회식에서다. 그 뒤 그의 발언은 서방의 정계와 언론으로 퍼져나갔고 안티세미티즘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미국 정계에서는 “치욕스럽고 조소할 만한 발언”이라는 비아냥이 터져나왔고,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심각할 정도로 공격적이고 반유대인적인 발언” 혹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라는 거친 비난이 쏟아졌다. 지금도 이런 질타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반유대주의’ 낙인은 무서워
안티세미티즘이란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신문기자 빌헬름 마르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로, 세미트, 즉 셈족에 대한 반감, 적대감이라는 어원적 뜻을 가진다. 하지만 이 단어는 같은 셈족에 속하는 아랍인은 제외한 채 유대인만을 가리키는 데 사용돼 ‘유대인을 향한 적대감이나 반감’의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인종차별을 뜻하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당시 유대인에 대한 사회·정치적 혹은 경제적 반감은 접어두고라도 그들의 종교에 대한 반감만으로 유대인을 차별하지 말자는 의도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 용어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어감도 변해갔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가 행한 대학살 만행의 피해자인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점령자인 이스라엘 유대인, 그리고 친이스라엘 정책을 도우며 세계 도처에서 정치·경제적 로비활동을 펴고 있는 유대인 자본가 등 대표적 유대인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오늘날 유대인을 비판하는 견해를 그냥 뭉뚱그려 인종차별이라는 오명을 덮어씌울 수는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대인을 무작정 비판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 안티세미티즘의 딜레마다. 나치가 부활한 듯한 이스라엘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을 잘못 비난했다가는 2차 세계대전 중의 대량학살을 망각한 역사부정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서구 지식인들이 몸을 사리는 이유다. 더구나 많은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닥치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유대인 자본가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쉽사리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할 수 없다. 이처럼 복잡미묘한 문제가 바로 서방 정계와 언론계가 직면한 유대인 문제의 본질이다. 오늘날 유대인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정 유대인을 잘못 비난했다가는 일반적으로 ‘반유대인’으로 낙인찍혀 결국 안티세미티즘의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마하티르 수상의 발언 파동은 이런 맥락에서 관심을 끄는 것이다. 서방 국가들의 정치 지도자들이 앞다퉈 마하티르 총리의 발언을 놓고 공식적 유감을 표하는 동안 불거진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문제의 발언과 관련해 유럽연합(EU)에서 독일과 이탈리아를 필두로 아주 엄한 비난들이 쏟아졌다. 이런 와중에 유럽연합 명의로 마하티르 총리 발언에 대해 결의안을 내자는 견해까지 나왔으나 프랑스 대통령은 반대했다는 소식이 이스라엘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시라크 대통령이 마하티르 총리에게 서신을 보내 유감을 표시한 직후였다. ‘결의안 작성에 제동을 걸고 마하티르 총리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으로 무마시킨 시라크’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는 이스라엘 일간지 <마리브>(Maarive) 10월19일치에 ‘프랑스의 안티세미티즘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시라크의 얼굴 사진과 함께 크게 실렸다. 강경한 결의안 대신 서신으로 유감을 표한 시라크의 태도에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무장관까지 합세해 마하티르 총리 발언에 대한 시라크 대통령의 소극적 비난 태도를 나무랐다.
여기에 해명(?)조로 보태지는 유럽연합의 솔라나 대변인의 발언도 눈길을 끌었다. “유럽연합의 모든 정부 수반들은 마하티르의 발언이 징계할 만한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단지 유럽상임위원회는 이와 관련 공동성명서를 발표할 의도는 없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유럽연합을 대표해 유감을 표한 것이다.”
이렇듯 유럽 국가들이 마하티르 총리의 발언을 놓고 이구동성으로 안티세미티즘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OIC에 참석했던 이슬람 국가들조차 침묵으로 일관했다. 다만 하타미 이란 대통령만이 마하티르 총리의 발언을 옹호했다. 그는 “아주 훌륭한 연설이었다. 안티세미티즘은 서구의 산물일 뿐, 회교도들은 반유대인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대인 지혜 본받자는 얘기 아닌가
10월31일 정계를 은퇴하는 마하티르 총리가 막판에 그것도 공개적인 국제회의장에서 어떤 의도로 유대인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 걸까. 문제가 된 발언의 요지는 이렇다. “사실상 우리 회교도들은 아주 강합니다. 13억명을 헤아리는 회교인구가 제거될 수는 없습니다. 유럽인들은 모두 1200만명의 유대인 가운데 600만명을 살해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바로 그 유대인들이 이 세계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학살의 2천년간을 생존해왔습니다. 무력이 아니라 지력으로 말입니다. 지금은 강대국들을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공동체가 세계적으로 강대한 단체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단지 신체적으로만 그들과 싸울 수 없습니다. 우리 또한 그들처럼 두뇌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얼핏 보면 유대인의 지혜를 본받자는 취지로 읽히는 연설이 그토록 많은 잡음과 비난을 쏟아낸 까닭을 이해하려면 안티세미티즘의 딜레마를 상기하면 된다.
OIC 폐회 직후인 10월21일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마하티르 총리에게 몰려든 언론들의 발언 해명 요구에 대해 그는 “바로 이처럼 요란스런 서방 언론과 정계의 반응이 유대인들이 세계를 다스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파리= 이선주 전문위원 seoulparis@tiscal.fr

사진/ 10월16일 이슬람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연설 중인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 “유대인이 세계를 다스린다”는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AP연합)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가 행한 대학살 만행의 피해자인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점령자인 이스라엘 유대인, 그리고 친이스라엘 정책을 도우며 세계 도처에서 정치·경제적 로비활동을 펴고 있는 유대인 자본가 등 대표적 유대인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오늘날 유대인을 비판하는 견해를 그냥 뭉뚱그려 인종차별이라는 오명을 덮어씌울 수는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대인을 무작정 비판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 안티세미티즘의 딜레마다. 나치가 부활한 듯한 이스라엘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을 잘못 비난했다가는 2차 세계대전 중의 대량학살을 망각한 역사부정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서구 지식인들이 몸을 사리는 이유다. 더구나 많은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닥치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유대인 자본가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쉽사리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할 수 없다. 이처럼 복잡미묘한 문제가 바로 서방 정계와 언론계가 직면한 유대인 문제의 본질이다. 오늘날 유대인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정 유대인을 잘못 비난했다가는 일반적으로 ‘반유대인’으로 낙인찍혀 결국 안티세미티즘의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마하티르 수상의 발언 파동은 이런 맥락에서 관심을 끄는 것이다. 서방 국가들의 정치 지도자들이 앞다퉈 마하티르 총리의 발언을 놓고 공식적 유감을 표하는 동안 불거진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사진/ 유대교(왼쪽)와 이슬람교의 종교집회. 유럽 국가들이 마하티르 총리의 발언을 반유대주의라 비난하자, 이슬람 국가 대부분도 침묵으로 일관했다.(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