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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쿠바] “언젠간 미국행 뗏목을 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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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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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블록 붕괴와 미국 경제봉쇄로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에 나선 쿠바인들

“개인택시를 원하세요? 아주 쌉니다.”

쿠바 수도 아바나의 한 호텔 근처에서 깡마른 체구의 백인 파블로(45)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더니 소곤거렸다. 자신을 ‘관광가이드’로 소개한 그는 아바나 시내를 한 바퀴 도는 데 10달러만 받겠다고 제안했다. 그를 따라나서니 운전석엔 얼굴이 까무잡잡한 혼혈 알레한드로(44)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녹슨 차체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개인택시’에 앉아 이들과 함께 아바나를 두루 살피는 일은 경찰과 숨바꼭질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사진/ 쿠바 혁명의 주역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내무부 건물. 쿠바인들은 미국의 경제봉쇄가 없었다면 쿠바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살려면 불법을 저질러라


처음부터 이 단짝 친구들이 불법 택시운전의 동업자였던 것은 아니다. 체육대학을 졸업한 파블로는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던 전직 체육교사다. 알레한드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몇해 전 문닫은 스페인계 무역회사에서 컴퓨터를 다루던 사무직 노동자였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선 ‘투쟁’할 수밖에 없어요.” 파블로는 이 일이 자신들에게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말한다. 성격이 싹싹한 파블로는 공산주의청년동맹(UJC)에서 펴내는 일간지 <후벤투드 레벨데>(반란청년)를 꼬박꼬박 사서 보는 독자이며, 집회란 집회는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피델리스타’(피델 카스트로 지지자)다. 이에 반해 과묵한 알레한드로는 쿠바 신문은 “우린 잘산다! 우린 잘산다”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고 힐난한다. 그러자 파블로가 웃으면서 “넌 (미 중앙정보국의) 첩자야!”라고 놀려댄다. 그러던 파블로가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내무부 건물이 보이자 알레한드로에게 차를 빨리 돌리라고 소리질렀다. “경찰이야!” 내무부 앞의 혁명광장에서 5월1일 노동절 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 파블로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국영상점에서는 250달러를 받지만 50달러만 받겠습니다.” 흑인 청년 하비에르(23)는 애인 모니카(22)가 국영 담배공장에서 만든 엽궐련(시가)을 구입하라고 붙잡는다. 이들처럼 공장에서 담배를 빼돌리거나, 아예 직접 시가를 만들어 상표를 도용한 뒤 파는 행위는 쿠바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쿠바 정부는 아예 아바나 국제공항에 도착한 외국 관광객들에게 진짜와 가짜 시가를 식별하는 방법이 담긴 전단을 나눠주고, 출국시 정식 영수증 제출을 요구할 정도다. 쿠바 일간지 <후벤투드 레벨데>는 쿠바 중부 시에고데아빌라에 자리잡은 국영석유회사(CUPET) 소속 석유저장고에서 최근 6개월 동안 2만5330ℓ의 석유가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즉, 유전지대에서 석유 수송을 맡은 노동자들이 운송과정에서 석유를 빼돌려 암시장에 내다팔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외에 전선, 고압송전탑의 부속품, 전봇대의 변압기에 쓰이는 기름을 훔쳐다 파는 이른바 ‘전기 도둑질’, 40도의 럼주에 물을 타서 24도로 만드는 ‘물세례’도 성행하고 있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의 쿠바 주재 특파원은 쿠바 농촌에서도 불법행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썼다. 특히 가축 절도와 불법도축이 창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범죄가 급증하자 쿠바 정부는 1999년 형법을 개정해 암소를 불법적으로 도살하면 최고 10년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정부가 불법도살 단속을 강화하자 쿠바 농민과 가축 도둑들은 소를 철로에 묶은 뒤 기차에 치여 죽이고 있다. 체포되더라도 불법도축이 아닌 사고사라고 둘러대면 그만이고, 설사 처벌을 받더라도 수준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사진/ 아바나 시민들이 ‘낙타’라고 부르는 낡은 장방형의 기다란 버스. 배차간격이 길어 버스를 타려면 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전문직 월급이 팝콘 장사보다 적다

