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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케냐] 케냐인의 심장은 펄펄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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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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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탁월한 심폐기능과 과학적인 선수 육성… 이유있는 케냐의 마라톤 강국 부상

지난 9월 베를린 마라톤대회에서 케냐 선수들이 상위를 독차지한 것을 계기로 다시 한번 케냐가 육상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요인과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많은 스포츠 과학자들이 다각도로 분석을 시도했고 케냐 육상의 성공 요인에 관한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설득력 있는, 그리고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성공 요인으로 선수들의 탁월한 심폐기능, 유망종목과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의 집중 육성, 조기교육과 두꺼운 선수층 확보, 체계적 훈련과정, 육상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 등이 거론된다.

사진/ 케냐 육상의 저력은 내년 아테네 올림픽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9월28일 열린 베를린 마라톤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케냐의 폴 테르가트.(AP연합)

유명선수 대부분 고원지대 칼렌진족 출신

이 중 심폐기능의 발달은 환경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유명 육상선수들의 대부분이 케냐 리프트밸리 지방의 칼렌진족 출신이라는 통계적 사실에 근거한다. 칼렌진 부족민들은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거주하기 때문에 저지대에서 생활하는 다른 부족민들에 비해 심폐기능이 현저하게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심폐기능의 발달은 중장거리나 마라톤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주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리프트밸리 지역의 중심도시인 엘도레트는 케냐 육상의 메카로 정평이 높다. 해발 2097m에 자리잡은 엘도레트시를 중심으로 리프트밸리 지역의 각급 학교에서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을 발굴해 체계적인 훈련을 시킬 뿐 아니라 외국 선수들과의 고지 합동훈련을 통해 선진적 육상기술과 정보를 교환한다. 이런 협력과 활동을 주도적으로 기획하는 ‘케냐육상’(Athletics Kenya) 같은 단체들이 조직돼 탁월한 기량의 선수들을 발굴하는 한편 이들이 국제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경쟁할 수 있도록 조직적으로 지원한다.

더불어 유망한 선수들을 폭넓게 선발해 두꺼운 선수층을 확보하고, 특정 부문에서 성공적으로 활약하지 못하는 선수들의 기량을 정확하게 평가해 이들이 자신 있게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분야로 방향을 다시 설정해주기도 한다. 예컨대 400m에서 마음껏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선수들을 800m 분야에서 뛸 수 있도록 재교육을 실시한다. 마라톤대회의 경우도 다수의 선수들을 투입해 페이스 메이커 등 각자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각종 대회에서 역할분담과 상호 경쟁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역량은 육상계 저변에 두꺼운 선수층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또 선진적인 육상훈련기술을 도입해 선수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체육교류를 다각화한 것도 육상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이번 베를린 마라톤대회에서 상위를 차지한 폴 테르가트, 새미 코리르, 타이터스 문지 선수들은 이탈리아의 육상코치 가브리엘레 로사 박사의 지도하에 체계적 훈련을 거듭해왔고 이러한 훈련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이번 베를린 마라톤대회라고 자평할 정도다.

카타르나 아랍권으로 귀화해 뛰기도

육상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도 육상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주로 육상계에서의 성공을 통한 부와 명예의 확보가 흡인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케냐는 킵초게 케이노, 모제스 킵타누이, 더글러스 와키후리, 이브라힘 후세인 킵켐보이, 테클라 로루페, 캐서린 데레바와 같은 명망 있는 육상선수들을 배출해왔고 이들의 성공담은 많은 육상 꿈나무들에게 삶의 지향으로, 본받고 싶은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다른 분야로의 자아실현 가능성이 비교적 제한된 열악한 사회적·경제적 조건에서 육상은 부와 명예를 일거에 안겨주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케냐 출신 육상선수들의 상당수가 외국으로 귀화해 뛰고 있기도 하다. 카타르나 아랍권 국가들로의 진출이 특히 두드러지는데, 이 국가들은 자국 이미지를 고양시키기 위해 케냐 선수들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권위 있는 마라톤대회와 육상선수권대회를 통해 거듭 확인된 케냐 육상의 저력은 내년 아테네 올림픽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육상의 역사를 새로 쓰고 인간의 한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 한복판에 케냐의 건각들이 우뚝 서 있다.

양철준 | 한국외대 아프리카어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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