인구과밀지역인 센트로 아바나에 사는 안나(41)는 올해 한번도 쇠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 쇠고기 가격이 1kg에 11달러에 이를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아바나 고급호텔 노동자의 임금이 250페소(약 9.6달러)선이니 쇠고기 가격은 여느 노동자의 한달 임금과 맞먹는다. 그는 쇠고기가 달러를 제법 만질 수 있는 계층들이 사는 지역에서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귀띔한다. 고급 호텔이 집결한 베다도구의 한 주택가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세를 놓는 릴리아(42)는 시골 사람들이 잡은 쇠고기가 아바나의 친척들에게 도착하면 이들이 알음알음으로 판다고 전했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사회심리조사센터(CIPS)의 연구원 마리아 이사벨(45)은 “경제위기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불법적인 일을 벌이는 사례가 많다”고 인정한다. 2001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쿠바 가정의 90% 이상이 한달을 보내기 위해 불법적인 일에 의존하고 있으며, ‘불법의 일상화’ 현상이 사회 전체에 만연하고 있다.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고소득자입니다.” 아바나의 방파제에서 허가 없이 팝콘을 파는 안나(41)는 허탈하게 웃었다. 젊은 날 콩고에서 해외 군복무를 한 경력으로 국영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해서 받는 월급은 345페소(약 13.2달러)다. 교육대학을 졸업해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외동딸 이시스(22)의 임금은 295페소(약 11.3달러), 자동차 기계공으로 일하는 사위 줄리안(25)이 한달에 버는 돈은 240페소(약 9.2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가 경찰의 눈치를 봐가면서 4시간 동안 팝콘을 팔아 하루에 버는 돈은 적어도 100페소(약 3.8달러)나 된다.

쿠바 전체 인구는 1100만명, 이 중 노동인구는 400만명이다. 70만명이 대졸자, 154만명이 기술자들로 모두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보유하고 있다. 의사는 인구 170명당 한명꼴인 6만7천명, 교사는 인구 50명당 한명꼴인 22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중산층은 안나가 팝콘을 팔아 버는 돈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안나는 일찍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파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법원 경리부에서 일하며 132페소를 받던 그는 쿠바인들이 부르는 ‘특별한 시기’, 즉 1989~93년 사회주의 블록이 붕괴되고 쿠바 경제가 위기에 빠진 시절에 직장을 그만두고 파출부로 나섰다. 그 시절 쿠바 페소화가 1달러당 150페소까지 추락한 적도 있으니 안나의 월급은 그야말로 휴짓조각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브라질과 캐나다 출신 학생들이 머무는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외국학생들이 그에게 건네주는 몇 달러의 팁 때문이었다. 당시 안나는 다른 쿠바 사람들처럼 비누가 없어 맹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한겨울에도 23도에 이르는 후덥지근한 아열대의 나라 쿠바에서 말이다. 또 먹고살기 위해 식용유 대신 맹물로 계란을 굽는 법, 자몽과 오렌지 그리고 바나나 껍질을 이용해 고기 맛을 내는 법 등을 개발했다.

사탕수수 농업에 기대왔던 쿠바 경제는 특혜무역협정을 맺고 있던 옛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줄줄이 무너지자 덩달아 곤두박질쳤다. “그 시절엔 신문과 잡지를 낼 종이조차 없었어요.” <후벤투드 레벨데>의 편집국장으로 있다가 멕시코로 이민을 떠난 앙헬 게라(60)의 회상이다. “59년 혁명 이후 계속돼온 미국의 경제봉쇄가 그 시절 더욱 강화되었지요.” 하지만 캐나다·스페인계 기업들이 관광산업에 투자하면서 경제의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쿠바는 해마다 2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관광국가로 탈바꿈했다. “쿠바 경제가 지난 10년간 엄청나게 변한 셈이지요. 그렇지만 사회주의 몰락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는 못했어요. 지금 현재 쿠바 외화 수입의 원천은 1위가 관광, 2위 망명 쿠바인들의 송금, 3위가 사탕수수예요.” 아바나에서 발간되는 잡지 <테마스>를 이끌고 있는 사회학자 라파엘 에르난데스의 설명이다.

사진/ 아바나의 주택가 베다도 지역에 자리잡은 농축산물 시장.

해외 친인척 송금으로 산다

하지만 쿠바 농촌은 사탕수수 농업 붕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관광산업이 9·11 테러로 치명타를 입었다. 사회심리조사센터는 쿠바 가족 가운데 약 4분의 1이 외국에 있는 친인척들의 송금으로 버티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해외에 친척마저 없는 사람들은 오직 임금과 배급수첩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43년간 쿠바 사람들의 생명줄이 돼온 배급수첩은 사회주의 쿠바의 평등주의를 상징했다. 1100만 인구 가운데 600만명이 59년 혁명 이후 태어났으니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이 배급수첩과 함께 웃고 울었다. 쿠바에서 교육과 의료는 무상이다. 약은 구입해야 하지만 아주 저렴하다.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서비스 요금도 정부가 지원한다. 배급수첩이 바로 “의욕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는 공산주의 원칙의 구현물이다. 어린이, 임산부, 노인, 환자를 우대하는 사회주의 쿠바의 배려도 담겨 있다.

하지만 쿠바 당국은 국민들이 달러를 자유롭게 소지하고 개인사업을 하도록 허용했다. ‘특별한 시기’에 달러를 가졌다고 감옥에 간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쿠바식 평등주의의 종언을 보여준다. 현재 쿠바 시민들의 60%가 달러를 소지하고 있다.

피델주의자, 달러주의자

안나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닌 피델주의자”라고 말한다. 미국 마이애미에 사는 언니에게 전화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청년동맹에도 가입할 수 없었다. 남편 오마르도 마이애미의 사촌이 선물한 구두를 신었다며 쿠바공산당(PCC)으로부터 퇴짜를 당했다. 안나와 오마르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변절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여전히 피델주의자다. “피델은 결코 숨지 않아요.” 안나는 아직도 이른바 뗏목 탈출 붐이 일어 아바나의 방파제는 물론 쿠바 해안 전역에 사람들이 뗏목을 띄워 미국으로 가려 했던 시절을 생생히 기억한다. 1994년이었다. 식민지 시절에 세운 바로크풍 건물들이 즐비한 인구과밀지역 아바나 비에하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때 피델이 거리 한복판에 나타났어요. 놀라운 것은 누구도 그에게 돌 한 조각 던지지 않았어요. 모두가 박수를 치며 ‘피델! 피델!’을 연호했죠. 그렇게 시위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난 달러주의자예요.” 옆에 있던 안나의 사위 줄리안(25)이 반박했다. 그는 새벽 6시에 일어나 기름냄새가 역하게 풍겨나오는 60년대산 고물차를 타고 공장에 출근한다. 저녁에는 관광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쿠바인들의 차를 고쳐주는 ‘불법부업’을 한다. 비록 20평 남짓의 방 두칸짜리 좁은 아파트에서 장인, 장모와 함께 살고 있지만 부업으로 정규 임금의 서너배가 넘는 돈을 벌고 있다. 그래서 장모 안나는 “줄리안이 아니었으면 딸 시집보내기도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를 칭찬한다. 줄리안은 암시장에서 구입한 위성수신 안테나를 14인치 텔레비전에 연결해 세상 동향에 민감하게 귀기울이고 있었으며 암시장에서 영화 <반지의 제왕>까지 빌려 보면서 할리우드 영화시장 동향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기회만 오면 쿠바를 뜰 거예요.” 그가 단호하게 말한다. 멕시코로 가는 항공료만 해도 임금의 50배가 넘고, 비행기 삯이 있어도 해외로부터 초청장이 없으면 출국할 수 없는 쿠바에서 그는 더 이상 ‘썩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단다. “난 초청장을 두번이나 받았죠. 난 안 떠날 거예요”라며 안나가 대꾸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청년들이 외국에 가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젊을 땐 누구나 그렇잖아요. 게다가 쿠바에서는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사진/ “오늘은 우리 생일이에요”라고 외치는 흑인들. 이들은 매년 10월10일 쿠바 역사에서 최초로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카를로스 마누엘 세스페데스의 업적을 기린다.
오늘도 아바나에 있는 미국 특수이익대표부(SIEU) 앞에는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있다. 이 기관은 1994년 미국과 쿠바 사이에 맺은 이민협정의 결과로 생겨난 미국 공관으로 영사업무를 주로 관장하고 있다. 미국은 1966년부터 발효된 쿠바이민특별법안으로 불법 혹은 합법적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에 도착한 쿠바인들에게 거주지까지 제공하고 있다. 쿠바 안팎에서 미국이 국외 탈출 러시를 방조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자 새로운 이민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불법이민을 막는 차원에서 해마다 쿠바시민 2만명에게 제비뽑기로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1998년에는 비자추첨에 참가한 쿠바시민이 50만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바나 사람은 외국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시골사람들은 수도 아바나로 몰려들지요.” 차이나타운 화인가(華人街)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청년 토니(23)의 말이다. 그는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 어디나 쿠바 동부에서 상경한 여성들을 지칭하는 ‘팔레스티나 여자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체 게바라의 부관으로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아바나 입성까지 동행한 적이 있다는 헤수스 파라(61)는 “쿠바는 천국도, 그렇다고 지옥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미국의 경제봉쇄가 아니었다면 쿠바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비슷한 시각, 청년들은 방파제를 배회하고 있었다. 교육대학에 다니는 클라우디아(24)는 이탈리아에서 수학교사로 일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니어(21)는 ‘뗏목을 만들어서라도 쿠바를 떠날 각오’로 암시장에서 채소를 팔고 있었다.

탈출 러시 조장하는 미국

하바나에서 멕시코로 돌아오던 날, 비행기 안에서 본 신문에는 부시 미 대통령이 “‘폭군 카스트로’가 ‘섹스 관광이라는 현대판 노예제’를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쿠바계 미국인들의 합법적 쿠바 여행을 엄격히 제한하고, 미국 이민비자 발급 수를 현재 2만명에서 더 늘리겠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런 정책은 어리석은 짓이며 쿠바의 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바나에서 만난 신경전문의 미겔(50)의 말이 귀청을 맴돌았다.

아바나(쿠바)= 글 · 사진 박정훈 전문위원 jhpark200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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